할머니가
목소리도 가냘프고
늘 별 말씀도 없으시고
원래 얌전하시고
몸도 좀 약해 보이는 듯 싶고
왠지 비리비리(!)할 것 같은데
어느 새
수술전 항암치료 8번
유방 전절제술
방사선치료
1년간 표적치료를 다 받으셨다.
특별한 합병증 없이 이 전 코스를 다 마치고
오늘 마지막 표적 치료를 받으러 오신 것이다.
할머니, 축하드려요. 기념 초콜렛 하나 받으세요.
한사코 안 받으시려고 한다. 나도 뭘 사왔어야 하는데... 하시면서.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도 특별한 이벤트 없이 무사히 치료를 다 잘 받으셔서 다행이에요.
이제 마음 홀가분하시죠?
할머니 눈가가 갑자기 벌겋게 짓무른다.
눈물이 글썽글썽
유방을 다 잘라내 버린게 너무 속상해서 잠이 잘 안와.
나이 먹었는데 이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 싶어.
내 나이 70 이지만 그래도 여잔데...
그때 외과 선생님한테 암 있는데만 수술 해 달라고 말할 걸 그랬어.
너무 무서워서 시키는대로 한건데 후회되.
할머니 원래 병이 겨드랑이 림프절에 많이 있어서 전절제 하는게 나은거였어요.
병을 위해서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전절제를 한 순간부터 나 사실 우울증이 온것 같아.
말 안했지만 너무 힘들었어.
밖에도 못 나가겠고...
할머니, 원래 우리나라 여자들 유방 작아서
전절제하나 부분절제하나 겉에서 보면 그게 그거에요.
그리고 남 볼때 자세히 안봐요.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없다니까요.
그리고 할머니는 부분절제하면 재발 가능성이 높았어요.
그러니까 병을 위해서 잘된거라고 생각하세요. 재발해봐요. 그때 또 치료하겠어요?
나는 갑자기 우는 할머니를 달래느라 당황해서 말도 안되는 이얘기 저얘기를 갖다 붙인다.
항암치료를 시작할 때
수술을 하기로 결정할 때
방사선치료를 결정할 때
치료를 그만 두기로 할 때
이렇게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환자와 의사는 서로간에 충분히 이야기를 잘 나누고
미리 대비할 수 있는일은 미리 대비한 다음에 치료를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다.
결국 필요한 조치를 다 하고 필요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마음 속에 1년이상 의사를 원망하는 마음, 우울한 마음을 갖고 사신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진료를 하지만
아직도 난 늘 부족한 설명, 오해, 서운함을 안기는 의사이다.
오늘도 한 환자가 그랬다.
선생님 얼굴 한번 원없이 보고 갈라고
부산에서 새벽같이 올라 왔는데
내 얼굴 한번 제대로 안보고 너무 해요.
그녀가 날 좋아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 원망조차도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그녀는 서운했던 것이다.
서운한 줄 알면서도 서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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