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우울한 상념

슬기엄마 2012. 4. 12. 20:18

두가지 제재로 항암치료를 하다가 환자가 힘들어하면

이것이 병이 나빠져서 생기는 증상인지

항암제 독성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병이 나빠져서 생기는 증상인데 기존의 항암제를 유지하는 것은 쓸데없이 환자를 해롭게 하게 된다.

항암제 독성에 의한 것이라면 그 독성이 어떤 항암제에 의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그 독성을 잘못 판단하면 환자에게 꼭 들어가야 하는 약이 빠질 수가 있고, 쓸데없는 약으로 효과도 없이 환자만 괴롭히게 된다.

용량을 과도하게 줄여서 꼭 필요한 항암제 용량(dose intensity)을 만족하지 못하면

하나마나한 치료를 하는 수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가 힘들어 해도 최대한 다른 보조적인 조치를 지원함으로써 최대한 항암제 용량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적절히 용량을 감량하여 환자가 힘들지 않게 항암치료를 지속해야 한다.

단 한번이라도 항암제가 잘못 들어가면

환자는 최소한 한달 이상 약물이 몸에서 배출될 때까지 심하게 고생하고, 최대한 사망할 수 있다.

 

항암치료의 독성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재발했을 때, 혹은 병이 진행했을 때

환자는 다시 항암치료를 받기를 거부하고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유용한 치료방법이 있는데도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하거나 민간요법에 의존하여 시간을 보내면서 치료시기를 놓치게 된다.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는 환자의 어떤 증상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피검사보다도

영상검사보다도

환자가 증상으로 먼저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최대한 신체 검진을 열심히 하고 적절한 간격으로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환자가 불평할 때마다 갖가지 영상 검사를 무분별하게 시행해서도 안된다.

환자가 예민해서,

환자가 원래 징징 거리고 증상을 과장해서 표현하니까

그래서 의사의 마음을 자꾸 성가시게 한다는 이유로

검사를 무시하거나 적절한 개입을 하지 못하면 나중에 크게 나빠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환자의 기저 질환을 자세히 알고

그러한 질환의 병리학적 기전과 내가 투여하는 항암제의 상호작용에 대해 미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상되는 부작용과 드물지만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예후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럴려면 환자와 밀접한 상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집중적으로 관찰해야 하며 조심히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독성평가도 철저하게 해야 하고 환자의 안전성을 유지하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검사를 할 때는 방법론적 타당성이 입증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근거가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은 방법으로 검사하고

그 전문 분야의 일반 의사들이 이해하기 힘든 치료를 시행하면서

자신은 스스로 영웅적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렇게 불확실한 방법으로 검사하고 치료하면서

단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아마추어적인 생각으로

수천만원의 검사비와 치료비를 환자에게 지불하게 하면서 치료를 하는 것은 악행에 해당한다.

 

항암제 처방. 어렵지 않다.

그 용법이 입증된 핵심 연구에서 사용한 용량을 참고하여 오더를 내면 된다.

의사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 다음에 고생하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꼭 종양내과 의사가 항암치료를 담당해야 하나?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다.

나는 그런 뜨거운 감자를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누구든

근거에 입각하여 처방하고

독성을 치료하고

효과를 입증하고

환자를 잘 보면 된다.

종양내과는 그것을 트레이닝하는 과다.

 

때론

표준대로, 가이드라인대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고민하여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환자의 안정성과 독성과 효과를 모두 고려하여 어떻게 치료할 지를 고민하는게 종양내과 의사가 할 일이다.

나는 이러한 선상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항암제를 처방하고 고민한다.

수술도 안하고

내시경도 안하고

초음파도 할 줄 모르고

무슨 시술이라고는 할 줄 아는게 없다.

그저 항암제 밖에 모른다.

다른 거 안하고

항암제만 처방하면서 환자 보는데도

나는 이 과정이 어렵다.

아직은 매일 어렵다.

어려우니까

환자가 힘들어하면 마음이 매우 소심해진다.

상태가 좋지 않으면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 항암치료로 오히려 환자가 더 나빠지면 안되니까.

 

그런 트레이닝이 별로 어렵지 않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의사도 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