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엄마와 딸

슬기엄마 2011. 4. 5. 15:54

4기 유방암을 진단받은 엄마가 항암치료를 한지 2년째 되는 날
직장 다니는 젊은 딸이 함께 왔다.

엄마는 40대 후반, 2년전 폐로 전이된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HER2 양성이라 허셉틴, 탁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가, 현재 탁솔은 중단하고 허셉틴으로 유지치료를 하고 계신다.
처음에 폐 전이가 확실치 않아 흉강경으로 조직검사까지 했었다.
그리고 치료 2년만에 찍은 PET-CT에서는 육안적으로 병이 없었다.
No Evidence of Disease... 4기 환자인데 NED, 병이 안보이는 것이다.
허셉틴에 반응이 있어 장기적으로 유지치료를 하는 분들이 계신데
이분도 아마 그런 분 중의 한명이 되겠구나 싶어 마음속으로는 욕심을 가져본다.

이런 환자들을 볼 때면
난 그 어떤 의사보다
환자의 삶의 질이 중요하고,
사회심리적 요인도 중요하고,
환자에 대한 설명이 의료의 본질 상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믿는 의사라고 자부하지만,
어쩌면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허셉틴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이놈의 약에 경외심을 갖게 된다. 놀라운 약...

허셉틴으로 치료하는 누구나가 다 이런 코스를 밟지는 못한다.
애초부터 허셉틴에 반응하지 않는 저항성을 가진 환자도 30-40%에 달한다.
이들 또한 치료를 시작할 때는 표적치료제니 신약이니 하는 말에
솔깃하고 큰 희망을 품고 치료를 하지만  결과적으로 병이 좋아지지 않는 걸보고
이 약이 자기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크게 실망한다.
여하간 허셉틴으로 장기적인 유지치료를 하시는 분이 병원에 오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힘들지 않게 항암치료를 하며 병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아도 잘 유지되고 컨트롤 하며 생활하는 환자들...


엄마는 처음부터 4기 유방암의 예후를 잘 알고 계셨다.
그렇지만 큰 딸은 엄마가 왜 수술할 수 없는지, 왜 완치될 수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오늘 엄마를 따라 병원에 온 것 같다.
엄마는
본인이 이해하고 있는 병의 경과, 앞으로의 예후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를 하였고
매우 정확하게 상황을 잘 파악하고 계셔서 놀라웠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를 물어보신다.
별로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그 질문을 옆에서 듣고 있는 큰 딸의 얼굴에도 별로 흔들림이 없다.
이들이 지난 2년간
얼마나 마음속으로 최선을 다해 투쟁을 하며 일상을 살아온 것일까...

나는
엄마에게
삶의 준비라는 것은 늘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지금이 급한 순간은 아니니 - 병이 잘 조절되고 있어 더 바랄 나위가 없으니 -
일단 하루하루를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만약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할 때가 오면 그때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엄마는 현실을 숨기지 말아달라고,
아직 고2짜리 아이가 있으니
미리 준비를 해 둘게 있으면 지금부터 해 두어야 한다고
부탁하신다.

엄마를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그 놈 대학보내고 다음 일은 그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별로 위로를 얻은 것 같지 않다.

정작 딸은 별로 질문을 하지 않는다.
엄마와 내가 하는 말을 옆에서 듣기만 한다.
더 질문 없냐는 나의 질문에 '없다'며
모녀가 진료실 문을 나선다.
아마 다 알고 있었는데
병원에 왔었나 보다....

병은
개인 삶의 주기 어떤 시점에서 맞닥뜨리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4기지만
항암치료 반응이 좋아 독성 항암제는 그만 쓰고 허셉틴만 쓰시는 분들
어떤 4기 할머니들은
이 약은
힘도 하나도 안 들고
피검사도 안하니까 좋다며
얼씨구 허셉틴을 맞고 가신다.
4기 엄마들은 
매순간을 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살다가
병원에 와서 마음 졸이며 허셉틴을 맞고 가신다.


엄마의 마음이
더 이상 무겁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