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수’ 전공의가 되고 싶었다
나는 ‘우수’ 전공의가 되고 싶었다. 환자도 잘 보고, 동료 선후배와 관계도 좋고, 틈틈이 공부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문도 쓸 줄 아는 excellent 한 바로 그런 전공의.
한때는 나도 ‘우수하다’는 형용사가 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상황에 익숙했었다. 그러나 그 한때는 너무 오래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고백하건대, 뒤늦게 의대에 들어오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는 동안, 나는 누군가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고 격려받으며 일하는 상황이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우수하다’는 것은 지위와 입장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하여 보편적으로 혹은 탁월하게 '우수한' 존재가 아닌 이상 적절하게 인정받기 힘든 것이 전공의 신분인 것 같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수 전공의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내 좌절감은 별로 위로받지 못한다.
나는 많이 배웠다
하지만 나는 많이 배웠다. 내가 지금 일하는 병원에서 배운 특히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bedside keeping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중환이 생겼을 때 환자의 바로 곁에서 vital sign을 체크하고 잠 못 자며 lab 을 f/u하고 medication을 조절하며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는 교과서에서, 강의에서, 말로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부대끼는 동료, 선배들의 실천 속에서 획득되는 중요한 경험이요 기술이자 성실함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조직에 비합리성, 비효율성, 비민주성 등 비판해야 할 측면이 많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자랑스러워 하는 구석이 있다면 바로 '환자를 보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최선을 다했던 환자가, 곧 죽을 것 같았던 환자가, 소변이 하루 종일 한 방울도 안 나오던 환자가 걸어서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 그가 고맙다며 건네는 음료수 한 박스를 받을 때면 잠못이룬 수많은 밤들은 모두 다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늘 허덕이며 많은 환자를 보고, 그러다가 중환이 생기면 그보다 덜한 환자를 제대로 보지 못해 항의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힘들고 괴롭고 절망적일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항상 경중을 따져 급한 일과 덜 급한 일을,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가리는 것도 배웠다.
그래서 집에 못 가고 밤 늦게까지 EMR을 점검하면서 내일의 회진과 할일을 정리하는 것이 전공의의 도리인 것으로 체화시킬 수 있었다. 환자를 보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집에 못가게 되어도 그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각인되었다. 그렇게 각인된 습관이 병원에서의 생활을 지겹고 불만스럽지 않게 지낼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초조하다
그러나 객관적인 기준으로 ‘우수’ 전공의를 평가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논문이다. 그것은 비단 전공의 뿐만 아니라 전임의나 직급을 막론한 대학교수들에게도 공히 적용되는 기준이다.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학 논문을 쓴 이후 의학논문을 쓴 적이 없다. 당연히 어느 저널엔가 기고한 논문도 없다. 그래서 나의 논문 점수는 빵점이다. 우리 동기 몇 명은 논문, case report 등으로 알뜰히 점수를 챙기고 있는 것도 같다. 물론 나도 아주 가끔은 ‘이런 것은 논문을 써 봐도 좋겠다’거나 ‘나와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던 다른 사람은 없는지 자료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건 정말 순수한 ‘학구열’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남들은 2년차 때부터 논문을 쓰거나 최소한 준비라도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공부에 대한 의욕보다 환자를 봐야 한다는 압력이 훨씬 크다. 정말 꼭 필요한 지식을 찾아보는 것 외에는 더욱 포괄적인 배경지식을 학습하고 더 나아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작업은 생각하기 힘들다. 시간을 투자하고 몸을 소모하며 일하고 났을 때 뭔가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리라.
드물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모든 과정들을 균형적으로 잘 수행하여 부럽기 짝이 없다. 또 더욱 드물지만 환자를 보는 일에는 별로 열정이 없으나, 논문을 쓰거나 자료를 축적하여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사실 부럽다. 그리고 내심 마음 한구석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느껴지는 것은, 의사 개인을 평가할 때 bedside keeping에 대한 것보다는 잘 쓰여진 논문 한 편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표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3~4년차가 되면 논문의 압력과 study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내 것을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다. 2년차도 끝이 보이는 시점이 되니, 마음이 무지 초조하다.
벌써 절반? 아직 절반?
내가 공부를 안 하고(혹은 못 하고), 논문을 쓰지 않는(혹은 쓰지 못하는) 것이 비단 나 자신의 문제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위축된 자아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나는 이제 곧 3년차가 되고, 뭔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책임감있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지위로 가게 될 것이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무엇을 잘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다면 뭔가를 선택해야 할 텐데, 도대체 뭘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요즘에는 부쩍 그런 존재적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모든 면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뭔가 하나에는 ‘우수한’ 전공의가 되고 싶었는데…, 벌써 전공의 시절이 절반 가까이 지났다. 기회가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는 걸까?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레지던트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식에 대한 단상 (0) | 2011.03.01 |
---|---|
3월에는 대학병원 가지 마라? (0) | 2011.03.01 |
나는 이럴 때 울고 싶다 (0) | 2011.03.01 |
“너 미쳤니? 왜 그랬니?” (0) | 2011.03.01 |
내 안에 버려야 할 것들 (0) | 2011.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