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12

희승이 치킨 많이 먹겠네요

호스피스 팀에서 아침에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블로그에 올린 제 글을 보고 금토일 사이에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들의 현황입니다. 총 890,000 원 입니다.슬기가 5천원 준거 보태면 895,000 원이네요. 저한테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 이름도 눈에 띕니다.다들 이제 병원이라면 등돌리고 잘 살고 계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들러서 정 주고 가시네요. 나랑은 안면도 없이 블로그로만 알고 지내는 분도 계십니다. 토요일 사랑의 리퀘스트에도 많은 분들이 사랑의 전화 한통 넣어 주셨을 거라고 믿습니다.(마침 저는 TV를 늦게 트는 바람에 못 봤어요. 앞부분에서 방송을 하고 지나간건지...) 암튼 모두들 정말, 감사합니다. 제 마음이 울컥 합니다. 우린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아도 되갚지 못하고 삽니다.아마..

희승이 치킨값 좀 보태주세요

희승이는 Ewing's sarcoma 로 항암치료 중인 고2 남학생입니다. 작년 8월에 병을 진단받고 다른 병원에서 항암치료랑 방사선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병은 항암치료과정이 특이합니다. 엄청 오래 치료하고 스케줄도 복잡하고 약도 엄청 독합니다. 한번 치료를 시작하면 1년 이상은 계속 치료를 하는거 같아요. 저는 이 병을 치료해 본 경험이 없어서 치료 과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뭏튼 엄청 힘든 병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희승이는 치료가 잘 안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척추로 척추로 병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이전에 치료받았던 병원에서는 약제 반응이 좋지 않고 자꾸 전이가 되니까앞으로 예후가 안 좋고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는게 큰 의미가 없다고 했었나 봐요.어찌어찌 해서 지금은 우리병원 소아청소년과에 입원해..

지금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난 천주교 신자지만 믿음이 강한 편이 아니다. 사실은 거의 나이롱 신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만나면 묵주반지에 의지해서 주의 기도를 열번 한다. 그것이 그를 위해 하는 나의 최대한의 노력이다. 나를 믿고 치료받았던 환자가 이제 퇴원도 할 수 없는 나쁜 컨디션이 되어 끙끙 거리며 밤을 뜬 눈으로 보낼 때 나는 그냥 기도를 할 뿐이다. 나의 기도로 뭔가가 좋아질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난 왠만하면 입원을 잘 안 시키는 편이라,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여기 저기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은 환자들이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항암치료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외래에서 받는 경우가 많다. 입원을 하는 것 자체가 뭔가 컨디션이 안좋다는 것을..

호스피스 보험시대

내년부터 호스피스 행위에 수가가 붙어서 돈을 받을 수 있는 의료행위가 될 것 같다.수가가 잘 책정되서많은 병원이 적극적으로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아직까지 호스피스는 그 자체로는 수가가 매겨져 있지 않다. 환자를 위한 자원봉사 수준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는 전문적인 호스피스 프로그램이나 임종 관련 간호 등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형편이다. 전문가도 많지 않다. 우리 병원의 경우호스피스 병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각 과에서 호스피트 팀으로 협진을 의뢰하면 호스피스 전담 간호사가 환자를 방문하여 상황을 파악한다. (이 대목에서 호스피스 전담 의사가 있으면 좋지만 아직은 아쉬운 실정이다. 나도 아주 부분적으로만 활동하고 있는 형편이다.)간호사는 여러 차례 ..

요양병원

이제 우리병원에 계속 입원해 계시는 것이 별로 의미없을 것 같아요. 집으로 가시거나 집 근처 요양병원을 알아봐서 글로 퇴원하세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순순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환자는 단 한명도 없다. 다니던 병원 놔두고 왜 다른 병원으로 가란 말인가. 게다가 이제 컨디션도 별로 안 좋은데. 내 검사 기록, 의사의 소견, 여러 과 협진 결과 등 나의 병력과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다 여기 있는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환자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상태가 더 나빠져도 우리 병원에 오시지 말고 거기서 임종하시라고 미리 말씀드려야 한다. 3차 의료기관은 임종하러 오는 곳이 아니니까. 나는 그렇게까지는 말을 잘 못한다. 계셔 보시다가 힘들면 오세요. 우유부단하게 그렇게 말하고 환자를 억지로 퇴원시킨다...

딩동 문자 메시지

우리 유방암 환자들은 전이가 되어도 자기 생활을 잘 꾸려가시는 분들이 많다.엄마로서, 아내로서 집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왠만하면 입원을 잘 안하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같은 4기여도난소암이나 자궁암 등 여성암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컨디션이 나쁘다. 그래서 입원이 잦다.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가능하면 자기 생활력을 높이고, 병원 생활보다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지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환자에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원을 별로 권유하지 않는 편이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하는 것은 환자에게 별로 좋지 않다. 입원을 하더라도 급한 문제만 해결하고 퇴원하시도록 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환자가 입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컨디션이 안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딩동 문자메시지가 왔다.퇴원한지 한..

병원에 오니 살거 같아요

별로 흔하지 않은 암Malignant Mixed Mullerian Tumor (MMMT), 다른 말로 Uterine carcinosarcoma 라고도 한다. 여성생식기, 주로는 자궁에서 기원하는 암으로 세포의 초기 미분화단계에서 암이 발생하여 carcinoma 와 sarcoma 의 두가지 성분을 다 가지고 있는 암이다. 진단명도 어렵고 병도 어려워서 환자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수술적 제거 이외에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는 그 효과가 입증되어 있지도 않고 표준치료도 없다.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수술 후 재발한 환자들이니매번 고민스럽다.표준치료가 없으니적절한 임상연구를 하는게 필요한데환자 수가 너무 적으니 임상연구를 계획하기도 힘들다.그래서 늘 애타는 마음으로 비교적 많이 쓰이는 약제를 조합하여 항암치료를 한다...

편안한 죽음을 위하여

나보다 젊은 그녀.본성이 참 착한 사람이다. 유방암이 재발된 후 항암제를 종류별로 다 써봤지만 2번 쓰고 나빠지고, 세번쓰고 나빠지고, 그러기를 거듭했다. 증상도 조금씩 나빠졌다.왼쪽 폐에 물이 조금씩 고인다. 관을 넣어 빼보기도 했지만 별로 신통지 않았다. 치료 효과가 신통치 않으니 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소견서를 써주고 사진을 다 복사해 주었다.그러나 이내 다시 왔다. 나한테 미안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환자의 권리이니 나에게 미안할 필요없다고 했다.나는 내가 치료를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정말 미안했다... 쓸만한 약을 거의 다 써봤지만 효과를 본 약이 없다. 치료를 하다보면 그런 유형이 있다. 그녀가 그랬다. 선생님, 그냥 치료 안하면 안되..

힐링 터치

의도치 않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다.아주 가끔.나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바로 이름을 짓는 기술이다. 지난 2년간 유방암 분과의 임상연구 이름을 짓고 있다.들어가는 약제의 앞글자나, 임상연구의 핵심개념어 앞 글자를 따서 그럴싸한 이름을 짓는다. 여러 병원 선생님들이 당신의 프로토콜에 내가 이름을 붙여드리면 아주 기뻐하셨다. 그러면 다기관 임상연구를 하는 동안 누구나 그 연구를 지칭할 때 내가 지은 그 이름으로 스터디를 부르게 된다. 그런 연구들이 다 내 연구같은 애착을 갖게 된다. 예를 들면삼성서울병원이 주관하는 FLAG 스더티국립암센터가 주관하는 PROCEED 스터디고대안암병원이 주관하는 BEAT-ZO 스터디가 다 내가 지은 이름으로 임상연구를 시작하였고 현재 잘 진행되고 있다. 환자가 잘 ..

자식을 떠나보낸 그들에게

환자가 돌아가신 후몇일 시간이 지나문자메시지나메일을 보내시는 분들이 있다. 환자 상태가 안 좋으면 내 핸드폰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안 좋은 상태로 고생하다 돌아가시는 환자의 가족들은 내 전화번호를 알고 계신다. 아마도 환자 물건 정리를 하다가짐정리를 하다가 내 생각이 나는가 보다. 40대 의사 아들을 먼저 보낸 어떤 어머니는 그러셨다.투병기간이 길었던 그,아들의 건강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눈 사람이 나였다고.생의 마지막, 위험한 순간에 찾은 사람도 나였다고.아들을 생각하면꼭 내 생각이 같이 난다고 하셨다.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셨지만나는 만나지 말자고 하였다. 오늘은 몇일전 딸을 떠나 보낸 어떤 어머니가그리고 어제 딸을 떠나 보낸 다른 어떤 아버지가 문자를 주셨다.두 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