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112

만보기를 손에 쥐어 주는 것 만으로도

Physical Activity우리 말로 번역하면 '신체 활동' 정도.그래도일반적으로는 '운동'이라고 지칭하는게 이해가 쉽다. 암을 예방하기 위해, 암으로 치료를 받았다면 다시는 재발되지 않게, 혹은 재발된 암이라도 고통없이 삶의 질을 유지한 채 일상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게 하는입증된 치료법이 있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운동이다. 항암제 하나를 개발하여 그 약의 치료적 효과를 입증하고 표준 치료로 도입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상상 이상이다.설령 효능을 입증했다 하더라도 기존 치료법의 효과를 미미하게 증가시키는 정도라, 과연 이정도 시간과 돈을 들여 이정도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연구인가 싶은 경우도 많다. 물론 과학의 발전이란 것이 그런 순간 순간의 노력이 집약되고 응축되어 어느 ..

이제 곧 결혼하는 그녀

힘들게 징징거리며 항암치료를 받다가 날 떠난 그들. '이제 잘 사세요. 다시는 날 만나는 일 없게요' 그렇게 빠이빠이 하면서 그들과 헤어졌었는데 요즘 유방암 클리닉의 운영체계를 일시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중이라 2-3년전 그렇게 헤어졌던 환자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마친 그들에게 지난 2-3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로 채워져 있을까? 불현듯 그들을 만나고 나면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계속 만났으면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텐데 2년이라는 시간적 공백을 두고 만나니 새롭다. 치료 후 2년이라는 시간은 그들을 재발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한번은 판가름 할 법한 시간이고, 재발하지 않았으면 정상 생활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제 더 이상 환자라고 부를 수없이 건..

칼슘과 비타민D

항암 치료 하면서 혹은 치료를 마치고 경과관찰 중인 환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 선생님, 뭐 먹으면 몸에 좋아요?뭐 먹으면 안돼요?뭐 먹으면 재발을 막는데 도움이 되나요? 제발 먹는 거보다 운동하는 거에 집중하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말씀드리건만 ㅠㅠ 그래도 무엇을 먹을 것이냐는 우리 환자들의 영원한 화두이다. 식탁에 차려서 온 가족이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드세요.같은 재료라도 액기스, 즙, 다린거 그렇게 먹지말고 원래 재료 그대로의 '음식'으로 드시는게 좋습니다. 남들 건강생활을 위해 애쓰는 만큼 같이 애쓰시면 되요. 난 암환자니까 특별히 어떻게 해야한다 그런 생각 마시구요. 인스턴트 음식이나 탄 음식 드시지 마시고, 신선한 야채, 과일 그런거 드시면 좋겠죠? 항암치료 끝났으니까 이제 고기..

나를 돌쇠로 만드는 그녀들

병원마다 최초 암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가 끝나고 정기적인 검사를 하고 추적관찰을 하는 방식이 약간씩 다른데, 우리 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는 외과가 이를 담당하고 있다. 정기검진을 하고 검사결과를 확인하러 오는 재진 환자들이 누적되어 외과 선생님들 진료 예약이 꽉 차다보니 수술을 해야 하는 유방암 신환 외래예약이 지연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형편에 따라 내과에서 이를 담당하기로 했다. 그래서 1-2년전에 나랑 항암치료를 했던 환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마지막 항암치료 하는 날 ‘굿바이! 이제 나 볼일 없이 잘 사세요’ 하고 헤어졌었는데, 불현듯 다시 만나게 된 그들. 4번 혹은 8번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그들은 평생 남들에게 자기 어려움 내색하지 않고 자존심 지키며 살아왔던 자신의 일상이 무너지..

전화 위복

난 그녀의 원래 주치의가 아니었다.원래 선생님의 형편 상 내가 항암치료 뒷 부분의 두세번 진료를 봐 드린 것이 전부이다.그래서 최초에 어떤 연유로 유방암을 진단받게 되었는지 치료 과정에서 어떤 점을 가장 힘들어했는지 그녀의 심리적, 신체적 과정을 잘 모른다. 환자가 병을 진단받은 최초의 순간부터 마지막까지를 함께 하는 인연은 그리 많지 않다.오히려 그렇지 않은 환자가 훨씬 많다. 그러므로 새로운 환자를 만나면 이 병의 의학적/질병의 과정에서 현재 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만나기 앞서서 어떤 치료를 받았고 이번 검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순식간에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앞으로 그는 어떤 궤적을 밟게 될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순발..

치질의 고통

58세 유방암 환자.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8번 항암치료가 예정되어 있는데 항암치료 3번 받고 문제가 생겼다.바로 치질. 평소에 자기한테 치질이 있는지 잘 모르고 지냈던 분들도 있고몸이 힘들 때면 가끔 치질이 나오기는 했지만 좀 쉬면 바로 들어가서 별 문제가 없던 분들이 항암치료 중 치질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이 은근히 많다. 우리가 대변을 보기 위해서는 적절한 복압을 이용하여 연관된 여러 근육들의 조화로운 운동을 조절하는 다이나믹(!)한 과정이 진행되는데여러 원인으로 인해 장 점막 하 조직이 압박되면 주위 혈관들이 충혈되고, 항문주위 조직이 변성됨에 따라 항문관 주위 조직의 탄력도가 감소되면서 항문 주변에서 점막들이 덩어리를 이루다가 밑으로 내려와 항문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치질이라고 부른다.치질..

질문을 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30대 중반두 아들의 엄마인 그녀는 큰 벌이는 아니지만 몇 년간 작은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해 왔다.건강하다고 자부하였다. 생리 기간이 되면 가끔 유방통이 있었다.증상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그러던 중 우연히 뭔가 만져 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고 애매하던 차에직장 건강검진을 하였다.오른쪽 유방에 뭔가 보여서 조직검사를 했다. 유방암.크기도 작고 의사도 별로 심각하게 설명하지 않았다.크기가 작지만 유두 근처에 있으니 전절제술을 하고 재건술을 동시에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하였다.그녀는 종양 크기가 별로 크지 않은데 전절제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의사의 설명에 따랐다. 수술하기 전에 각종 검사를 다했는데 유방에서 발견되었던 혹 그거 한개 말고는 이상한 게 없었다. ..

스마일 어게인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나를 만나는 환자들혹은 항암치료를 먼저 하고 수술을 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외과선생님 말씀을 듣고 '수술도 못할 정도로 나빠졌나' 싶어 낙담한 채 나를 만나는 환자들 나는 매일 그렇게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유방암 환자들을 만난다. 무슨 말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지지할 수 있을까?무엇으로 그들의 불안을 달래줄 수 있을까? 난생 처음 암을 진단받은 사람은 그 누구도 흔연스러울 수 없다.90이 넘어 폐암을 진단받으신 나의 외할머니.70이 넘어서까지 당신이 손수 장부 정리하고 당신이 직접 뛰어 다니며 어음과 부도를 막으며 사업을 하셨던우리 가족의 최고 대장부 외할머니도 큰아들을 먼저 보내고 난 후 내가 죽어야 하는데 죽어야 하는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지..

사랑스러운 닭살멘트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외래에서 웃음꽃이 피어나는 때가 있다.나는 그 순간이 매우 소중하고 기쁘다.그런 찰나의 기쁨이 일상의 무기력함과 슬픔, 분노를 컨트롤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게 되어 내 외래를 처음 오신 40대 중반의 여자 환자.나보다 나이가 두살 많은데 참 예쁘다.같은 여자지만 말도 곱게 하고 얼굴도 곱고 여러모로 참 예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 유방암을 진단받고 잔뜩 긴장한 환자에게 집중하느라보통은 보호자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한 채 환자에게 촛점을 맞추게 된다.실컷 울고 들어와서 이미 눈시울이 붉어진 환자에게 많이 힘들지 않을 거라고, 치료 결과는 좋을 거라고, 씩씩하게 치료를 시작하자고 환자의 용기를 북돋아야 한다. 나의 온 에너지를 투..

최선의 노력이란...

수술 후 허셉틴 치료가 거의 끝나가는 그녀.원래 내 환자는 아니다.출산 휴가 중이신 선생님을 대신해서 당분간만 내가 진료하고 있다. 허셉틴 치료 자체는 별로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의사로서 환자들에게 특별히 설명하거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없어서별 대화없이 외래 진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대개는 그 전에 받은 항암치료의 후유증 때문에 힘든 문제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잘 지내신다.치료 경력도 꽤 되시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알아서 몸의 회복을 위해 애를 쓰기 때문에 의사에게 별로 기대하는 것 없이 알아서 잘 살아가신다. 그녀도 그랬다.그녀를 진료한 건 몇번 안되고지금 당장 내가 치료방침을 결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건성건성 허셉틴 처방하고 안부를 묻는 짧은 진료를 보곤 했다. 잘 지내시죠?요즘은 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