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 6

슬기와의 저녁 식사

엄마가 소개해 준 곳으로슬기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가격은 꽤 비쌌지만 자식한테 뭘 사줄 때는 그런 걸 안 따지게 된다. 주문을 하고하릴없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기분이다. 잘 컸다. 흐뭇하다. 슬기가 태어나던 해 나는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슬기 세살 때 의대에 편입을 했으니 어렸을 적 재롱피우고 이쁜 짓 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슬기는 엄마가 다 키워주셨다. 애가 제대로 잘 크고 있는지 어쩐지 챙길 겨를도 없이 나 살기 바빴다.시험기간이 언제인지 소풍은 갔다 왔는지 성적은 어떤지 그런 건 신경도 안썼다. 의대 동기들보다 한참 나이를 더 먹은 나는 내 신상 하나 유지하는 것에 급급했다. 의대를 다니던 때부터1주일간 연속되는 분..

각종 검사에도 진단이 안될 때가 있다

엄마는 심하지 않은 척추측만증이 있었다.허리는 남들보다 그렇게 심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디스크가 튀어 나와있었다. 약 먹으면 괜찮고 무리하면 다시 아프고 그런 정도. 척추관 협착증도 있었다. 아직 수술 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허리아프다고 말할 때 흔히 발생하는 구조적인 이상이 다 있었지만 나이에 비해 그 자체 상태가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 오른쪽 고관절은 선천적인 구조 기형으로 다리뼈와 골반뼈의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것은 유전이 되는 것이라 내 고관절도 그런 구조이고 내 동생도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이 병은 평생 사는만큼 살다가 닳고 닳아 관절면과 뼈가 잘 맞지 않으면 결국 고관절 치환술을 해야 하는 병이다. 엄마는 10년전에 수술을 받았고 작년 12월에 닳아진 관절면을..

환자의 가족이 되어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고누구나 환자의 가족이 될 수 있다. 내가 만난 수많은 환자들은 나에게는 그저 비슷한 진단명을 가진 한명의 환자에 불과했지만그들 가족의 소중한 그 누구였다.물론 나는 그런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사실 가족의 애타는 심정을 내 마음에 담아두고 환자를 진료하는 않았다. 첫째, 그렇게 환자를 보면 너무 지치고 힘들다. 그래서 의사생활 오래 못한다. (그러나 모든 환자는 의사가 자신을 그렇게 가까운 피붙이처럼 진료해 주기를 바란다.)둘째, 가족을 진료한다해도 그렇게 애타는 심정을 갖지 않는다. (정식으로 가운입고 병원에서 진료를 하면, 가족이라 해도 그렇게 감정이입을 잘 안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핑게를 대면서 적당히 가벼운 마음으로 본다. 나의 진심이 필요한 순간..

아직 밤 샐 수 있다

엄마는힘들 때 쏘주 마시면서 견디고 일했던 것 같다.아빠랑 싸우고 화가 나면 쏘주를 마시면서 집안 대청소, 철 지난 옷 정리를 하셨고몸이 힘든데 겨울 김장을 잔뜩 해야할 때도 쏘주를 마시면서 하룻밤을 훌쩍 넘겨 혼자 힘으로 김장을 다 하시곤 했다.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데 아파서 죽겠다고 하면서도 몸에는 힘이 남아 있어그 아픈걸 다 견디고 일할 수 있다고 했다.그래서 엄마는 사람이 '힘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어떤 연구 결과에서도 나왔듯이허벅지는 근육 뿐만 아니라 지방도 힘이 된다고 하니아마도 내 힘의 근원은 허벅지가 아닌가 싶다.뱃심도 나날이 두둑해지고 있다. 난 아직 힘이 좋다. 그래서연휴 내내 베짱이처럼 놀다가 연휴 마지막 밤을 꼴딱 세고 밀린 일을 했다.'꼼꼼히' 했으면 몇일 걸려도 부족할 ..

연휴의 마지막 밤

슬기가 쉼없이 골골댄다.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코가 꽉 막혀 코로 숨을 못 쉬고 입으로 숨을 쉰다. 그래서 입술이 갈라지고 부르텄다.편도도 엄청 부어서 라이트를 비추지 않고도 편도에 궤양까지 다 보인다. (슬기 편도는 내가 본 편도 중에 가장 심하게 붓는다.)누런 코가 나오는 걸 보니 만성 축농증이 또 악화된 것 같다. 연휴라 항생제도 못 먹고 그냥 식염수로 세척만 하고 있다. 자꾸 코를 푸니까 머리도 울리고 무겁다고 한다. 기냥 누워서 TV 본다. 좋아하는 사이다도 입맛이 써서 못 먹겠다고 하니 할말 없다. 뭣 좀 먹어볼래? 물어도 손사래를 친다.애가 안 먹으니 기분이 영 환장하겠다. 엄마는 한달만에 7-8kg 정도 몸무게가 빠져버렸다. 갑자기 몸무게가 빠지니 기운..

일상을 다시 시작하다

일면식이 없는 한 선생님의 메시지를 받고블로그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컴맹인 제가 블로그 초기 화면을 Reset 했습니다. 예전 블로그는 '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책과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졌습니다.그때는 청년의사 양광모 선생님이 다 만들어주셨지요. 예쁘게 편집도 잘 해주셨구요. 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는 제가 Fellow 1년차였던 2009년 한해 동안 유방암 항암치료 수술 방사선치료를 받았던 후배 박경희와 함께 쓴 글을 모아2010년 6월에 출간한 책입니다. 책을 쓰기로 결심했던 시점에는 내과 의국 후배인 경희가 병에 굴하지 않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였지만 정작 책을 쓰는 과정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되었고경희와 비슷하게 유방암 치료를 받는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