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슬기엄마 2011. 2. 27. 22:27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병원의 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아파 고통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심심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도 좀 바쁘게 돌아다니고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검사든 교육이든 하루 스케줄이 있어서 나름대로 병원에서의 시간표를 운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내 꿈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에이 환자는 오늘 무슨 검사를 하면 다음에는 무슨 검사를 해 보고 결론을 내린 후, 치료는 어떻게 결정하고…’ 이런 plan을 가지고 입원 환자를 보게 되지만, 치료가 어려운 일부 만성질환자들에게는 이런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

의사들은 그런 환자들을해줄 게 없는환자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예전부터 의사들이해줄 게 없다는 표현을 하는 게 참 마음에 안 들었다. 소위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의사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라며 분개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주치의가 되고 보니 어떤 파트에서 일하든해줄 게 없는환자들이 있다는 걸 통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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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환자, GB cancer 진단받고 세 번째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였다. 직장에는 잠시 병가를 낸 상태. 그는 입원 후 carcinomatosis로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intestinal obstruction으로 L-tube rectal tube를 꽂은 채 며칠간 고생하다가 colostomy라도 해서 변과 가스를 배출하는 palliative op를 하기로 했으나 open and close. 3 liter 가까이 복수만 빼고 다시 병실로 돌아온 그는 IV nutritional support, L-tube with gomco suction으로 물 한모금 넘기지 못한 채 하루가 다르게 비쩍 말라가고, 가스와 변은 전혀 배출되지 못한 채 배만 불러가고 있었다
.

그의 pain morphine에도 반응하지 않고 오로지 IV NSAIDs에만 반응하고 있었다. Ulcer bleeding Hx가 있는 그에게 NPO 상태에서 계속 NSAIDs 를 주다니 정말 안 될 노릇이지만, 그의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오전 오후에 회진을 돌면 아무 할 말도 없고, ‘오늘은 어떠세요? 가스 나왔어요?’ ‘그냥 그래요이 말 이외에는 주고받을 말이 없었다. 그에게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

터질 것 같은 그 배를 보며 이대로 두다가는 perforation되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외과에 의뢰하여 percutaneous tube insertion이 가능한지 문의하였지만 panperitonitis 가능성이 높아 수술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다시 진단방사선과에 의뢰하여 intervention을 요청하고 오늘 저녁 늦은 시간 cecotomy를 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드디어 그는 오늘 병원에서뭔가를 한 것이다
!

Gomco suction
을 새로 낸 배쪽의 tube로 연결하자 자장면 색깔의 변이 밖으로 배출되었고, 나는 정말 기뻤다. 배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가스와 변이 나오는 걸 보니 내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러나 사실 지금의 tube로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Tube가 막힐 가능성도 높고 한번 빠지면 다시 넣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어쩌면 이대로 병원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내 또래의 부인, 그리고 슬기보다 어린 딸이 한 명 있는 그
.

내가 주치의가 되어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병원에서 특별히 해줄 것이 없는 환자 한 명을 정해 시간을 갖고 만나는 일이다. 그를 위해 회진시간을 특별히 30분 정도 할애한다. 그때는 병 얘기도 하지만 그의 마음을 묻는 일을 해 본다. 그러나 30분의 시간으로 사람의 마음을 묻고 그 마음을 소통하는 일은 아주 어렵고 피상적일 가능성이 높아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까지 썩 훌륭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의사로서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피하고 싶은 환자들이 있다. 환자를 피하기 시작하면 나는 정말 비겁한 의사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그에게 말을 붙여보려고 한다. ‘오늘 어때요?’ 이런 말이 아니고 죽음을 목전에 둔 그의 마음을 두드리는 말을 걸어보는 게 이번 주 나의 과제다. 암환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통증과 외로움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