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콧물이 뚝 - 없어보이는 선생님

슬기엄마 2013. 8. 8. 17:58


난 알러지가 매우 심한데

그 원인이 되는 물질이 매우 다양하다.

초등학교 때 알러지 항원 검사를 해 봤는데

집먼지 진드기가 가장 강하고

계절에 따라 -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즌이 심한데 - 어떤 나무들에 강한 반응을 보였다.

그 때는 달걀, 밀가루에도 알러젠이 있어서 면역 치료를 4년간 받았다.

천식 때문에 15년 이상 고생한 것 같다. 1년에 한달 이상 결석을 했다.

그땐 의료보험이 안되서 병원비가 아주 비쌌는데 

엄마는 당시 내 키보다 더 많은 돈을 병원비로 썼다고 하셨다. 

천식에 좋다고 하여 고양이 뇌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스무살이 넘어 

그 많던 증상 중에 천식이 저절로 좋아졌다.

원래 그렇다. Allergy March라고 한다. 60이 넘으면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서른 살 넘어서 눈물 콧물 증상이 심해져 다시 검사해 봤는데 

검사를 하고 나니 항원 항체반응을 한 등판이 온통 시뻘겋게 변했다.  

달걀, 밀가루의 항원성은 없어졌지만, 그 외에도 여전히 강한 항원들이 많았다. 

계절별 꽃가루, 나무들이 많았다. 


검사 결과지를 잃어버려서 알레르기 항원이 뭐뭐 있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 재채기를 하기 시작하는지, 

콧물이 흐르는지, 관찰해보면 나에게 어떤 물질들이 알러지를 일으키는지 알 수 있다.


어떤 동네를 가면

어떤 산에 가면

어떤 날씨가 되면

찐득찐득한 눈물이 나고 간지럽다.

맑은 콧물이 뚝뚝 떨어지고 재채기를 하기 시작한다. 


운동을 많이 해서 체온이 올라가면 피부도 부풀어 오르고

샤워를 하고 나면 피부에 간지러움증과 발진이 생긴다. 

많이 웃거나 빨리 뛰면 천식이 생긴다. 

한번은 출발하는 기차를 잡아타려고 너무 빨리 뛰었다가 아나필락틱 쇼크에 빠진 적도 있었다.

금속에도 알러지가 있어서 바지 허리춤에 있는 단추 때문에 배를 벅벅 긁기 일수다.


그야말로 나는 알러지의 화신이다. 알러지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병들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알러지를 전공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오늘도 진료 중에 환자에게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맑은 콧물이 뚝 떨어졌다.

나는 허겁지겁 콧물을 들어마시지만(!) 이미 떨어진 콧물은 어쩔 수 없었다.

환자에게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죄송하다고 사과하였다.

갑자기 분수처럼 콧물이 터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Allergy attack 이다.

코를 킁킁 거리고

눈을 삐죽삐죽 거리고

재채기를 하는 그런 나를 

환자 자리에 앉아 바라보면 저 의사도 참 안됬네 그런 생각이 드나보다.

그렇게 낑낑대는 나에게 진료 중 진단서 떼어달라는 말을 하는게 미안해서

진료 다음 날 따로 일반외래를 찾아와 진단서를 끊어가는 환자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안되 보였나...

그래서 나는 먹는 약으로 조절이 안되는 급성발작같은 증상이 발생하면

진료를 보다가도 주사실로 달려가 안티히스타민이나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개시 환자부터 내 상태가 않좋아 보이는지

나를 걱정한다.

몇시간 코풀고 재채기 하고나면 얼굴도 벌겋게 달아오르고 붓는다.

눈도 흐리멍텅해지고 초점을 못 맞춘다.

많은 환자들이 내 상태를 우려한 오늘.

나에게 급성발작을 일으킨 알러젠은 무엇일까?


날씨?


환자?


요즘 뭔가 나를 공격하는 알러젠들이 기승을 부리는 시즌이다.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