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급여 비급여 임의비급여....

슬기엄마 2011. 2. 27. 11:31

그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 오래 치료받은 분이에요. 비급여 약제를 쓰더라도 소송을 걸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본인이 약값을 부담하게 하고 이 약을 쓰겠습니다” “지금 이 약제조합은 사전신청이 들어간 상태니까, 내년에 심의를 통과하면 그때 100:100으로 처방하여 쓰시면 안될까요? 지금 이 약을 쓰면 임의비급여가 됩니다” “아니, 지금 병이 나빠져서 환자가 증상이 심해지고 있는데, 2주 이상 기다리라는 말인가요? 어차피 보험도 안되는 약이고 환자가 자기돈 내고 치료를 받겠다는데도요?” “임의비급여로 처방하시면 불법진료라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지금 이 환자에게는 이 약이 가장 적절한 선택입니다. 저는 쓰겠습니다

환자 본인이 비급여로 약값을 전액 지불하더라도 그 처방 항목이 100:100이면 합법진료고 임의비급여이면 불법진료가 되기 때문에, 이 약제를 쓰겠다는 교수님과 이를 말리는 보험심사과의 대화이다. 불법진료 항목은 항상 소송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보험심사과에서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는 이미 비급여로 수차례 항암제를 쓰며 치료해 온 호르몬 수용체 양성의 유방암 환자.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전이에 전이를 거듭하면서도 치료에 대한 반응도 좋고, 재발하지만 오래 사는 지지부진형 암이다. 약제의 선택 폭도 넓고 독성이 강한 항암제 뿐만 아니라 항호르몬 치료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로서 치료의 묘미가 있기도 하지만, 치료기간이 길어질수록 특정 약제가 보험적용이 되느냐 마느냐가 치료법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 한번 쓴 약제를 수년이 지난 후 다시 쓰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보험심사과의 문의를 꽤 많이 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보험심사과와 상의한 다음 약제를 결정하기도 한다. 사람사는게 늘 교과서처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질병과 건강을 다루는 문제에서 조차도 돈문제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하다니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감마나이프는 최초 한번만 보험으로

 

어떠한 이유로든 생존기간이 길어지면서 각종 암에서 뇌전이를 진단받는 환자가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대개 뇌 전체에 대한 방사선 치료가 주종을 이루었지만, 요즘에는 전이된 개수가 많지 않고 크기가 3cm을 넘지 않으면 Gamma Knife surgery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는 전이된 부분만을 타겟으로 하여 감마선을 쏘임으로써 정상 뇌는 방사선으로부터 보존하고 병이 있는 곳에만 집중적인 방사선치료를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다. 이 시술은 한번에 3-4백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최초 한번의 시술에 한해 보험이 적용된다. 총 진료비의 5-10%만을 지불하는 보험 급여로 하면 감마나이프수술의 비용이 큰 부담이 아니지만, 이를 비보험으로 처리하려면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 된다. MRI 상에서 보이는 병변을 타겟으로 하여 치료하니 정상 뇌를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영상사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감마나이프수술을 하고도 서너달 사이에 또 다른 곳에 전이된 병변이 나타나면 결국 (보험이 되는) 전체 뇌 방사선치료를 하거나, 해당 부위에 또다시 (보험이 안되는) 감마나이프 수술을 해야 한다.

뇌로 전이가 되어도 수백만원 상당의 비보험 시술을 몇차례 더 받을 수 있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환자는 비록 돈은 많이 들지만 생존 기간이 연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돈이 없는 환자는 한번의 감마나이프시술 후에 뇌전이가 재발하면 전뇌 방사선치료를 선택하게 되고, 정상 뇌가 방사선에 노출된 후 인지기능의 저하 등 후유증을 앓고 전신상태도 저하되는 경향을 보인다. 전신상태가 나빠지면 항암치료를 더 받기도 어려워진다. 10년전 진단 당시부터 뇌전이가 동반된 상태로 진단받은 비소세포성폐암 환자, 보통 예후로 치면 6개월을 넘기는 것도 어려울텐데, 첫 아기를 막 낳고 폐암을 진단받은 그녀는 감마나이프수술만 4, 폐암에 대한 항암치료는 8번째 약제를 변경하여 치료중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지 몇번은 표적치료를 겸한 항암치료를 병행하기도 했다. “4번째 뇌로 전이되고나니 이제 좀 힘드네요. 아무래도 회사는 쉬어야겠어요.” 진단서를 작성해주며 나는 4기 폐암환자로 치료받아온 긴 병력에 놀랐고, 무엇보다도 10년동안 병을 이겨내고 있는 그녀가 대단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비보험 시술과 비보험약제를 감당할만큼의 경제적 여력이 되었었나보다 짐작하게 된다.

 

사회경제적지위와 암 환자의 생존률

 

경제적 소득이 낮을수록 병이 진행된 상태로 진단받을 가능성이 높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암 진단 5년 내의 사망 가능성도 높다는 연구가 여러 암에서 이루어진 바 있고 상식적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내 아프리카 어메리칸과 히스페닉 어메리칸의 암환자 치료 패턴에 대한 여러 연구에서도 이들 인종에서 경제적 능력이 낮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의료접근도가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병이 더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완치를 목적으로 한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비율이 낮고, 특정 치료법의 선택 상황에서 치료를 포기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2 8일자 Cancer (E-pub)에 실린 한 논문(Are patients of low economic status receiving suboptimal management for pancreatic adenocarcinoma?)에서는 췌장암 환자 16,104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환자들이 수술 및 항암, 방사선치료를 덜 받는 경향이 있으며 수술 전후의 사망률이나 장기 사망률이 높게 보고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같은 저널에서 한달 전에 실린 논문(The impact of health insurance status on the survival of patients with head and neck cancer)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피츠버그병원에서 두경부암을 진단받고 치료받은 123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보험가입 상태에 따라 환자군을 분류하여, 보험이 없거나 Medicaid 소속의 환자가 일반 HMO 가입환자에 비해 1.5, Medicare 장애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1.69배 사망률이 높게 나타남을 분석하여 이들의 장기 생존률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입보험유형에 따른 생존률의 차이는 confounding factor로 간주될 법한 흡연이나 음주와는 상호작용없이 독립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통계적 차이가 있는 변수로 분석되었다. 즉 연령, 성별, 인종, 흡연, 음주, 사회경제적지위, 치료기법, 암 병기등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질병의 예후인자와는 독립적으로 가입한 보험유형이 예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한 셈이다.

 

의료행위는 단지 순수한 의학적 지식만으로 진단과 치료가 결정되고 환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실천되는 사회적 행위로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내 눈앞에 있는 환자를 진료할 때는 최고 좋은 약, 최고 정확한 검사, 최고 환자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 꼭 이 문제가 되고 의사인 나의 인식과 환자의 인식의 차이, 눈에 보이지않는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작동하여 비슷한 치료를 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발생하나 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면 당연한 결론일까? 전체적으로 의료의 질을 낮춰 평등하게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진료하는 암환자들이 의료 외적인 요인의 영향을 덜 받으며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노력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난 아직도 감으로 환자보지 말고 공부해서 객관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환자를 보라는 꾸중을 듣는 신출내기 종양내과 의사이다. 갈길이 멀다. 공부도 많이 하고 경험도 많이 쌓고 논문도 많이 쓰고 환자도 걱정하고연말인데 내 가족들도 안녕한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 12월 마지막 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