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12

오늘 하루는 선물

최선을 다해 살지만그리고 지금 내가 그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조건에 처해 있다는게 다행이라는 걸 알지만그래도 허탈한 마음이 든다.그래도 외롭고 고독하다. 나?아니 우리 모두! 우리 마음 속에는내가 절대적으로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기 보다는남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더 느끼는 것 같다.내가 지금 비록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누구보다는 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기 쉽상이다.그래서 때론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해버리게 된다. 무의식중에 내 뱉은 나의 한마디 말로 그 누군가는 엄청나게 상처를 받는다. 난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산다. 지금 나에게 입원해 있는 환자들 중 대부분이호스피스 환자이다. 의사로서 의학적인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태이다. 증상 조절만 하고 있다.환자를 퇴원시키거나..

마음의 짐, 마음의 빚 2 - 호스피스 완화의료팀

노력도 중요하지만핵심적인 결과로 증명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제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동안 함께 일하면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우리 호스피스 팀은 세상 그 어느 일류 병원의 완화의료팀에 못지 않은 능력있는 일꾼들로 구성되어 있고환자에 대한 헌신과 봉사, 사랑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이라고 자부합니다. 환자 한명 한명을 내 가족보다 더 소중히 그리고 환자의 가족들까지 그 모두를 포함하여환자 임종의 순간 그리고 가족이 사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견디는 그 순간까지여러분은 함께 하고 있습니다.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도 고귀한 삶을 살다 가는 별입니다. 그 별들이 자기 빛과 향기를 잃지 않도록 여러분이 끝까지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저도 언젠가 미래에 죽을 때 당신들의 손길을 기다리게 될 것 ..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책상 위에 성모상을 그녀에게 갖다 주었다. 그 성모상은 예전에 내가 치료하지도 않은 환자의 보호자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니 신의 은총이 나에게 함께 하길 바란다는 기원을 적은 카드와 함께. 엄마가 점점 나빠지고 임종 준비를 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 그녀는 나에게 메일로 여러가지 문제를 상의했었다. 나는 본 적도 없는 환자에 대해 의학적인 부분을 코멘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적지근한 대답.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고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시라고. 그냥 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 그런 메마른 위로의 말을 건넬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런 답을..

다 알고 있는지도

아마도 뱃속 암이 진행되면서복강 내 가장 큰 혈관인 대동맥을 누른것 같다.큰 혈관이 눌리니 혈류 흐름에 장애가 생기고그러면서 와동된 혈류 흐름 때문에 혈전이 생긴 것 같다.그렇게 생긴 동맥혈 혈전은 바로 뇌로 날아가 뇌경색을 일으켰다.혈관을 누르고 있는 종양 때문에 혈전의 생성 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그래서 반복적으로 뇌경색이 발생하였다.처음에는 말을 못하는 정도였는데반복적인 뇌경색 이벤트가 있은 후에는의식도 나빠졌다.경기도 한다. 그녀 나이 이제 겨우 30대 중반이다. 그렇게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자꾸 경기를 하니까 진정제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잠자는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다.애기처럼 피부도 하얗고 얼굴도 너무 예쁘다.애기 엄마같지 않다. 혈전이 계속 생기고 뇌로 날라가니병을 콘..

이거 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50대 후반의 그녀. 담낭암을 진단받고 수술과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다 마치고 3개월만에 처음 찍은 CT에서 재발된 것을 확인하였다.아무런 증상이 없다.국소적으로 재발이 되었다.그래서 또 재수술을 하고 다시 항암치료를 하였다. 항암치료 세번 하고 찍은 CT에서 또 다른 부위에서 재발이 된 것을 확인하였다.역시 아무런 증상이 없다.약을 바꿔서 항암치료를 여섯 싸이클을 했다.그런데 병이 더 번져있었다.다시 약을 바꿔서 항암치료를 했다.이번에는 약물 부작용으로 설사하고 입안도 많이 헐고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아무 증상도 없는데 계속 항암치료를 했더니 몸만 상하는것 같다.그녀는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10kg 이상 살을 뺐다.그리고 명품 브랜드 옷도 꽤 샀다.부자는 아..

너무 안타까워서 미워할 수 없는...

지금 병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난소암 환자.환자는 병원에서 2시간 거리에 산다. 환자는 올 2월 이후로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2월까지 썼던 항암제는 나름으로 효과가 있어서 종양표지자 수치도 정상으로 유지되고- 난소암은 종양표지자가 질병의 활성도를 비교적 잘 반영하는 암이고 환자 병 상태와도 상관관계가 높은 편이라 좋은 마커가 된다 - 복통 등의 증상도 없었다. 다만 항암제의 독성 자체가 환자를 너무 힘들게 했다.환자는 더 이상 치료를 하지 못하겠다고 항복 선언을 했다.환자는 아이가 어려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려는 사람이었는데도 더 견딜 재간이 없었나 보다. 한달 간격으로 경과관찰 하기로 했다. 항암치료를 중단한지 3개월만에 복수가 차기 시작한다. 복수가 힘들어서 외래에 와서 물을 빼고 간다.그 간격..

최선을 다했지만 후회가 크다

이번 목요일이 수능이다. 환자의 고3 큰아들이 이번에 수능을 본다.엄마는 아들이 대학가는 걸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이들에게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걸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큰 아들이 엄마걱정, 집안걱정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 잘 보고 대학에 합격하는 걸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끝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다고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한다는게 무조건 항암치료를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몇 번 얘기했지만환자와 남편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환자의 전신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기운이 없기는 했어도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한달 사이 병이 나빠지면서 폐 병변도 나빠지고 있었다.기침이 심해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여러 종류의 기침 억제제를 써도 효과가 없었다...

젊은 엄마의 임종준비

외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대기실 풍경은 생각보다 다이나믹하다. 아직 내가 암환자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받아들이기 싫어서, 아직 세상을 똑바로 응시할 자신이 없어서, 아무하고도 말 안하고 조용히 대기하다가 나만 만나서 진료받고 돌아가는 환자도 있고 몇년 치료받으면서 겪을거 다겪고 마음고생도 다 하고 그래서 힘들어 하는 후배 환자들을 만나면 이것저것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환자도 있고 치료 주기가 맞아서 자주 만나다보니 비슷한 형편과 비슷한 치료를 받는 환자들끼리 친해져서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만나고 서로 연락도 하며 지내는 환자 그룹도 있다. 그렇게 친해진 환자들은누가 열나서 입원하면 문병도 가고좋다는 거 있으면 나눠 먹고누가 우울해 하면 같이 만나서 수다도 떨어주며 동맹관계를 유지한다. 의사의..

호스피스 완화의료팀을 만나보세요

지난 10월 10일, 보건복지부는 말기암환자 전문 의료서비스 정착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였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완화의료팀 (Palliative Care Team, PCT) 제도를 도입한다.의료기관이 일정 요건의 완화의료팀을 등록, 운영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다. (완화의료팀이란 호스피스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을 운영하지 않는 병원-우리병원처럼-에서 말기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 서비스를 하기 위해 해당 과가 협진을 내면 완화의료팀이 환자를 면담하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입원이나 외래 모두 가능하고 협진의 형태이기 때문에 주치의는 바뀌지 않는다.) 2. 가정호스피스 완화의료제도를 도입한다. 완화의료 전문기간과 연계한 가정호스피스..

CPR video

오늘은 3개월에 한번씩 있는 임상암학회 분기집담회가 있는 날이었다. 오늘 논의된 세가지 주제 중 한가지가 암환자의 사전의료지시서 (Advanced Directives) 를 논의, 결정하는 것을 다루고 있었다. 교과서/이론적으로는4기 암(전이성/재발성)을 진단받는 순간, 의사는 환자와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해 논의하라고 되어 있다. 즉 의사는 암의 진행으로 인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그런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입실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어떠한지, 만약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벤트로 인해 자신이 의학적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누가 내 뜻을 대신하여 결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 미리 환자의 의견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나의 현실에서는 이를 실천하기 어렵다.환자에게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