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339

2014 갑오년 첫날

올해는 갑오년. 120년전 1894년은 갑오농민전쟁으로 시작하였다. 이어서 조선을 차지하겠다는 일본과 중국의 청일전쟁이 우리 땅에서 벌어졌다. 어이없는 전쟁. 왜 남의 나라 이권 다툼을 왜 우리땅에서 하도록 놔둔 것인가? 그리고 갑오개혁. 120년전 갑오년은 역사의 격변기. 그리고 비극의 근현대사의 발원지가 되었다. 사람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른 코드로 읽고 해석한다. 그것이 오늘의 우리. 오늘 시작한 갑오년은 어떤 한해가 될까? 전봉준 황동규 1손금 접어두고 눈 오는 남루 寒天에 법도 없고 겁도 없는 논 땅 위에 깔리는 허연 눈가루 마음에 짓밟는 형제의 손. 2눈떠라 눈떠라 참담한 시대가 온다. 동편도 서편도 치닫는 바람 먼저 떠난 자 혼자 죽는 바라 同列에 흐느낄 때 만나는 사람. “눈떠라 ..

쓴소리 1

몇일 사이 국시를 앞둔 몇몇 4학년 학생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어쩐 일인지 나는 강의실 수업으로 종양학이나 유방암에 대해 수업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끔 실습을 나온 학생들에게는 종양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암환자를 진료하는 것의 학문적인 측면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강의실에서 주로 수업을 듣는 1,2학년 학생들에게는 임상의학 입문으로 나쁜 소식 전하기, 의사와 환자의 관계, 선택수업으로 있는 호스피스 수업에서 말기암환자에게 항암치료를 하는 것의 의미, Women in Medicine 수업에서 여자의사로 일한다는 것 등의 (소위 마이너) 분야로 수업을 주로 했던 것 같다. 주제가 그래서 그런지, 슬라이드를 많이 만들어서 많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보다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

이력서

만난지 몇번째결혼한지 몇년째 몇번째 생일몇번째 기념일시간이 가는 것,횟수가 지나는 것에 별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내가블로그 천번째글을 쓰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 대해 꽤나 의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말해 주었다.하루를 한결같이 살아야 하는 것 처럼천번째가 되는 그날도 그랬으면,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오늘의 이야기를 쓰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어린 충고를 해 주었다.그 말이 정답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솔직히 긴장이 되었다. 천번째 쓰는 글만큼은 나의, 그리고 그 누군가의 심금을 울릴만큼 멋진 글로 소감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내가 쓰는 글은 내 머리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뒹굴고 있는 이 현실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

최선 2

두 아이의 엄마둘 다 아들.한명은 유치원, 한명은 초등학교.바람 잘 날 없다. 그래서 엄마는 바쁘다.아이들 학교 학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것도 그렇고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들 과제 봐주는 것도 그렇고 정신이 없다. 유방암 치료를 마친지 2년도 되지 않아 한쪽 폐에 물이 가득찼다. 나는 전날 그녀의 사진을 리뷰해 보고 깜짝 놀랐다.나보다 한참 젊은 그녀. 내일 그녀를 어떻게 만나나.얼마나 절망하고 힘들어 하고 있을까.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다음날 외래에서 처음 만난 그녀.나는 그녀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녀는 나한테 오랫만이라고 인사한다. 저 선생님 알아요. 예전에 항암치료 받다가 열나서 입원했을 때 선생님 본 적 있어요. 저 그때는 선생님 환자는 아니었거든요.제 옆에 입원한 환자 ..

최선 1

딸이 엄마 대신 외래에 왔다. 멀리 시골서 사는 엄마.서울 사는 딸네 집에 오셨다. 요즘 들어 소화가 잘 안되는 거 같다는 엄마의 한마디.딸은 시골 가시기 전에 내시경 검사라도 한번 받고 내려가시라며 엄마 등을 떠밀어 내시경 검사를 받게 하였다.그렇게 진단받은 위암, 엉겁결에 수술을 받았다.수술을 하러 들어가보니 CT에서 보이는 것보다 복막 전이가 훨씬 심했다. 나이도 많고몸도 약한 엄마. 항암치료를 받으셔야 한다고 한다.엄마는 '수술 했으니 당연히 항암치료를 받아야지' 하신다.딸은 엄마한테 4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수술 다 받았으니 빨리 집으로 가야 한다, 집을 너무 오래 비웠다, 마음이 급하다며 퇴원하자마자 당신 혼자 버스타고 시골 집으로 돌아가셨다. 딸은 걱정이 되서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마음속 구상 1

가능하면 매일 블로그에 일기처럼 글을 썼다.블로그에 쓴 글은 아주 솔직하게 내 심정을 진솔하게 담아 쓴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부 검열. 이 글은 일단 내 환자가 보고 있고 다른 병원 환자들도 보고 있고, 동료 의사도 보고 있고, 내 윗사람도 보고 있다. 나를 모르는 그 누구도 내가 쓴 글을 통해 나를 읽어낼 수 있으므로 나 스스로 내부 검열을 하고 내 보낸다.적당히 나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나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없다.상당히 정치적으로 판단하여 글을 쓰고 올리는 셈이다.어차피 우리는 여러개의 가면을 바꿔쓰면서 사는 존재니 특별할 것도 없다. 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사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었다.내 이야기의 본질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도 가느다란 실마리만 슬..

마음의 짐 마음의 빚 1 - K 선생님께

K 선생님께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제가 그 요청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제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요. 사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종의 ‘문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병원을 새롭게 ‘디자인’해보겠다는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시스템과 제도가 아닌 문화라… 아직 완성형이 아닌 상태로 당신이 제작한 비디오 클립을 보고 어렴풋이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할 수는 있기는 했지만 말이죠. 의사가 된지 몇 년이 되었고 그 후로도 몇 년째 일하고 있지만 암 분야가 아닌 쪽으로 환자 혹은 환자 가족이 되어 다른 병원에 가면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특히 큰 병원은 아주 막막하죠. 내가 어느 창구부터 들러야 하..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을 다했지만... 2000년 의과대학에 편입했을 때 나는 나의 존재 조건 자체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동기들보다 7-8년 나이가 많은 것,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아줌마 의대생이라는 것, 사회학을 공부하고 의대에 편입했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동질적인 속성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의대생 사회에서 매우 이질적인 조건이었다. 강의실에서 수업만 들으면 되었던 의대생 시절보다는 인턴, 레지던트로 일하던 전공의 시절에 나를 규정하는 좀 더 강력한 ‘딱지’가 되었다. 나는 그 ‘딱지’를 떼어버리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해야 했다. 의대 입학 당시,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온 상태라 내 주위의 일상적인 것, 많은 것들을 분석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사회과학에서는 그..

빛이 나는 얼굴

아마도 나는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사나보다.외래를 보러 온 환자들이 진료가 끝나면 병원 내 커피집에 가서 커피를 사서 외래방에 넣어주고 간다.커피를 선물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가시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내 몰골이 너무 피곤해 보이니 이거 마시고 정신 차리라는 뜻 혹은 졸지 말라고. 나이 사십이 넘으면 그 사람 인생이 얼굴에 반영된다고 했다.그래서 사십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다.진실된 마음이 중요하지 외모가, 얼굴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첫인상, 관상이라는 것도 중요하다.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 어떤 철학으로 삶을 꾸려가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상의 습속(habitus)들이 얼굴에, 외모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내가 비록 멋드러진 화장술 ..

늦은 시간 회진

사실 입원환자 회진은 오전 일찍 끝내야 한다.회진을 돌고 치료 방침을 결정해야 전공의가 내 지시대로 처방도 내고검사 결과도 확인하고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푸쉬도 하고 - 회진 정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무수히 고민하고 제도개선을 요구했던 시절도 있었다. 많이 좋아진 부분도 있고, 여전히 구래를 답습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여하간 전공의는 회진 정리를 하고 오전에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시스템에서라도. - 여기 저기 병동에서 날라오는 병동 콜도 해결하고예상치 못하게 상태가 나빠진 환자에게 달려가 봐야 하고그 와중에 밥도 좀 먹고당직서느라 못잔 잠을 의자에 앉은 채라도 선잠으로 보충을 해야 한다.그렇게 전공의가 일을 하려면내가 일찍 회진을 돌고 정리를 해줘야 한다. 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