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112

졸업 축사

한국 임상 암학회 내 유방암 분과 모임이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있는데 여기 가면 유방암을 주로 보시는 다른 병원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우리 병원 우리 과에서 다른 암을 진료하시는 선생님들보다 유방암 분과에서 만나는 다른 병원 선생님들이 제 심정을 잘 이해하실지도 모르겠다. 같은 병을 진료하는 의사라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 아, 그거! 척 하면 척 통한다. 그런 느낌을 받기 때문에 난 이 모임에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나간다. 위로도 받고 도움도 얻을 수 있으니 내가 기다리는 모임이기도 하다. 아마 그만큼 유방암 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은 다른 암과 다른 어떤 특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방암은 쓸 수 있는 약제도 매우 다양하고 - 항암제, 항호르몬제, 표적치료제 같은 유방암이지만 호르몬, ..

머리도 훈련하면 좋아질까요?

케모 브레인(chemo brai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암치료를 하고 나면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인해 뇌 신경세포가 손상되면서 뇌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증상은 단기/장기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 그리고 무슨 생각이나 말을 할려고 하는데 술술 잘 안 풀리는 느낌이 나는 것 혹은 느려지는 것 그런 반응입니다. 이번 Breast Cancer and Research Treatment 10월호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유방암 치료 후 뇌기능 활성화를 돕는 연구가 소개 되었습니다. Advanced cognitive training for breast cancer survivors :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Diane Von Ah et al Br..

손톱 관리

HER2 양성으로 허셉틴을 맞는 분들 혹은 새로 나온 퍼투주맙을 맞는 분들 그리고 먹는 약 타이커브를 드시는 분들에게 손톱 문제가 잘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암세포의 표면에 HER2 라는 물질이 발현되는데 표적치료제는 그 경로를 막음으로써 암세포만을 죽이는 효과를 갖게 되어 표적치료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피부 세포 중 일부에서도 HER2가 발현되기도 합니다. 손톱같은 정상 세포에서도 말이죠. 그래서 이런 약을 투약하는 환자 중에는 손톱이 약해지고 쥐뜯어먹은 것처럼 갈라지고 약해지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 목욕도 시키고 옷도 갈아입혀야 하고 등교하는 딸아이 머리도 빗겨줘야 하는데 내 손톱으로 아이들 얼굴에 흉터를 낼까봐 조마조마 합니다. 음식하랴 설겆이 하랴 집안일 ..

또 한번의 BRAVO!

오늘 저녁, 서울대 외과 노동영 선생님과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의 조주희 선생님, 그리고 한국 유방암 생존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하는 골드만 삭스 사회공헌팀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재 자신이 유방암 생존자이기도 한 에린은 내가 종양내과 의사이고 유방암 환자를 주로 진료한다는 말을 듣자 마자 봇물 터지듯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질문은 내가 외래에서 환자들에게 받곤 하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좀더 큰 사회적 틀 안에서 구조화하고 싶어하였고, 생존자들이 느끼는 문제들을 개별적인 노하우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표준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환자들은 그 환자들의 수만큼 다양한 질병경험을 하고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는 ..

경희야 축하한다

경희야 조금 더 참을려고 했는데 못 참겠다. 행복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으니까. 네가 엄마가 되는구나. 도담이 엄마. 너의 눈물이 너의 고통이 너의 인내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큰 행복으로 활짝 꽃피우길 기도한다. 정말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누구도 나 개인의 삶은 개인의 삶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관계를 맺고 살게 된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너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도담이 소식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세상에 전파될거야. 도담이는 그 엄청난 사랑과 행복을 받는 아이가 될거고. 이번 겨울이면 4년을 넘어가는구나. 이 세상의 행복을 네가 다 가져가도 좋겠다. 경희..

차라리 무관심으로

명절날 일하지 마세요. 일하면 팔 부으니까. 일 하면 쉽게 피로해지니까 일하지 마세요. 어떻게 한국 여자가 명절날 일을 안할 수 있겠어요. 내가 해 놓고도 부질없는 말이다. 오른쪽 유방암을 수술한 환자. 오른손잡이인 환자는 나도 모르게 손을 쓰게 되고 림프부종이 자꾸 재발한다. 우리집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이것저것 일이 많고 부산해 지는게 명절인데 한집 살림을 도맡아하는 여인네가 추석날 일을 안하고 어떻게 하루를 보낼 수 있겠는가. 겉으로 드러나게 장애가 보이는게 아니니까 아무도 안 알아준다. 나도 내가 유방암 환자라는 걸 별로 티내고 싶지 않다. 못 알아채면 다행이다. 모른척 해주면 고맙다. 다들 처음에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지만, 결국 남의 일이라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사실 시들해지기만 하면 다..

불안과 우울함, 우리의 그림자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속 한구석에 늘 불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애써 구석에 구석에 밀쳐두고 숨겨두었는데, 때만 되면 슬그머니 기어나옵니다. 그리고 활개를 치죠. 그렇게 불안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뒤따라 우울함도 나를 흔들어 놓고 갑니다. 병이 있는 환자만 그런 걸까요? 암환자만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저도 그래요. 그렇게 마음이 와동을 치면 뭐가 되었든 내 마음을 잡아줄 것을 찾아 헤맵니다. 찾지 못해 술도 마시고 방황도 합니다. 이제 치료를 마쳤으니 잘 지내세요 수술한 환자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면 나는 속이 후련한데 - 아이고, 이제 이 환자 치료 끝났네 - 정작 환자는 불안합니다 - 과연 난 완치된 걸까?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걸까? - ..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수술받고 항암치료도 마치고 지금은 항 호르몬제만 드시고 있는 분입니다. 정기적으로 찍는 뼈사진에 약간의 이상이 보여서 MRI 로 정밀검사를 했는데 아직 애매한 상태입니다. 뼈전이 클리닉에서 환자의 증례를 토의하고 일단 전이의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 일단 경과관찰 하기로 했습니다. 정밀 검사를 하고 환자가 얼마나 불안해 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닌 여러 선생님들과 토의하여 내린 결론이 전이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거라고 결론지어져서 내심 기뻐하며 환자 외래방문을 기다렸습니다. 정작 만난 환자는 뼈전이 여부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걱정이 너무 많아 우울해 보였습니다. 경직된 얼굴 표정. 몇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요즘 많이 우울하신가요? 라고 물었더니 아주 당연하다는..

내 나이 70 이어도

할머니가 목소리도 가냘프고 늘 별 말씀도 없으시고 원래 얌전하시고 몸도 좀 약해 보이는 듯 싶고 왠지 비리비리(!)할 것 같은데 어느 새 수술전 항암치료 8번 유방 전절제술 방사선치료 1년간 표적치료를 다 받으셨다. 특별한 합병증 없이 이 전 코스를 다 마치고 오늘 마지막 표적 치료를 받으러 오신 것이다. 할머니, 축하드려요. 기념 초콜렛 하나 받으세요. 한사코 안 받으시려고 한다. 나도 뭘 사왔어야 하는데... 하시면서.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도 특별한 이벤트 없이 무사히 치료를 다 잘 받으셔서 다행이에요. 이제 마음 홀가분하시죠? 할머니 눈가가 갑자기 벌겋게 짓무른다. 눈물이 글썽글썽 유방을 다 잘라내 버린게 너무 속상해서 잠이 잘 안와. 나이 먹었는데 이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 싶어. 내 나이 70 ..

치료적 궁합

토요일인데 유방암 초진환자가 왔다. 보통 초진환자는 평일에 와야 필요한 검사도 하고 혹시 다른 과 진료가 필요하면 같이 봐야 하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려면 평일 진료가 좋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유방암 초진환자 진료를 잘 받지 않는데 오늘 환자가 지정해서 예약을 했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온 엄마.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나서 수술 후 항암치료를 임상연구로 하자는 말씀을 들으셨다는데 그 설명을 듣고 나서 그걸 꼭 해야 하나 부담이 되어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들으러 오셨다고 한다. 환자 본인은 암이라는 진단과 이어지는 수술 등으로 정신이 없어서 의사가 시키는대로 그냥 하겠다고 싸인을 했는데 그리고 왠지 안한다고 하면 불이익을 볼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하겠다고 해놓고는 집에 와서 얘기했더니 남편과 아들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