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이 환자가 약 먹는 법

72세 할머니. 수술 후 2년만에 수술부위와 주위 목 림프절로 재발이 되었다. 재발된 위치는 대개 유방 근처인것 같지만 엄밀하게 병기를 따지면 목 근처 림프절은 원격전이의 위치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이성 유방암으로 보는게 맞다. 다행히 컨디션이 좋으신 편이라 광범위하게 시행한 유방 및 근처 림프절 절제술을 잘 견디셨다. 일단 급한 불은 껐다. 그렇지만 이후 항암치료를 추가적으로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했다. 할머니는 삼중음성유방암이라 항호르몬제를 쓸 수 없다. 할머니 컨디션이 좋고 씩씩하셔서 나는 할머니에게 항암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항암치료에 대해 가족과 상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필요없다고 하신다. 내가 이렇게 정정한데 내 목숨을 왜 자식들하고 상의하냐며. 할머니는 이미 2년전에 아드라이마이신과 ..

From San Antonio (2) - tumor dormancy and recurrence

유방암을 진단하면 눈에 보이는 암을 수술적으로 제거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술 주위 병변과 주위 림프절을 어느 정도 포함하여 방사선치료를 한다. 수술과 방사선치료는 국소적 치료(local therapy) 인데 비해 항암치료는 전신치료 (systemic therapy) 이다. 그래서 항암치료 혹은 항호르몬 치료는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혈관을 따라 온 몸의 어딘가에 떠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미세전이 (micrometastasis) 세포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모든 환자에서 미세전이가 있는걸까? --> No 미세전이가 있다는 것을 어떤 방법을 통해 입증할 수 있는가? --> 아직까지 실험적인 몇몇 방법이 개발되고 있기는 하나, 아직 실험적인 수준이며, 환자들에게 직접 적용할 수는 없는..

방사선 치료는 어디서?

대개의 방사선 치료는 컨디션이 왠만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자기 힘으로 걸어다닐 정도는 되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그정도가 안되는데 치료를 하면 치료의 효과보다 독성이 환자를 더 괴롭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방사선치료는 외래에서 통원 치료를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뇌전이로 어지러움증이 심하거나 토해서 먹을 수가 없을 때, 척수전이로 걸을 수가 없을 때, 그럴 때는 입원해서 방사선치료를 합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매일 병원을 왔다갔다 하는 일이 환자입장에서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힘도 들구요. 또 어떤 경우는 방사선치료 첫 1-3회 때에 평소보다 더 피곤하고 아픈 곳이 더 아픈 것 같은 그런 불편감을 더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안하고 퇴원하네요

원래 말이 없는 그녀. 오늘 치료받을 수 있겠어요? 컨디션 괜찮나요? 하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난 그동안 수개월 동안 외래에서 그녀를 위해 줄기차게 항암제를 처방해 왔다. 가끔 찍는 그녀의 가슴 엑스레이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다. 숨은 잘 쉬고 사시나... 폐전이가 심한데, 환자는 그런 폐에 적응을 해서인지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하신다. 많이 움직이면 숨이 좀 차기는 하지만, 워낙 움직이지 않고 지내니 호흡곤란 때문에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하던 중 얼마전 뇌전이가 생겨서 감마나이프를 하였다. 뇌막 전이가 의심되어 오마야도 넣었다. 오마야로 척수강 내 항암제를 투여하는 치료를 하던 중 그녀가 예정에 없이 외래에 왔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서 왔어요. 말이 없는 ..

통증 조절은 혈압 조절을 하는 것처럼

암환자가 컨디션에 나빠 입원했다가 혈압이 떨어지는 이벤트가 생기는 경우, 패혈성 쇼크인 경우가 많다. 패혈성 쇼크는 항생제가 투입되는 시간, 혈압이 정상화되는 시간을 가능한 짧게, 모든 조치를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패혈성 쇼크가 의심되면 - 확진되지 않았더라도 - 아주 집중적인 검사와 과량의 약제 투여가 시작된다. 살고 죽는 것이 시간싸움이다. 약을 쓰고 환자 옆에서 계속 혈압을 잰다. 소변줄을 끼우고 시간당 소변량을 체크하며 약제의 반응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한다. 혈압승압제를 쓰고 몇 분 단위로 혈압을 재면서 환자의 상태가 안정화되는지를 확인한다. 같은 혈액 검사도 수치가 안정화될 때까지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대개 환자 옆에서 서너시간을 서성거리게 된다. 암환자의 조절되지 않는 암성..

검사 자주 안하면 안되요?

그녀는 암을 세번 진단받았다. 유방암 난소암 갑상선암 진단받고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재발하고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그렇게 지내기를 7년째. 그러나 다행히도 매번 치료 성적이 좋다. 지난 주 찍은 PET-CT 를 보니 현재 눈에 보이는 병은 없는 상태다. 지난 번 항암치료를 예정대로 다 마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훨씬 지친것 같았다. 곁에 있는 남편이나 언니는 꾹 참고 끝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종용하지만 치료를 받는게 환자지 가족인가. 항암치료를 받고 힘든 건 환자의 몸이다. 무엇보다 환자의 의지와 체력이 중요하다. 환자는 서로 다른 암이 진단되고 반복적으로 수술, 항암치료를 받는 생활을 너무 힘들어하고 많이 울었다. 나는 예정된 치료를 끝까지 다 마치지 못했지만, 치료..

이런 삶도...

그녀는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을 때부터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수술 후 항암치료도 한번 받고 말았다. 왜 그런지 모른다. 다른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라 기록도 명확하지 않다. 그렇게 지내다 2년만에 재발이 되어 우리 병원에 오셨다. 보호자가 없다. 첫 재발인데 폐, 뼈, 간, 뇌까지 전이 범위가 넓고 종양 분포 범위도 넓다. 내가 아무리 물어도 환자는 별 얘기를 안한다. 무슨 검사를 하자고 하면 항상 머뭇거린다. 사회복지팀에 연결하여 일정 부분 경제적 지원을 받으실 수 있게 해드렸다. 한동안 치료를 잘 받으셨다. 생각보다 항암제 반응이 좋았다. 항상 피가 나고 염증이 있어 진물이 흐르던 유방도 깨끗해졌다. 여기 저기 전이되었던 곳들이 다들 얌전해졌다. 환자의 치료 스케줄이 D1, D8 그렇게 3주에 ..

할머니의 이중잣대

EMR 상 할머니 나이는 85세다. 실재 나이는 88세라고 하신다. 뼈전이, 폐전이가 동반된 전이성 유방암. 재발된지 4년째. 그 사이에 뼈 전이가 악화되면서 항호르몬제를 한번 바꾼 적이 있다. 지금은 두번째 항호르몬제인 아로마신을 드시고 계신다. 할머니는 항호르몬제 치료만으로도 비교적 병이 잘 조절되는 타입에 속한다. 3개월에 한번씩 하는 정기 검사를 안하고 싶어하신다. 맨날 비슷한데 뭐하러 자꾸 사진을 찍냐고 성화이시다. 충청도 서해안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병원도 더 이상 안 오고 싶고 약도 그만 먹고 싶다고 한다. 매번 외래에서 약 그만 먹으면 안되냐는 타령이다. 할머니, 힘든거 없잖아요. 그냥 하루에 한알 드시기만 하면 되요. 지금 칼슘약도 잘 드셔서 골다공증도 없고 좋아요. 그냥 이렇게 약 드..

김치 선물

김치 담글 줄은 알아? 우리 집 김장 한거 한통 챙겨왔어. 한번 맛좀 봐. 우리 언니가 저희 집 김장을 대신 해줬는데요, 우리 언니 김치맛은 우리나라 최고에요. 한번 맛 좀 보세요. 종류별로 조금씩 싸 봤어요. 대개 비닐 봉지나 작은 그릇에 김치를 담아오신다. 손이 큰 어떤 환자는 거의 항아리 크기만한 큰 플라스틱 통 2통에 김장김치를 보내주시기도 한다. 우리 엄마는 환자들이 선물로 준 김치가 모이면 은근 올해 김장을 안할 기세다. (그러나 엄마도 버티다가 어제 결국 김장을 하고 말았다 ^^) 할머니가 우리 집 김장 해줬어요. 선생님 입맛에 맞을 지 모르겠어요. 간 전이가 의심되어 조직검사를 할려고 입원한 나랑 동갑내기 환자, 어제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도 아직 안 나왔는데 당일 퇴원하면서 김치를 한통을 ..

임상연구의 중간결과 발표

환자들에게 임상연구를 제안할 때 이 연구가 환자에게 100% 이득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시작하는 연구는 없습니다. 그렇게 이득이 될 것이 확실하면 임상연구를 하지 않고 바로 현실에 적용하는게 윤리적으로 맞는 겁니다. 그러나 임상연구를 거치지 않은 채 그렇게 확신할만한 약제를 찾고 치료에 적용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근거가 필요합니다. 종양학, 항암제의 개발 역사는 거듭된 임상연구에 의해 그 지식이 축적되어 왔습니다. 실험실에서 세포실험, 동물실험을 거쳐 일정정도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난 약제를 1상, 2상, 3상 연구에 수차례 적용하여 새로 개발된 약제가 기존 약제에 비해 비슷하거나 혹은 우수하다는 결과를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교과서적인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