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하우스에 심은 옥수수

강원도 사는 할아버지 유방암 환자. 3주에 한번씩 젤로다 처방받고 조메타 뼈주사 맞으러 병원 오신다.3주에 한번은 너무 자주라며, 매번 병원 오는 시기를 늦추시려고 한다. 앗, 벌써가 3주가 되었나요? 거봐, 너무 자주라니까. 약 두달치 주고 두달에 한번만 봐. 검사는 6개월에 한번만 하고. 혈압약도 아니고, 무슨 항암제를 2달치 줘요. 그리고 치료하면서 3개월에 한번씩 검사 안하면 제가 처방한 약 다 삭감되요. 우리 병원 손해야. 그래?병원이 손해볼 수는 없겠지.그래도 너무 자주 병원에 오고 검사하고 그러는 거 같애.CT 찍다가 그 방사선 때문에 암 생기겠어.그리고 남들은 다 조영제 빼고 찍어주면서 나는 왜 맨날 조영제 넣고 찍어?조영제 맞으면 힘든거 알기나 해? 할아버지는 당분간 꼭 조영제 쓰고 찍어..

환자가 의사를 걱정해주는

학회를 다녀와서외래가 밀린다.평소보다 대기시간이 많이 길어진다.몸도 불편하고마음도 불편한 환자들이한시간씩 진료시간이 지연되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내 앞에서는 내색을 못한다. 의사 앞에서 싫은 소리 하면 안되니까 그런 환자도 있겠지만난 환자들이 내 상황을 많이 이해해주고 있다고 느낀다. 학회가서 공부 많이 하고 오셨어요? 외국 다녀오셔서 진료보기 힘드실텐데 괜찮으세요? 입가에 뭐가 잔뜩 난걸 보니 정말 피곤하신가봐요. 난 그렇게 환자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의사다. 엄마는 외래볼 때 꼭 화장을 하라고 당부하신다. 그럼에도 거의 그런 적은 없지만...의사가 단정해보이고 아파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제 나이도 들고 얼굴도 늙어가니 화장을 안 하면 아파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알러지 때문에 맨날 눈물 콧물을 흘리니..

욕심이 생겼나 봐요

그녀는 참으로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폐로 전이된 암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여러번 반복했다.숨이 찰 법도 한데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각종 임상연구에도 많이 참여하였다.의사가 권유하는대로 치료하는 '모범적인 환자'였다.그녀는 병이 나빠졌으니 약을 바꾸겠다고 해도 별 질문없이 의사의 처방에 따랐다.특별히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게 더 미안해서 내가 설명을 하면 그렇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온갖 항암제를 다 경험하였고 나름의 독성도 있었지만그녀는 그정도는 견뎌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오히려 나를 독려했다. 그녀는 참말로 강한 사람이었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약제저항성이 생기기 때문에한가지 약제를 유지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약을 바꾸는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졌다.나는 늘 마음으로 그녀에게 미안했다.별 말이 ..

주말동안

주말동안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신 분들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병원에 오게된 분들이다. 우리 환자들은 왠만하면 응급실로 오지 않고 외래로 온다. 외래에서 나를 직접 만나서 검사하고 약 타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내가 평소에 응급실보다 외래로 직접 오시라고 교육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응급실에 가면 심폐소생술하고 피 흘리고 의식 없고 그런 중환자들에 암환자들은 순번이 밀리기 마련이다. 환자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그 자체만으로 중환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응급실에서는 중환을 정하는 순번이 있다. 환자들은 참다 참다 힘들어서 응급실에 갔는데 순번이 밀리고 빨리 검사와 처치가 진행되는것 같지 않으니 불만도 많고 화도 많이 난다. 환자 입장에서는 응급실 상황의 숨막힘과 복잡합, 수분 사이로 생명이..

내 글을 읽지 않는 환자

약제 반응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병이 나빠지지 않고 꽤 오랜 시간 잘 유지되고 있다.환자는 잘 견디고 있다.첫번째 쓴 약으로 병이 조절되고 있기 때문에 약제변경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요즘은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별로 없는 듯 하다.뼈로 전이된 부분의 통증이 심했는데그것도 잘 조절되서 한두시간 가벼운 산행을 해도 통증이 없으니 몸도 가볍고 좋다고 했다.영상의학과와 함께 진행한 임상연구 치료에서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환자는 유방암 재발 이후 강원도 산골마을에 작은 집을 사서 거기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직장 생활로 바쁜 남편이 강원도 집에 자주 오지 못해도 자기는 그 집이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번 겨울 너무 추워서 서울 집으로 나와 있는다고 했다. 그래요, 날도 추..

온 병원에 흩어져 있는 나의 환자들

지난 몇달간 신환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진료하는 환자들은다들 나랑 인연이 오래되서 척하면 척인 사람들이다.싸울만큼 싸우기도 했고, 원망도 하고 화해도 하고 그러기를 몇번 한 사람도 있다.서로에게 삐진 적도 있지만 병이 좋아지면 우린 금방 화해할 수 있었다.서로에게 익숙해 질 때까지 시간이 걸렸고 우리는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지금의 관계가 되었다. (아마 나를 견디지 못한 환자들은 다른 선생님을 찾아 떠났으리라) 그래서 내가 검사결과를 꼼꼼히 알려주지 않아도, 약 처방에 빵꾸가 나도, 대기 시간이 길어져도, 원하는 날짜에 검사를 할 수 없어도, 이제 섣불리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냥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다. 선생님 정신 없으니까 내가 참아야지. 별로 서운해 하지도 않고 나에게 따지..

좋아하는 나에게 아무말도 못하고

70세 넘은 할머니가탁소텔 9번을 잘 견뎠다.체중도 별로 안 변하고입맛도 별로 안 떨어지고무엇보다 간전이가 많이 좋아지셨다. 두번 항암치료 하고 CT를 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할머니 연세도 많으시고조영제 쓰는거 부담이 되어서 꾹 참고 세번 항암치료를 마치고 CT를 찍었더니 아주 많이 좋아지셨다.나는 또 참지 못하고 좋아하는 티를 내 버렸다.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걸 보니 많이 좋아지긴 좋아졌다 보다 하셨다.CT 보여드렸지만내가 본다고 뭘 알겠어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거지 뭐 그러셨다. 탁소텔은 3-4회 이상 맞으며 전신부종이 동반되는 경우가 흔하고 말초혈관염도 심한 약이라 6번 정도에서 약을 중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할머니는 그런 부작용이 없었다. 70 넘은 할머니가 대단하다 싶었다. 그렇지만 ..

몸무게가 늘지 않는 할머니

한달 사이에 몸무게가 8kg 이나 줄었다.재발한 유방암이 표준 치료에 별로 반응하지 않고 나빠지기만 할 때도 할머니는 몸무게가 줄지 않았었다.벌겋게 부은 유방에서 진물이 나서 꽤 오랜 기간 방사선 치료를 할 때도 할머니 컨디션은 좋았다.몇가지 표준 치료 약제의 실패 이후, 임상연구로 치료를 시작한지 8개월, 처음으로 할머니 병이 좋아지고 있는 참이다.CT 상으로 보이는 병은 많아 좋아졌다. 객관적인 지표상 드물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몸무게가 급격히 감소하였다.70이 다 된 노인이 한달 사이에 몸무게가 8kg 이나 빠지니 당연히 기운이 없다.기운이 없으니 기분도 울적하다.병이 나빠지고 유방에서 진물이 흘러 매일 옷을 적셔도 우울해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받던 할머니가 요즘은 치료의 의욕도 ..

그녀의 힘

허리가 아파서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병원에 왔다. 유방암간, 폐, 전신 뼈, 골수, 림프절 전이 이런 무시무시한 병들이 그녀의 진단명이 되었다. 척추 전이 때문에 그렇게 아프고 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항암치료에 앞서 통증 조절을 위해 방사선치료를 먼저 해야 했다. 이미 골절이 온 부위, 곧 골절이 되어 신경을 누를 것 같은 부위, 급한 대로 그런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피검사를 하면 남들 백혈구, 적혈수, 혈소판의 반도 안되는 수치였다. 항암치료를 하면 대개 이런 조혈기능을 하는 세포들이 파괴되어 수치가 떨어지게 되는데 그녀는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골수에 병이 있는 한 그런 수치들은 절대 좋아질 수 없다.척추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지 얼마 되..

아흔이 넘은 우리 엄마도 정정하신데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으신 62세 여자 환자. 최초 항암치료에 반응이 아주 좋았는데 어느 순간 저항성이 생겼는지 다시 유방의 혹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원칙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전이성 유방암임에도 불구하고 유방에 대한 수술을 하셨다. 여전히 뼈에 병이 남아있지만 그만그만하게 병이 잘 조절되고 있다. 그렇게 지내신지 어언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 사람이 너무 무리하는 거 같아요. 함께 외래에 다니시는 남편이 걱정어린 한마디 말씀을 하신다. 제가 암환자인지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아요. 그게 좋은 거에요. 계속 그렇게 사세요. 근데 혈당이 좀 높은 거 같아요. 혈당 조절 잘 하시는게 좋아요. 우리 병을 조절하는 데에도 혈당조절이 중요해요. 요즘 들어 소화가 잘 안되는거 같아요. 아흔이 넘은 우리 엄마보다 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