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01

우울한 상념

두가지 제재로 항암치료를 하다가 환자가 힘들어하면 이것이 병이 나빠져서 생기는 증상인지 항암제 독성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병이 나빠져서 생기는 증상인데 기존의 항암제를 유지하는 것은 쓸데없이 환자를 해롭게 하게 된다. 항암제 독성에 의한 것이라면 그 독성이 어떤 항암제에 의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그 독성을 잘못 판단하면 환자에게 꼭 들어가야 하는 약이 빠질 수가 있고, 쓸데없는 약으로 효과도 없이 환자만 괴롭히게 된다. 용량을 과도하게 줄여서 꼭 필요한 항암제 용량(dose intensity)을 만족하지 못하면 하나마나한 치료를 하는 수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가 힘들어 해도 최대한 다른 보조적인 조치를 지원함으로써 최대한 항암제 용량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

흰수염고래

이제 사춘기도 지난 슬기, 음악을 좋아한다. (안타깝게도 적성검사에서는 전혀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 유행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취향이 있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제법 분석적으로 대답한다. 가수, 작곡가, 노래가 태어나게 된 배경, 그 음악과 관련된 에피소드 그런 주변 지식을 동원하여 설명한다. 그 진위 여부가 중요한게 아니니까 나는 슬기의 성장이 신통하고 귀여울 따름이다. 차를 타고 어딜 가는데 슬기가 윤도현의 흰수염고래를 반복듣기로 틀어놓는다. 나 : 나도 이 노래 좋아. 슬기 : (창밖을 보며) 응, 영혼이 상처받았다고 생각할 때 무한반복듣기를 하게 되지 슬기도 그럴 때가 있나보구나 마술에 걸린듯 그날 이후 나도 이 노래를 무한반복해서 듣는다. 가사를 베껴 써 놓고 보니 매우 단순하다. 그런데 들을 때..

잠 못 이루는 당신을 위해

수면이 어려우시다구요? 그런데 약은 드시기 싫다구요? 항암치료 중, 그리고 치료가 끝나도 한동안은 항암치료의 후유증이 남아있습니다. 환자마다 다양한 형태로 후유증이 남습니다. 손발이 저린 사람, 피부가 거칠고 벗겨진 사람, 손발톱이 쭈글쭈글해진 사람, 기운이 없는 사람. 기분이 우울한 사람, 그리고 정상 수면 구조가 깨져서 잠을 푹 못 자는 사람. 후유증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여성분들은 항암치료로 난소 기능이 억제되면 여성 호르몬 분비가 억제되면서 어려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저희 병원 정신과에서 수면 장애가 있는 분들 중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아서 수면제를 정기적으로 복용할 정도는 아닌 경우, 혹은 수면제 복용시 부작용이 심해서 약을 먹는 것이 어려우신 분들을 대..

성 (sexuality)에 대해 말하기 - 아직은 어려운

성은 인간 삶의 중요한 동력 중의 하나일텐데 암환자가 되고 나면 이 문제를 입밖에 내기 어려워진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은 암이라는 중차대 하고도 심각한 병을 진단받고 살고 죽는게 걸려있는 판국인데 성에 대해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의사도 환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밖에 내지 않는다. 나도 진료시간에 환자들에게 성 생활은 어떠신지 묻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묻지 않는게 아니라, 물어볼 시간이 없다. 그런데 만약 시간이 있다면 어떻게 환자들에게 질문하고 상담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만약 내가 그런 걸 물어보면 환자들 대부분은 당황하거나 아니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왜 그런걸 나에게 물어보냐고. 지금 내게 그게 문제냐고. 혹은..

뼈 건강을 체크해야 하는 이유

나는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연대 안 안산에 등산을 다닌다. 등산이라고 하기엔 산책보다 약간 힘든 정도의 가벼운 운동이지만, 그래도 안산은 봉수대라는 이름의 근사한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봉화대로 사용되던 곳이라는 지형적 특징 때문인지, 봉수대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제법 한눈에 잘 들어온다. 일년에 서너번 정도, 비온 후 맑은 서울의 하늘은 절로 감탄사를 터뜨리게 한다. 햇빛을 받고 오르는 길, 땀 흘리며 내 힘으로 땅을 박차고 한걸음씩 산을 오른다. 햇빛, 땀나는 운동, 중력을 이기는 운동은 뼈를 튼튼하게 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얼굴이 좀 검게 타더라도 나는 썬블럭 크림을 바르지 않고 얼굴을 햇빛에 노출시킨다. 여름에는 가능한 짧게 반팔을 입고 허연 내 팔뚝이 햇살을 받게 해준다..

잠시 병원을 비웁니다

잠시 병원을 비웁니다 연구자 미팅이 있어 3일간 로마에 다녀옵니다.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 중간에 갈아타고 기다리는 시간을 합하면 정작 회의를 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지만 그렇게 관련 미팅에 참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약제가 제공된다는 측면도 있고 우리 병원이나 우리 과의 입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어 출장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목금토 병원을 비우니 그 동안 환자 퇴원 및 치료 계획을 잘 세우고 제가 없는 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환자들이계획 대로 일정이 잘 진행되도록, 특별히 문제가 안 안생기도록 미리 단속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 지금 저와 함께 일하는 전공의 선생님이 아주 실력이 좋고 환자를 잘 보는 의사선생님이기 때문에 별 걱정은 안합니다. 출..

검사 일정

4기 유방암이지만 치료 효과가 안정적으로 나타나면서 2년째 3년째 같은 약으로 치료받는 환자들도 꽤 있다. 처음에는 CT를 찍을 때마다 마음 졸이고 불안했지만 (물론 검사 후 결과를 듣는 심정은 아무리 시간이 흘렀더 하더라도 언제나 떨리고 불안하기 매 한가지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상당히 관록이 붙었다. 의연하다. 마음도 강건해진 탓도 있겠지만 약효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고 자기 삶이 더 이상 균열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짐작해본다. 항암제 치료를 하면서 그 치료의 효과를 확인하고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상황 별 가이드라인도 있고 의사의 성향도 있고 환자별로 특수한 상황도 있으니 언제 검사를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이냐에 일관된 답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암과의 동행 - 생로병사의 비밀을 보고

평소에 암 환자를 진료하면서 환자들에게 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들 바쁜 외래 진료시간에 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오늘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잘 소개되었다. '암과의 동행' 다양한 암환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병을 받아들이고 완치되지 않아도 절망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만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소개되었다. CT를 통해 보이는 병은 무시무시한데 예쁘게 화장하고 활짝 웃으며 자신이 지금의 병과 같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방암 환자인 그녀는 이미 전이성 유방암으로 수차례 항암치료를 바꾸어 받고 있다. 커튼이나 소파, 베게 등의 소품을 밝은 색상으로 유지하여 방안 분위기를 화사하게 하고 화장, 옷차림도 상큼하게 유지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 수차례 항암..

다른과로 협진 보내기

종양내과 외래를 다니는 환자들은 몸이면 몸, 마음이면 마음, 온갖 군데에서 문제가 생긴다. 어떤 것은 과감하게 내 선에서 해결해야 하고 어떤 것은 소심하게 다른 과 협진을 봐서 의견을 듣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종양내과 의사는 잡 지식이 많아야 한다. 꼼수로 해결해야 하는 것도 많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다 검사하려고 들면 끝이 없다. 그런데 꼼수부리다 큰 일 나는수가 있다. 그래서 매일 살얼음판이다. 손발이 저려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겠어요 단추 잠글 수 있어요? 젓가락질 제대로 되요? 한번 걸어보세요. 항암제 용량을 좀 줄이든지 약을 쉬든지 해야겠네요. (항암제 반응은 좋은거 같은데 그만 해야 하나? ㅜㅜ) 입안이 헐어서 밥을 못 먹겠어요 아 해보세요. 이구 궤양이 생겼네요. 가글 열심히 하시구..

환자들이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5가지

아래 빨간 글씨는 네이버에 인용된 코메디닷컴이라는 싸이트의 기사에서 가지고 왔음을 밝힙니다. 의사에게도 의무가 있듯이 권리가 있고 환자에게도 권리가 있듯이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환자 여러분, 제가 의사의 권리로 말씀드리니, 환자의 의무를 다합시다! ◆ 자신이 읽은 모든 것을 믿는다. 모든 의사들은 환자들이 스스로 관련 연구를 많이 찾고 정보도 잘 챙겨오는 것을 고마워하지만, 온라인에서 찾는 모든 정보가 정확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자신의 증상에 대해 구글 검색만 하다보면 오해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무서운 내용에 집중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진단을 받고 나면 환자와 가족들은 엄청나게 인터넷 검색을 합니다. 시간만 나면 인터넷에 붙어앉아 있습니다. 아예 공책을 사서 적고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