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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하는게 다 맞는건 아니니까

토요일 외래는원래 내가 보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날이 아니다. 항암치료 중에 기운이 없어 영양제를 맞고 싶은 사람갖고 있는 약 이 떨어져서 약 타러 온 사람.항암치료 하다가 부작용에 생겨서 증상 상의하러 온 사람.백혈구 수치 떨어져서 촉진제 맞으러 오는 사람.그런 환자들이다. 내가 담당 주치의가 아니므로그들 치료 과정에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도 없고 내릴 필요도 없기 때문에어쩌면 부담없이 진료를 보면 된다.당장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만 해결해 주면 된다. 피검사 보고 백혈구 수치 낮으면 촉진제 주고수혈이 필요하면 수혈 처방 해주고 진통제 조절이 잘 안되서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 조절해 주고너무 아프다고 하면 입원장 주고 약 필요하다고 하면 그 약 처방해 주고그런 식이다. 그래도미리 예습을 한다.어떤 ..

환자들이 종양내과 의사에게 듣고 싶은 말 BEST 4

+++++++++++++++++++++++++++++++++++++++++++++++++++++++++++++++++++++++++한국 임상암학회는 1년에 4회 소식지를 내고 있는데'의사로서의 블로깅'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써 본 글입니다. 진부한 소개글은 쓰고 싶지 않아조금 형식에 변화를 주어 다음과 같이 써 보았습니다.Copyright 는 저에게 있으니 Embargo 같은 것에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ㅋㅋ+++++++++++++++++++++++++++++++++++++++++++++++++++++++++++++++++++++++++ 환자들이 종양내과 의사들에게 듣고 싶은 말 Best 4 : 블로그에 올라온 환자의 댓글 분석 암 치료 중인 환자들은 담당 의사에게 어떤 말..

나도 단풍이 되고, 낙엽이 되고...

마음은 히말라야 트랙킹으로, 산티아고 800km 길로 향하고 있지만 몸은 늘 병원 뒤 안산에 머물러 있다.그래도 사시사철 이런 산을 곁에 두고 오를 수 있으니 이게 어디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이번 가을은 특히 그렇다. 몇일 전 찍은 사진,같은 산등성이에 모여있는 같은 종류의 나무들인데도왼쪽 나무는 아직 푸르게 오른쪽 나무들은 빨갛게 물들어 간다. 머리꼭대기는 아직 초록빛이 남아있지만...누구는 좀 빨리누구는 좀 느리게그래도 지금 자기가 내뿜고 있는 색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오늘 오후 1시간쯤 짬이 났다. 간단하게 빵으로 배를 채우고 안산에 다녀왔다. 한 나무인데도아래쪽과 윗쪽의 색이 다르면서도 형형 색색 조화롭다. 그런 나무들이 지붕을 이루는 가을길. 따뜻한 가을 햇살이 비춰질 때 더 온화한 느..

환자가 환자를 멘토링하기

한명은 유방암한명은 난소암그들의 원래 주치의는 내가 아니었다.각기 다른 의사였다. 그런데 어찌어찌 해서 지금은 내가 그들의 주치의가 되었다.그들은 서로 모르는 관계였는데 최근 요 몇달 새 요양원에서 만나 알게 되고 같은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친해진 것 같다.병원을 왔다갔다 하니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내 얘기도 한 모양이다.뭐라고 했을까? 최근에 나에게 치료를 받기시작한 환자는첫 대면하던 날 이제 호르몬 치료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으니 항암치료를 해야할 것 같다고 험악한 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차트에 의거해서 그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사항은 잘 모른다.나중에 들어보니, 수술하고 나서 한 8번의 항암치료가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나를 처음 만난 그는 이..

최선을 다했지만 후회가 크다

이번 목요일이 수능이다. 환자의 고3 큰아들이 이번에 수능을 본다.엄마는 아들이 대학가는 걸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이들에게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걸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큰 아들이 엄마걱정, 집안걱정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 잘 보고 대학에 합격하는 걸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끝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다고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한다는게 무조건 항암치료를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몇 번 얘기했지만환자와 남편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환자의 전신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기운이 없기는 했어도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한달 사이 병이 나빠지면서 폐 병변도 나빠지고 있었다.기침이 심해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여러 종류의 기침 억제제를 써도 효과가 없었다...

내 인생에 소중한 것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시는 한 선생님,잊을만하면 한번씩 좋은 글을 보내주신다.병원 외부 회의에나 가야 만나뵐 수 있는 선생님이지만학교 후배도 아니고 병원 의국 후배도 아닌 내가 이래 저래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이 되면격려차원에서 좋은 글 때론 야한 이야기를 보내서 웃음을 주신다. 얼마전 받은 글.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rs1026&logNo=50180443753&categoryNo=0 블로그로 공개되어 있는 글이니옮겨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두 손에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조금이라도 더 움켜쥐려고 욕심을 부린다.내 삶은내 뜻대로, 내 의지되로 되는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

오늘 유방암 생존자/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

오늘은우리 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유방암 진단 후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강좌를 개최한 날이다. 급성기 치료를 마치고 추적관찰 중인 그들을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 '환자'라는 표현보다는외국에서는 'Cancer Survivor', 우리말로 하면 '암 생존자'라고 번역되는데, 생존자라는 표현보다는 '암 경험자'가 더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유방암 치료를 일단 끝낸 분들이다. 다른 암에 비해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도 많고 항암치료 기간도 길며, 수술도 하고 방사선 치료도 하고, 1년간 표적치료제도 쓰고, 5년간 호르몬제도 쓰는, 치료가 복잡한 병이다. 나는 그들에게 유방암 치료가 끝난 후 발생할 수 있는 장기 합병증 가운데 신체적 측면에 맞추어 강의를 하게 ..

전화 위복

난 그녀의 원래 주치의가 아니었다.원래 선생님의 형편 상 내가 항암치료 뒷 부분의 두세번 진료를 봐 드린 것이 전부이다.그래서 최초에 어떤 연유로 유방암을 진단받게 되었는지 치료 과정에서 어떤 점을 가장 힘들어했는지 그녀의 심리적, 신체적 과정을 잘 모른다. 환자가 병을 진단받은 최초의 순간부터 마지막까지를 함께 하는 인연은 그리 많지 않다.오히려 그렇지 않은 환자가 훨씬 많다. 그러므로 새로운 환자를 만나면 이 병의 의학적/질병의 과정에서 현재 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만나기 앞서서 어떤 치료를 받았고 이번 검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순식간에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앞으로 그는 어떤 궤적을 밟게 될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순발..

UCC 대박나세요!

외래 진료 초반부에는상태가 안정적인 환자들이 많다. 앞쪽 진료를 할 때는 수년간 호르몬제 하나로 전이성 유방암이 잘 잘 조절되고 있거나 항암제 후 허셉틴 하나만 맞고 있거나독성없이 항암제를 잘 맞고 있거나 하는 컨디션 좋은 환자들을 '스피디'하게 진료한다. 병이 안정적인 그들은특별한 증상도 없고 아프지도 않기 때문에나에게 할말도 없다.자기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니까 자기 일 하는 것에 집중한다. 나한테는 기대하는 것도 별로 없다. 외래 일찍 보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도 많고아이들이 학교, 유치원 가는 틈을 이용해 치료를 받고 가는 사람도 있다.그렇게 그들은 바쁘다. 진료 앞 부분에서 한두명 지연되는 것이 진료 후반부로 가면 한두시간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진료 앞 부분에는 이렇게 컨디션 좋은 환자..

종양내과의사의 두 얼굴

항암치료를 받으러 외래에 오면환자는 일단 피 검사부터 합니다. 그날 피검사 결과에 따라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몸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하니까요.피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시간 이상 외래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자기가 예약한 시간이 넘어도 앞 환자들 진료에 밀려 내 진료 시간은 지연되기 일수 입니다. 그 전에 CT라도 찍었다 치면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에 초조함이 더해집니다.숨도 제대로 못 쉬고잔뜩 긴장해서 1분 1초가 영겁처럼 느껴집니다.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두어시간 진료를 기다리다가겨우 주치의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들어간 진료실, 의사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습니다.내 인사에 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의사는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게 저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