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최선 2

슬기엄마 2013. 12. 21. 17:42



두 아이의 엄마

둘 다 아들.

한명은 유치원, 한명은 초등학교.

바람 잘 날 없다. 

그래서 엄마는 바쁘다.

아이들 학교 학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것도 그렇고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들 과제 봐주는 것도 그렇고 

정신이 없다.



유방암 치료를 마친지 2년도 되지 않아 한쪽 폐에 물이 가득찼다. 

나는 전날 그녀의 사진을 리뷰해 보고 깜짝 놀랐다.

나보다 한참 젊은 그녀. 

내일 그녀를 어떻게 만나나.

얼마나 절망하고 힘들어 하고 있을까.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다음날 외래에서 처음 만난 그녀.

나는 그녀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녀는 나한테 오랫만이라고 인사한다. 


저 선생님 알아요. 

예전에 항암치료 받다가 열나서 입원했을 때 선생님 본 적 있어요. 

저 그때는 선생님 환자는 아니었거든요.

제 옆에 입원한 환자 보러 오셨을 때 선생님이 환자한테 설명해 주는거 저도 열심히 옆에서 듣고 있었거든요. 그 환자랑 저랑 비슷한 형편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호호.


먼저 인사하고 아는 척 해주고 

환자가 참 명랑하다. 

 


숨 차지 않나요?


네.


빨리 걷거나 운동할 때도 괜찮아요?


제가 원래 게을러서 운동같은 거 잘 안해요. 그래서 숨찬지 잘 모르겠는데요...


환자가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며 나한테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임상연구로 치료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번 오는 스케줄. 바쁜 그녀는 정해진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 늦는다.

매번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한다. 

아이들을 봐주고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다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얼마든지 맞춰드려야죠. 좋아지기나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기원했지만...


병이 금방 나빠졌다.


항암제를 바꿔서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바쁘고 자꾸 늦는다.


약을 바꿨는데 좀 어떠신가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원래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지

뭐 별로 달라진 걸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죠? 선생님 진료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제가 너무 둔한가 봐요.  



다행이다. 

흉막 전이가 진행되서 많이 숨차면 어쩌나 했는데 그녀는 여전히 씩씩하고 바쁘고 나한테 미안해하고 열심히 산다.    



이번주 엑스레이를 보니까 좀 좋아진 것 같은데

바꾼 항암제가 효과가 있는거 같아요. 


그래요?

역시!

제가 요즘 매일 풍선을 엄청 불고 있거든요. 

풍선불기 많이 하면 폐기능도 좋아지고 폐도 좋아진다고 해서요. 

내가 풍선 불어주면 애들도 좋아하고

일석이조에요. 



입구가 조금 열린 그녀의 가방을 슬쩍 보니

정말 풍선이 여러개 있다. 


그녀는 아플 틈이 없는것 같다. 

이제 막 개구장이가 된 두 아들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소연한다.

애들 때문에 미치겠다고, 정신이 없다고...



그런 와중에도 매주 병원에 오고, 

급여가 안되는 비싼 항구토제 먹고, 

틈 나는 대로 풍선도 불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젊은 그녀에게 전이성 유방암의 예후와 치료과정에 대해서 다 설명해 줬다.

그러나 그녀는 끄떡 안한다.

그리고 외래에 오면 항상 웃는다.

매일 자기에게 생긴 부작용도 수첩에 잘 적어온다.

꽤 힘든 증상들이 있는데도

그녀는 늘 웃는다.


선생님, 너무 걱정마세요. 

열심히 하면 좋아질 거에요.


긍정의 힘.


이번 가발 예쁘네요.

항암치료하는데도 얼굴 안 상하고 예뻐요.

힘 내세요.


그녀는 나보다 훨씬 강하다.

두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하루하루를 잘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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