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슬기엄마, 입원하다

슬기엄마 2011. 2. 27. 22:25

슬기엄마, 입원하다

 

닷새 밤낮을 sore throat으로 진통제를 먹으며 참다가 감염내과 외래를 찾았다. Peritonsilar abscess. Neck CT에서 abscess는 상당히 크고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더 진행될 경우 airway obstruction으로 tracheostomy가 필요할 수도 있고 brain abscess로 진행할 수도 있는, 흉측한 morphology였다.

ENT
에서 daily I&D를 할 필요도 있고 IV antibiotics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abscess 때문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음식도 넘기기 힘들어 나는 입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내가 일하던 16층 병동에 입원하고 counter가 내 주치의가 되었다. ‘꼭 우리 병동에 입원해서 다른 신환의 입원이라도 막아야 한다는 그의 처절한 지령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가운을 입고 일하던 내가 환자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내가 보던 cancer terminal 환자들이 나를 위로한다. ‘의사선생님이 아프면 어떻게 해요. 빨리 나으세요. 고생이 많으시네….’ ‘고생은 요, …(긁적긁적
).’

동료들은 OCS로 내 lab도 띄워보고 CT도 봤는지, ‘그동안 잘 못 먹었나봐, potassium이 좀 낮네. NS 100ml KCl ‘충분히’ mix해서 줄게. 그래도 leukocytosis는 심하지 않네. Daily blood culture 어때?’라며 짓궂게 군다. 그들이 입을 모아 가장 먼저 하는 말. “좋겠다, 입원해서. 맘껏 자겠네
.”

I&O
check하지 않아도 된다는 4년차 선생님 말씀에 어찌나 감사했는지. 평소 나는 I&O check order를 내면서 환자들이 자신이 먹는 양과 배설량을 매순간 기록한다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요, 때론 비참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의사는 인간의 몸을 지배하는 micropolitics의 주체라는 푸코의 명제도 떠오르곤 했다
.

Lab
을 자주 한 것이 아닌데도 몇 번의 채혈에 내 양팔은 이미 여러 군데 퍼렇게 멍이 들었다. 전에 일했던 hematology에서는 daily lab을 해야 하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바싹 마르고 퍼렇게 죽어버린 팔뚝이 떠오른다. Lab order를 잘 내는 의사가 되어야지
….

나에겐 최대한의 배려가 제공되었겠지만, 아직 병원은 환자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공간이다. 그러나, 의사 환자가 가장 골치아픈 환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착한 환자가 되려고 군소리 없이 병실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병원의 친절은 단지 상냥한 말투나 무릎을 꿇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친절은 개개인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며, 얼마나 의료의 정도(
正道)를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가의 다른 지표가 되어야 한다
.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ENT 1년차가 밤 10시가 넘어 oral dressing을 해준다. 땀으로 범벅이 된 그에게 나는 아쉬운 대로 초코파이만 몇 개 집어줬다. Local anesthesia도 없이 두 곳에 incision을 넣어 pus를 뽑는 일, 출산보다 더한 고통이었음을 나는 증언한다
.

병원비를 지불하고 퇴원할 때는 사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광고에서 입원만 해도 하루에 얼마, 진단 받으면 얼마, 이렇게 말하는 판국에 내 돈으로 병원비를 다 내다니, 미련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민간보험들 때문에 얼마나 짜증이 났었던가! Organic lesion definite하지 않은 가벼운 접촉사고 환자들. 입원의 indication이 되는 건 아닌데 어딘가 불편감을 호소한다. 퇴원을 종용할 수도 없고 특별히 해줄 것도 없고, 일상에 복귀하여 생활하면 좋아질 수 있는 증상인데도 수동적인 자세로 약물, 주사, 치료를 통한 완치만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다. 진단서에 무슨 치료를 언제 받았는지는 물론 외래 방문 횟수와 날짜까지 기입하라고 요구하는 보험회사도 있지 않았나. 아니 진단서 한 장 발급하는 데 병원 수익이 얼마나 되길래, 의사가 환자보는 데도 시간이 부족할 판에 민간보험회사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나 싶은 생각에 울화가 치민 적도 있었다. 그런 민간보험의 등장이 patient’s illness behavior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public health 차원에서 충분히 연구해 볼만한 주제가 될 것이라는 우아한 생각으로 분노를 달랬다
.

1
주 이상 입원 및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지만, 두 배로 일하는 동료가 허덕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도 불편하다. 누군가가 장난처럼 던진나이를 먹으니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니까라는 말도 가슴에 맺힌다. 아직 low grade fever가 왔다갔다한다. 이놈의 abscess가 커지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내일 업무에 복귀한다. 의사도 아파 봐야 환자에게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줄 수 있고 환자를 대상화(objectifying)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처럼, 나는 과연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한 것일까
?

확실한 것은 동료들이 부러워했던 것처럼 잠은 푹 잤다는 사실. 내일부터 충전된 지금의 내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해서 미안한 마음을 보상해야겠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의사선생님은 참 고마운 존재라는 점이다. 나를 치료해 준 ENT 동기와 적절한 IV antibiotics를 처방해 준 감염내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