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슬기엄마 2013. 12. 5. 23:12

내가 할 수 있는 것

 

 

책상 위에 성모상을 그녀에게 갖다 주었다.

 

그 성모상은

예전에 내가 치료하지도 않은 환자의 보호자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니

신의 은총이 나에게 함께 하길 바란다는 기원을 적은 카드와 함께.

엄마가 점점 나빠지고 임종 준비를 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

그녀는 나에게 메일로 여러가지 문제를 상의했었다.

나는 본 적도 없는 환자에 대해 의학적인 부분을 코멘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적지근한 대답.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고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시라고.

그냥 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 그런 메마른 위로의 말을 건넬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런 답을 할만한 사람인지, 적절한 위치인지, 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어떤 이 필요한 것 같았다.

자기가 흔들리지 않고 지금의 시기를 견디기 위해서는

자신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건조한 답이나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모상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녀가 나에게 보낸 선물이었다.

 

 

 

나는 성당도 열심히 안 다니고 기도도 잘 하는 편이 아니지만

환자를 보다가

내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

나의 능력과 현대 의학의 지식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한다.

 

 

우리 환자가 지금 이 고비를 잘 넘기게 도와주세요.

우리가 하는 만큼 최선을 다할 테니

우리 환자의 마음에 평화를 주세요.

 

 

지금의 나로서는 그녀를 위해 더 이상 다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혜가 필요하다. 삶과 죽음에 관한.

그녀는 힘들게 결정을 하였다.

객관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은데, 항암 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떤 판단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 스스로 결정했다.

오늘 3주째 항암치료.

2주째 치료하던 날 너무 많이 힘들고 아파서 엉엉 울었던 그녀.

오늘 내일은 진통제 수면제를 많이 쓰고 계속 자라고 했다.

 

 

그녀에게 내 성모상을 주며

 

 

나를 지켜주시던 분이 이제 널 지켜줄거야. 힘내라.

힘들어도 잘 참고.

괜히 짜증내서 엄마 힘들게 하지 말아라. 알았지?

 

 

환자를 위로하고 격려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괜한 훈계를 하고 돌아온다.

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항상 해피엔딩이 아니다.

나에게만큼은 예외적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실날같은 희망에 기대어

더 좋아지기를 기원하며 지금을 견디지만

결과는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다만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녀가 지금을 견딜 수 있는 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성모상을 환자에게 주었다.

 

 

 

오늘은 외래가 없는 날이다. 그런 날 급하게 병원을 찾게 되는 환자는 종양내과 일반외래를 보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가끔은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내마음이 놓이지 않으니 공식 진료가 아니더라도 내가 직접 보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환자 몇 명씩을 진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직업이 아무리 의사라 해도 환자를 보는 것 말고도 많은 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규칙적으로 정해진 날에만 진료하는게 나를 위해 필요하기도 하다. 진료방도 없는데 간호사에게도 미안할 노릇이다.

 

 

자주 그렇게 봐주게 되는 환자가 있다.

그만큼 상태가 안좋다는 뜻이다.

아직 아이가 어린 그녀. 난 나보다는 그녀의 형편과 일정에 맞춰서 진료를 봐준다.

더 이상 치료적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는 상황이다. 증상 조절이 중요하다. 복수로 힘들어 하는 그녀. 물이 차면 외래에 와서 물을 빼고 간다. 가끔 관을 넣어 보기도 한다. 별로 효과가 없다. 그래서 수도 없이 복수천자를 해보고 관을 넣어보기를 반복, 이제 영상의학과 인터벤션실에서도 그녀를 알고 있다.

오후에 외래 간호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환자를 바꿔준다.

 

 

그제 관을 넣고 갔는데 물이 새서 어제 왔었잖아요? 근데 어제 시술 받고 간 다음부터 배가 너무 아프고 물도 잘 안 나와요. 배가 너무 불러서 누울 수도 없어요. 어제 시술한 선생님이 잘 못한거 같아요.

 

그녀의 불평이 끝이 없다.

뒤로 갈수록 울먹이며 하는 말을 알아먹을 수가 없다.

 

 

많이 아프세요? 입원할까요?

 

 

제가 지금 입원하겠다는 말이 아니잖아요.

예전에 시술했던 그 선생님한테 시술받게 해주세요. 손이 자꾸 바뀌니까 잘 안되는거 같아요. 저 너무 힘들어요.

 

 

인터벤션실 스케줄이나 운영원칙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환자가 어떤 선생님을 말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시술할 때마다 담당 의사가 바뀌기 때문이다. 한참을 물어 어떤 선생님인지 알아냈다. 그녀는 전화 도중에 계속 운다. 단지 아파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런 형편에 처한 자신의 상황이 너무 힘들고 비참해서 그런 것 같다.

 

그 선생님 전화번호도 모르고, 오늘 시술을 하시는 날인지도 모르고, 내가 그녀를 위해 직접 해 줄 수 있는게 아니라, 모든 걸 알아보고 부탁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그녀의 뱃속 병이 나빠지고 있어서 단지 복수의 문제가 아니라 뱃속 종양이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은근 슬쩍 짜증이 나려고 한다. 환자를 위해 종양내과의사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환자의 모든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것 사이에서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다. 그런 내 심정도 모르고 환자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못 참고 한마디 한다.

 

 

 

지금 단지 물 때문에 힘든게 아니에요. 병이 나빠져서 그런거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진통제 용량도 늘이고 힘들어도 좀 견뎌야 하는 거에요. 우리 치료 안하고 지낸지 1년 넘었잖아요? 어찌어찌해서 이번에 물이 좀 나와도, 금방 막히거나 관이 기능을 못할 거에요. 앞으로는 점점 증상 조절하는게 힘들수 있어요. 제가 알아보는만큼 알아봐서 부탁드리겠지만, 늘 이렇게 할 수는 없는게 병원 형편이에요. 환자가 이해해 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 거라구요. 아시겠어요?

 

 

수화기 저쪽 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잠시 침묵.

 

 

알겠어요.

 

 

지금 그녀가 기댈 곳은 나밖에 없으니 그랬을텐데

내가 또 못 참았다.

그녀가 원래 이런 사람 아닌거 다 아는데도

나는 또 못 참았다.

 

 

시간이 지나고 병이 나빠질수록 환자들의 마음은 아기처럼 퇴행한다.

자기를 더 잘 봐달라고 요구하는 걸 느낄 수 있다.

남편도 모르고 아이도 모른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고 벼랑끝에 서 있는 기분인지를.

그래서 상의하고 의지하고 기댈 사람이 의사인 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걸 알면서도

나 왜 그랬을까?

 

 

그녀에게도 지금을 버텨줄 이 필요했을텐데 너무 냉정하게 말했다.

그 끈이 꼭 항암제가 아니더라도,

완치에 대한 희망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붙잡아 줄 을 주는게 필요했는데

 

 

 

말기 암환자에 대한 완화의료,

수익도 낼 수 없고 

제대로 실천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내 힘만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너무나 많은 파트와 많은 인력이 환자 진료에 관여한다.

항암치료 하는게 훨씬 쉽다.

수익도 더 많이 낼 수 있다.

완화 의료는 객관적으로 그 정도와 질을 측정할 지표도 없고

환자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많아야 한다.

의사 마음도 많이 지친다.

 

 

그러나

마음을 쏟지 않고

어떻게 말기 암환자를 볼 수 있겠는가.

 

 

나도

지친 것 같다.

방전되기 전에 밧데리 충전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