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양심과의 싸움

슬기엄마 2011. 2. 27. 22:22

양심과의 싸움

 

지금은 밤 11 40, 중환자실. 오늘 새벽 2시에 걸어서 응급실에 온 환자가 intubation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다. 하루 종일 이 환자 때문에 응급실을 왔다갔다하며 시간을 다 보내고, 병동 환자는 제대로 못봤다.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환자 옆을 지키고 앉아 inotropics를 조절하고 SaO2가 변하는 걸 보며 어떤 ventilator setting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다. 그나마 여기서라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준 환자에게 감사하며.

하지만 지금 응급실에 있는 또 다른 환자도 만만치 않아서 inotropics를 증량하고 있는데도 BP가 오르지 않고 urine output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call이 오고 있다. 빨리 내려가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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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 환자를 볼 여유가 없어 내일 아침 회진이 걱정된다. 하지만 둘러댈 얘기들은 얼마든지 많다. 환자를 보지 않고도 마치 본 것처럼 거짓말하는 일도 (아주 간혹) 있음을 고백하거니와, 나 이외의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비양심적 행위에 자책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거짓말을 하는 그 순간에는 다른 선생님들도 내 말을 믿어주는 척 하고 넘어가지만, 사실은 다 알고 있다는 것도 안다
.

사람은 자신의 내면만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를 염두에 두고 행위하는 존재다. 사회학자 고프만은 이를 가리켜 연극적 자아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람이라는 영어 단어 person의 어원이 가면이라는 뜻을 갖는 persona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시사적이다. 나 또한 몇 개의 가면을 바꿔가며 일상의 여러 국면을 살아간다
.

매 순간을면피하며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time table 속에서 지내다보니 가면의 존재가 아닌 진짜 나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
.

나는 어떻게 환자를 보고 있는지, 내가 어떤 방식과 태도로 병원에서 일을 하는지, 나의 궁극적인 가치지향은 무엇인지, 그러므로 현재의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 안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가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얼마나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을 빠짐없이 해내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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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라치면 내 마음을 후벼파는 자책감이 있다. 다이내믹한 병원 생활에 적응하다보니 비굴해지기 쉽다. 윗사람으로부터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쓸데없이 눈 밖에 나면 여러 모로 불리하니까, 환자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보다는 윗사람이 시킨 일, 의국에서 요구하는 일 등 보이지 않는 관료적 체계에 물들어 내가 의사로서 수행해야 하는 기본 업무보다는 이런 형식적인 일에 나를 얽어매고 주객이 전도되는 듯한 질서체계에 적응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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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잠시 내 얼굴과 가장 가까운 모양의 가면을 쓰고 앉아 글을 쓰고 있지만, 이것도 역시 가면인지라,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에도 나는 누군가를 의식하고 그것에 준해 행동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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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변질된 나의 속성으로 인해 몇 번의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 나의 이런 태도가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정확한 사연과 정황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나 뿐인 경우도 많다. 적당히 발림하여 상황을 포장하여 슬쩍 넘어가기에 성공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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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 있게, 내 양심의 소리에 맞춰 당당하게 일하는 1년차가 되고 싶다. 그러므로 이제 글을 접고 응급실로 내려가야겠다. 사실 원고마감에 쫓기면서 쓰는 글이지만, 순간 나를 반성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 하루 내가 저지른 오류들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