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내 인생에 소중한 것

슬기엄마 2013. 11. 3. 19:49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시는 한 선생님,

잊을만하면 한번씩 

좋은 글을 보내주신다.

병원 외부 회의에나 가야 만나뵐 수 있는 선생님이지만

학교 후배도 아니고 병원 의국 후배도 아닌 내가 이래 저래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이 되면

격려차원에서 좋은 글 때론 야한 이야기를 보내서 웃음을 주신다.



얼마전 받은 글.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rs1026&logNo=50180443753&categoryNo=0



블로그로 공개되어 있는 글이니

옮겨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두 손에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려고 욕심을 부린다.

내 삶은

내 뜻대로, 내 의지되로 되는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해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을 놓치고 나서

우리는 후회하고 원망하고 분노한다. 

그 마음을 다 내려놓으려면 얼마나 많은 인내와 성찰이 필요한 걸까?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하고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소중한 것은 어쩌면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병원 뒤 안산에 올라 어느새 깊게 물든 단풍과 가을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도 가을 햇살을 받아 깊고 그윽한 붉은 빛을 내는 단풍의 감동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다. 내가 그 앞에 서 있는 그 순간 느끼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게 찰나처럼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고마와할 줄 알고 마음에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멀리 단풍 구경을 가지 않아도 뒷동산 작은 나무 하나에서 오묘하게 뿜어내는 자연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우주는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므로, 멀리서 삶의 이치를 찾으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얼마전 입원해서 흉강경으로 늑막에 고인 물을 빼고 유착술을 받은 환자가 엊그제 외래에 왔다. 

러시아의 50대 후반의 아줌마.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는데 여기 저기 병이 심하다. 우리나라로 치료를 받으러 오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아주 윤택해 보이지는 않는다. 입원비를 부담스러워 해서 외래에서 물을 빼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치료 효과를 보기 전에 늑막에 고인 물 때문에 자꾸 기침하고 숨이 차 한다. 어쩔 수 없이 입원을 시켜 수술적 방법으로 유착술을 시행하였다. 물이 다시 안 고이게 하려면 수술적으로 조치하는 것이 낫다. 통역이 없으면 단 한마디 의사소통도 안되는 러시아 환자와 그 남편. 비행기표를 예약했기 때문에 제 때 물이 다 빠지고 관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조마조마하게 날짜를 맞추어 환자를 퇴원시켰다. 그리고 다음 외래에 항암치료를 받으러 왔다. 


그새 환자는 많이 안정되었다. 이제 숨도 별로 차지 않고 말씀을 잘 하신다. 걸음도 빨리빨리 잘 걸으신다. 화장을 예쁘고 하고 오신 걸 보니, 항암치료 받는 환자인지도 모르겠다.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으러 간 사이 나는 남편을 불러 이것저것 상의를 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결국 완치되기는 어렵다고. 어느 정도까지는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치료받을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환자도 힘이 들고 들이는 비용만큼 효과가 없을 지도 모른다고... 한국 사람이랑 말하기도 어려운, 그런 힘든 얘기를 남편과 나누었다. 남편은 잘 알겠다고, 그래도 일단 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번에도 물 빼고 증상이 많이 좋아지니 환자가 많이 좋아했다고, 그렇게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남편도 기뻤다고 했다. 

남편의 순박한 말에 내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래,  그런거지. 그렇게 이 순간을 감사히 생각하고 기뻐할줄 알면 되는거지.



유방암 치료 2년 반만에 재발했지만

여전히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그녀. 근무시간을 조절하여 주말 사이에 입원하였다. 

처음 항암치료를 힘들게 받았던 그녀는 재발 후 호르몬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증상도 없으니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학교생활을 유지했으면 한다고 했다. 치료 기준에 맞지는 않아도 나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3개월 동안 병이 조금 더 나빠진것 같다. 

그녀를 설득해 머리가 빠지는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예전에 비해 이번 치료가 힘들지 않고 머리 빠지는 것 외에는 별 부작용이 없으니 내심 만족하는 눈치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가벼운 호흡곤란이 있었는데 증상이 좋아지는 것 같으니 치료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먹는 약에 구토감이 심해 주말동안 대상포진 주사를 맞고 내일 퇴원예정이다.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며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마주쳤다. 

얼굴 표정이 밝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표정이 점점 더 밝아진다. 피부도 상하지 않고 더 예뻐지는 것 같다. 

뭐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환자의 얼굴에서 밝은 빛이 나는것 같다. 그런 밝은 빛이 그녀의 생명력이겠지.


삶은 주어진 통계만큼 사는 것이 아니고 환자가 가진 생명력만큼 사는 거겠지.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우주는 환자들과 병원이다.

삶을 감사히 여기고 

바로 여기 주어진 것들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인생에 소중한 것은 이 작은 우주안에 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