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CPR video

슬기엄마 2013. 10. 4. 23:40


2013 JCO Video decision support tool for CPR decision making in advanced cancer.pdf


오늘은 3개월에 한번씩 있는 임상암학회 분기집담회가 있는 날이었다.


오늘 논의된 세가지 주제 중 한가지가 암환자의 사전의료지시서 (Advanced Directives) 를 논의, 결정하는 것을 다루고 있었다.


교과서/이론적으로는

4기 암(전이성/재발성)을 진단받는 순간, 의사는 환자와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해 논의하라고 되어 있다. 즉 의사는 암의 진행으로 인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그런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입실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어떠한지, 만약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벤트로 인해 자신이 의학적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누가 내 뜻을 대신하여 결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 미리 환자의 의견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나의 현실에서는 이를 실천하기 어렵다.

환자에게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이슈를 

정식으로,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환자와 직면한 상황에서 답을 내는, 

그런 대화는 하지 않는다. 

사실 못하겠다.

치료를 해서 예후가 좋을 수도 있고, 환자가 치료를 잘 견디며 평균적인 예후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처음부터 '죽음'을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이제 막 병을 진단받고 충격을 받은 환자와 이런 대화를 하기에 외래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일단 치료약제 정하고, 독성 설명하고, 치료 잘 받으시라고 격려한 다음 환자를 약물요법실로 내 보낸다. 종양내과 코디네이터가 치료 관련한 현실적인 이슈들- 항암치료 중 발생하는 독성, 영양, 정신건강 등의 이슈-을 설명한다. 환자는 두렵지만 얼떨결에 항암치료를 받고 돌아간다. 

그렇게 항암 치료의 싸이클이 시작된다.

그 와중에 '사전의사지시서'를 논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설명안한다. 


 

4기 암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들은 완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는 하나 극히 낮다.  

대부분의 4기 암은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암의 진행이나 치료의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암의 종류에 따라 

4기암 진단시점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매우 다양하다.  


뼈로 전이된 호르몬 수용체 양성의 유방암 환자처럼 전이된 병을 가지고 10년 이상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리에 국한된 병변에 대해 수술하고 방사선치료하고 항암제 먹고 완치 목적의 치료를 다 해도 최초 진단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이 평균 14-16개월밖에 안되는 다형성교모세포종 (Glioblastoma multiforme) 처럼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도 있고 


아무 증상도 없이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위암 4기 환자가 의사의 지시대로 항암치료를 다 했지만 평균 1년의 생존기간을 넘기기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모든 평균에는 예외가 있기 때문에 

다들 교과서에서 규정된 삶의 시간만큼을 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행복하게 잘 사는 환자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불현듯,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환자도 있다. 

그 누구에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알수 없다.

환자는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미래를 계획하고 좋은 쪽만 생각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난 

환자와 가족들이 이런 힘든 시간을 겪는 와중에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되,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노라고, 내 삶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간직하고 돌아가실 수 있게 도와주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 임종 돌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명의 환자에게는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

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환자의 치료계획 및 예후에 대해

환자의 의견도 들어보고 

가족과도 상의해 보고

원내 호스피스팀과도 여러 모로 협력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이 큰 상처받지 않고 임종을 맞이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삶의 마지막 단계를 큰 충격없이 고통없이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전환시킬 것이냐는

나의 성의와 시간을 투자하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한 환자에게만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투자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 환자에게 이런 식으로 최선을 다하면

그 다음 환자를 진료할 에너지가 바닥이 난다.

그런 환자는 한달에 서너명이 아니다.

하루에도 서너명이 된다.


환자와 가족을 동시에 불러 

환자의 현재 상태가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지, 예후는 어떤지, 더 이상의 치료적 항암치료는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든지, 보존적 치료를 하면서 증상 조절을 하며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말만 해도 가족들은 난리가 난다. 

어떻게 그렇게 않좋은 얘기를 환자 앞에서 직접 할 수가 있냐고. 


가족 따로

환자 따로

면담을 하면

나는 시간이 두배가 든다.

또 다른 보호자들이 나타나서 설명을 요구하면 또 설명을 해야 한다.

환자 예후와 치료 관련 가족면담을 할테니 모두 모이시라고 해도 나중에 누군가가 또 나타난다. 

그래서 같은 얘기를 서너번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흔하다. 

면담 시간은 내 시간표대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족의 일정과 입장이 있다.

주말에도 면담을 한다.


한 환자에게는 얼마든지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환자를 진료할 수 없기 때문에 시스템이 필요하다.

'환자를 위하고, 환자 중심으로 사고하며, sincere한 태도로 

임종이 예상되는 환자를 대하라'는 메시지는 

일선 진료현장의 의사에게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첨부한 논문과 같은 시도가 

매우  참신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2010년 NEJM에 4기 폐암을 진단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일반적인 항암치료만 받은 그룹과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완화의료팀을 만나 미팅을 하면서 보조적인 지원을 받은 그룹간의 평균 생존기간이 2.7개월 차이가 난다는 결과, 즉 특별한 신약을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약을 도입한 임상연구에서도 입증하기 어려운 2.7개월의 평균 생존기간의 연장을 증명한 완화의료팀의 접근을 소개한 하버드 대학 연구팀에서 

올해 초 JCO에 낸 논문이다.


이 연구에서는 4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치료과정 중 생명이 위험한 상황 (life-threatening status)이 발생했을 때

심폐소생술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CPR)을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하였다.

총 150명의 4기 암환자를 1:1로 나누어

한 그룹(80명)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듯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과 이후 예상되는 과정, CPR의 시행, CPR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구도로 설명하고

다른 한 그룹(70명)에 대해서는 이상의 CPR 상황을 3분짜리 비디오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표준 환자를 대상으로 CPR을 하고 이후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장면까지.

연구의 일차 목표는 

구두 설명 후 혹은 비디오 시청 직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CPR을 하겠냐고 묻는다.


구두로 설명을 들은 그룹의 환자 중 48%가 CPR을 하겠다고 답변한 반면

비디오를 시청한 그룹에서는 20%만이 CPR을 하겠다고 답변하였다. (unadjusted odds ratio, 3.5;95% CI, 1.7 to 7.2, P<0.001).

연구의 이차 목표 중 하나였던 CPR에 대한 지식을 체크하는 점수에서는 비디오를 시청한 그룹에서의 점수가 구두로 설명을 들은 그룹보다 높게 나왔다. 

비디오를 본 그룹의 93%가 비디오를 보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comfortable watching the video)



아직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자신의 죽음에 대해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비디오 시청은 그런 계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기 암환자의 진료에 지나치게 과한 항암치료나 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환자 스스로, 그리고 가족의 인식과 우리 사회의 문화가 변할 필요가 있다. 

문화와 관행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캠페인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비디오를 한번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우리 일상의 의료행위, 일상의 Practice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된다.

하버드 대학의 완화의료팀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이미 잘 갖추어진 시스템과 제도, 완화의료팀의 멤버쉽, 경험들이 이런 결과를 내는데 일조하였을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병원에서나 다 같은 결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의미있는 연구이며 우리도 도입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마음씨 착한 의사가

많은 시간을 써서

성의있게 환자와 가족을 만났을 때

진심을 다해 진료했을 때 

비로소

Well dying, Good End of Life care 가 이루어지는 세팅은 바람직하지 않다. 


완화의료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작은 모델의 변화로부터 시작하여 

시스템으로 표준화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서는

의사는 

환자나 가족의 고통에 무심하고

환자에게 시간을 별로 할애하지 않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난받을 것이다. 

지금처럼 힘들고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 의사인 내가 bunrout 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환자와 가족에게는 별로 통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너무나 쉽게 비난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 논의가 그런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진행되지 못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