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애꿎은 눈물 한방울

슬기엄마 2013. 9. 17. 02:28


이런 식으로 하는거

대학병원 횡포 아니야?


환자 드나드는 틈에

진료실 문이 열리니 

밖에서 소리치는게 들립니다.

목소리를 듣자 하니 누군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진료하는 환자의 남편인 것 같습니다. 


그는 

내 앞에서는 별로 싫은 소리 안하시고

늘 네네 하십니다.

예의를 갖추고 저를 대해주시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진료실 밖에 나가면 외래 대기실이나 간호사들이 앉아 근무하는 스테이션 앞에 와서는

큰 소리도 많이 치고 간호사들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제가 약처방을 빼먹거나 진단서 요청을 받아놓고도 미쳐 작성하지 못해

번거로운 일들이 생긴 것인데, 

정작 저에게는 아무 말씀 못하시고 애꿎은 간호사에게 역정을 냅니다.


환자들은 마음 속으로 의사에게 불만이 많아도 정작 민원을 내지 않습니다.

혹시 민원을 제기한 나의 신상 정보가 담당 의사에게 들어가서 내가 치료받는 과정에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만을 간호사에게 퍼 붓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지나친 혹은 과도한 소비자 주권의식 때문에 어이가 없는 민원이 쇄도하는 현실도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소심한 환자들, 정당한 요구도 제대로 못하고 참을 인자를 그리며 병원을 다니는 환자들이 더 많습니다. 


내 이름으로 외래를 개설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나의 진료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환자들은 어떤 점에 불만이 있을까 궁금해서 

병원 민원을 담당하는 팀에 문의를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최고에요.' 

그렇게 나를 친절 의료진으로 추천을 하는 일은 쉽지만 

'선생님은 이게 문제에요. 이런 점은 개선해 주세요' 

그런 불만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일은 환자로서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제기한 민원이 있다면 그걸 알고 

나의 진료 행태를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문의를 해 본 것입니다.

그렇지만 담당 직원은 환자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라 하여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쓴 소리를 달게 받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비판과 지적을 받고 그걸 고칠 줄 알아야 나의 발전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어 질의해 왔는데 관련 정보를 얻지는 못한 셈입니다.


의사들 사이에 '동료 평가'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상황을 직접 곁에서 보고 모니터링할 기회는 없기 때문에

임상 의사로서 진정한 나의 모습은 

동료 그 누구도 제대로 알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성격은 무뚝뚝하지만 의학적으로 제대로 된 결정, 정확한 설명을 하는 의사도 있고

친절하지만 겉도는 말만 하는 의사도 있을 겁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전자와 같은 스타일은 별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의사가 봤을 때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의사일 수도 있습니다.

시각차가 있기 마련이죠.


명절 연휴 전이라 그런지

어제 월요일 외래는 유난히 환자가 많고 진료시간도 1시간 이상 지연되었습니다.

예정된 진료시간이 30분 지연된 환자는 파란 색으로,

1시간 지연된 환자는 노란 색으로 색깔이 바뀝니다.

노란색 환자들이 한두명씩 생기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너무나 부산해집니다.

계속 시계를 보면서 진료를 하니, 아마 나를 보는 환자도 불안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늦어지면 당일 항암치료를 못 받고 다음날 다시 오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제 마음은 너무나 바빠집니다.


그렇게 부산한 나의 마음은 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미쳐서 진료를 본 환자도 불만이 생기고

그렇게 불만을 갖는 환자에게 진료 설명을 하는 간호사도 힘이 듭니다. 

외래에서 환자 진료에 문제가 없고 원할하게 진행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의사인 저의 능력이자 책임인데

애꿎은 간호사만 

환자에게 들볶이고 

시간에 쫒겨 신경질을 내는 나에게 싫은 소리를 듣습니다.


점심시간도 없이 종일 이어진 긴 외래 진료를 마치고

나는 의례적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썰렁한 한마디를 남긴 채 진료실을 나서려고 하는데

'네' 라고 조용히 대답하는 그녀의 지친 얼굴에 눈물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순간 

내가 나이도 많고

윗 사람인데

이렇게 처신하는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선물도, 변변히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눈물만 안겨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