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가능한 직장 생활을 해 봅시다

슬기엄마 2013. 9. 8. 18:41


암으로 진단받고

설령 재발, 전이성 암으로 진단받았다 하더라도

나는 환자가 원래 자기가 했던 일을 계속 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토요일 나만의 VIP 진료, 사실은 직장인을 위한 항암치료 외래를 열곤 한다. 



위암으로 수술 받고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았다.

TS-1과 cisplatin 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cisplatin 급성독성으로 이명이 생겨 cisplatin 은 중단하고 TS-1만 1년 유지하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났는데...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한 정기 검진 CT에서 부신에 재발이 의심되는 병변이 발견되었다.

다른 곳에는 병이 없이 부신에만 병이 있어 재발을 확인할 겸 제거 수술을 하였다. 재발이 확인되었다. 다행히 다른 곳은 아직 의심할 만한 곳이 없다. 눈에 보이는 병이 없어도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재발한 위암에 준해 토요일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는 대기업 샐러리맨이다.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 

아직 미혼.

지금 부서에서 일한지는 아직 1년이 채 안되었다. 

겨우 분위기 파악하고, 업무에 익숙해지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게 되었다. 안 그래도 감원바람이 부는데 이제 와서 재발했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항암치료 한다는 이유로 매월 병가를 내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눈치도 보이고 윗사람들도 나를 호의적으로 생각할 것 같지 않다. 요즘 같이 기업이 힘든 시절, 야근도 많고 업무량도 많은데,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빠지기 어렵다. 

TS-1만 먹을 때는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이번에는 두가지 약으로 다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니 또 독성이 발생할까봐 걱정도 되고, 다시 또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고 하니 마음도 우울하다. 

환자 뒤에는 항상 아버님이 서 있다. 우리 아들 다시는 재발하지 않게 해달라고 나를 만날 때마다 간곡히 말씀하신다. 아주 부담스러운 아버님의 간청이다. 


환자는

이제 직장은 포기하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지 고민하고 있다. 

아직 미혼이라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를 받으면 부모님께 의지하면서 지내게 될텐데 그건 별로 원치 않는다. 안그래도 부모님 많이 애타하시는데 하루종일 얼굴 쳐다보고 지내는 것도 힘들 것 같다. 

만약 지금 직장을 놓아버리면 복귀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이 나이에 직장이 없으면 앞으로 좋은 여자를 만나도 결혼하기 어려울텐데...

지금 수술하고 눈에 보이는 병이 없기는 해도, 또 재발될 수 있을텐데...

환자는 여러가지로 갈등이 많은 눈치다.

복강경 수술이라 그리 힘들었을 것 같지 않은데 순식간에 4kg 이상 몸무게가 빠져 버렸다. 


약물 투여시간이 길지 않은 옥살리플라틴과 먹는 약 젤로다를 병용 요법으로 하여 치료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3주에 한번 하는 항암치료는 매주 토요일에 하기로 했다. 내가 매주 토요일 외래 진료를 여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체력이 견디는 한에서 항암치료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토요일 진료의 한계상 검사 예약 등이 불편할 수 있음을 감안하시라고 했다.

그래도 인생은 기싸움이니 기 한번 잘 모아보라고 격려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 내 동생 대하듯 각별히 진료해주고 싶다.

그래서 꿋꿋하게 이 시기를 잘 넘기고 정상적인 생활을 잘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막 개강을 맞이한 대학.

환자는 교수님이다.

개강 첫 주인데 갑자기 병이 나빠져서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외래에 오셨을 때만 해도 아주 힘들어 보였는데, 

다행히 폐에 고인 물을 빼주고 나니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셨다.

교수님을 위해 주말 항암치료 계획을 세워본다. 

치료효과가 좋으면 얼마든지 주말에 항암치료 하실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드렸다.

환자가 좋아지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배려해 드릴 수 있다. 

우리 교수님이 이번 학기 정상적으로 수업을 잘 하실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가능한 당신 하시던 일을 계속 하셨으면 한다. 

힘이 되는 데까지 자기가 전문가로 일하는 일터에서 생활하셨으면 좋겠다.

병 따위는 성가시지만 달고 다니는 것이라 생각하고

평생했던 내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내시게 하는게 내 소망이다. 

 

지금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원하고 염원하며 이번 항암제의 치료반응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확실한 지표나  분석 방법이 나와서

미리 효과와 독성을 예측하고 

효과가 없을 땐 약도 빨리 바꿔서 환자가 쓸데없이 고생하지 않게 하고 

그런 치료를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마음이 애타지는 않을텐데...


여전히 

지금의 나는

이번 주말 항암제를 시작한 이들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인생에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동안 보람차게 행복하게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일하고 사랑하고 

암에 항복하지 않고

지금의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는 영웅이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아직은 그런 수준이다.

암치료라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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