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약 순응도 점검

슬기엄마 2013. 9. 7. 14:06


토요일 진료는 여유가 있다.

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 환자들도 진료하는 일반 외래이기 때문에

특별히 치료적 결정을 하는게 아니라 

피검사 결과 확인이나 필요한 약을 처방하는 등 비교적 마음이 가벼운 진료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나에게는 다소 낯선 병을 가진 환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40대 여자 구강암 환자.

수술하고 방사선치료하고 항암치료를 다 했는데  

2년만에 수술 부위에서 재발이 되었다.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첫 치료 이후 외형적인 변화도 심했고, 

얼마전 재발하면서 누공이 생겨서 

음식을 먹으면 새기 시작한다. 

그래서 환자는 마시는 것만으로 연명하며 지낸다고 한다. 

위로 직접 튜브를 넣는 시술(Gastrostomy)에 대해 설명드렸다.

비록 튜브를 넣더라도 

영양 상태를 개선해야 

지금 받는 항암치료도 덜 힘들게 받을수 있고 몸 컨디션도 더 잘 회복된다고 말씀드렸다. 

먹는게 시원치 않으니 재발 이후 몸무게가 20kg 이상 감소하였고 무슨 약을 처방하여도 잘 먹지 못한다.

단기간에 이정도 살이 빠지면 휘청휘청 어지럽고 힘들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치료받고 맨날 가만히 집에 누워있기만 하면 어떻게 하냐고 다그쳤다. 환자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 환자도 아닌데 더 다그칠 수는 없었다. 



75세 할아버지 소세포 폐암. 

진단 당시부터 소세포암 확장병기라 

예후가 좋지 않은 유형에 속하기도 했거니와

이 항암제 저 항암제로 치료를 해 봤지만 서너번 만에 병이 계속 나빠지기를 반복.

더 이상 항암치료 하지 않고 경과 관찰만 하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겨드랑이에 큰 종양이 생겨서 팔이 퉁퉁 붓기 시작한다.

겨드랑이에 방사선 치료를 해서 종양크기 자체는 줄어든 것 처럼 보이는데, 

바깥쪽 피부가 괴사되어 안쪽의 종양이 노출되어 보인다. 거기로 진물과 피가 계속 난다. 

피부에 구멍이 뻥 뚫려 있고 길을 따라가 보면 종양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전기소작술로 지혈을 하기 어려워 보인다. 계속 외래에 와서 피검사하고 수혈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CT만 봐도 꽤 아플 것 같다. 그동안의 처방을 보니 진통제도 계속 증량이 되고 있었다.  

요즘 진통제 어떻게 드시고 있는지 여쭤봤더니 

두달전에 처방된 아주 소량의 진통제를 드시고 있다고 한다. 

이걸로는 통증 조절이 안 될텐데 싶어, 

증량해서 처방한 약들은 어떻게 했냐고 했더니 

한번 먹고 나서 부작용이 심해 그 뒤로는 처방해 줘도 약을 안사고 처음에 처방받은 약을 아껴먹으면서 견뎠다고 한다. 

이런. 


암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특히 진통제를 처방할 때는 

마약성 진통제에 관한 교육, 부작용 및  대처방안 등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진료실에서 내가 주로 처방하는 약들의 실물을 약통에 보관해 두었다가

환자에게 이 약은 왜 주는 건지, 이 약을 먹고 효과가 없으면 저 약을 먹으라는 식으로

약을 직접 보여주면서 교육을 한다.

아주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료가 밀리고 바쁘면 그런 거 따져서 교육할 여유가 없다. 그러면 환자가 제대로 알아서 약을 먹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최초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에게는 코디네이터가 수첩에 약 사진도 붙여주고 약 별로 설명도 해준다. 약국에서도 추가적인 설명을 해 준다. 그러나 최초 교육에는 비용을 청구해서 받을 수 있는데, 그 다음부터는 안된다. 그것도 비급여라 환자들이 부담스러워한다.  

CT 등의 검사는 보험으로 인정을 해주면서 

설명과 교육은 보험이 되지 않으니

비급여 서비스를 계속 확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약 설명이나 부작용 관리 등을 교육하고 사후적으로 추적관찰하면서 모니터링하는 것은 

환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참으로 질 높은 서비스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병원 수입이 감소하고 있는데 

이런 걸 담당할 간호사를 새로 고용한다든지, 다른 일 제쳐두고 이 일을 하라고 하면, 

현재 시스템에서는 경제적 이득이 감소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부작용이나 suboptimal 한 치료로 인한 손해를 생각한다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먹는 항암제를 처방하면 

의사가 처방한 약을 사지 않거나 

약을 샀지만 먹지 않는 환자들도 종종 있다. 

심지어 비싼 표적치료제를 사놓고도 안 먹는 환자들도 있다. 

뼈전이가 나빠진 것으로 생각해서 5년간 호르몬제를 이약 저약으로 바꿔서 처방했는데, 정작 환자는 이 기간 내내 약을 한번도 않먹은 경우도 있었다.   


항암제도 점점 먹는 약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

내가 처방한대로 환자들이 약을 잘 먹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노릇이다.


그래서 먹는 약에 대한 임상연구를 할 경우에는 다이어리를 써 오게 하고, 남은 약들을 가지고 오게 해서 수거하여 남은 양을 확인한다. 얼마나 약을 잘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환자에서 이렇게 하는게 좋을텐데, 지금의 통상적인 외래 시스템에서 그걸 검토하고, 확인하고, 챙기는 것까지 진행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약을 꼬박꼬박 열심히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앱 서비스를 이용해서 환자의 자가 관리를 돕고

알람 시스템을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먹지 않겠다고 결심해 버린 환자들 마음의 문은 이런 IT 기술로 열 수 없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챙기고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가끔 시간이 나면 환자들에게 약 먹는 패턴을 얘기해 보라고 한다.

식전, 식후, 약 먹으면서 불편한 점, 집에 남은 약이 얼마나 있는지, 지금 먹고 있는 약으로 증상이 잘 조절되고 있는지, 내가 처방한 약이 도움이 안될 경우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등등의 사항을 물어본다. 환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어떤 식으로 처방하고 확인해야 하는지 방법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환자들이 규칙적으로 약을 먹게 하고 부작용을 모니터링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섬세하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사항임을 알게 한다. 


나는 종양내과 의사이니 

항암제를 처방하고 

다음 CT에서 그 약효로 인해 종양의 크기가 얼마나 줄었는지에 

관심이 쏠리는게 사실이지만 

그외의 보조적인 약제들의 효과와 부작용, 만성질환으로 먹고 있는 다른 약들과의 상호작용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예전에 레지던트 때 마그네슘과 와파린의 모양을 구분하지 못하고

변비 때문에 마그네슘을 먹는다는게 와파린을 먹어 버려서 응급실에 INR 18로 온 할머니가 생각난다.


당분간 

환자들이 

내가 처방한 약을

내가 처방한 방식대로

잘 먹고 있는지

효과는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대대적으로 한번 점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