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여, 저는 어찌하오리까?
Term change. 오 주여, 저를 굽어살피소서. 과연 언제쯤 term change 때의 이 중압감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오늘로 7일째 constipation에 시달리고 있다. MgO 6T #3, alaxyl 1pack을 daily로 복용하고 있지만 이미 모두 돌처럼 굳어버렸나 보다.
나는 이제 1년차의 세 번째 term을 맞이하였고, 혈액종양내과에서 일하는 나흘째다. 나는 아침에 Chest X-ray를 보며 환자 presentation을 제대로 못해 꾸중을 들었다. 정확한 medical terminology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기를 몇 차례, 선생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리기를 몇 차례, 그런 나의 허점이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렸던지 언성이 몇 번 높아지다가 아침 회진을 마친다.
사실 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좀 느리기 때문에 -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내 업보인지라 - 발빠르게 움직이고 명민하게 환자를 파악하지 못해 초반에 혼나는 일 정도는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다. 과마다 환자들의 특성이 있기 나름이지만, 혈약종양내과의 환자들, 특히 내 환자들 대부분은 급성백혈병 환자들로 몇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거나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은 환자들이다. Chemo 후 WBC 60개, neutrophil 20개, 이런 가슴 떨리는 cell count의 보유자이거나, 2주전 건강검진시 시행한 lab상 1만개였던 WBC가 2주 사이에 12만개로 급격히 증가하여 emergency leukopharesis를 하는 환자들…, 이런 환자들을 가리켜 한 선배 레지던트는 ‘유리알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래서 당직 때는 아무리 사소한 call도 무시할 수 없다. 배짱부릴 만큼 환자 파악이 잘 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요, 이들에게 투여되는 이름도 낯선 약들은 손댈 수도 없고, 분명히 저녁 회진 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환자들이 순식간에 확 shock에 빠져버린다. Call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guideline이 머리 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시작하는 hema는 공포 그 자체다. Lab 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실감하지 못한 채 게으른 1년차로 전락하여 하는 일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정작 꼭 해야할 일은 못하는, 한마디로 꼴통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오후 회진을 마치고 곧 당직이 시작되는 시간대이다. 7시가 넘으면 나에게 오늘밤 우리 병원 hema 환자들의 모든 call이 몰려올 것이다. 정말 두렵다. 어제 당직은 8시부터 12시까지 fever call을 12개 받았다고 했다. 이 스트레스는, cardio 근무를 마친 이 시점에서도 그 빠른 turnover를 쫓아가지 못해 정리하지 못하고 쌓여있는 cardio 퇴원차트를 볼 때 느끼는 스트레스와는 또 다른 엄청난 강도로 나를 압박한다.
문제는 교수님이나 윗년차 선생님께 깨지는 게 아니다. 내가 너무 개념 없이 허둥대고 중요한 일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내과의사가 아닌가봐’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면서 또 다시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이다.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들, 도망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오늘은 ‘내과의사는 태도가 중요해.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성의가 있으면 일을 이렇게 할 수 있겠니?’라는 말을 들었다. 오 주여, 당신 말씀이 맞사옵니다. 저는 어찌하오리까!
내가 비록 excellent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열심히 발로 뛰는 부지런함으로 나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했건만, 이제 그 마지막 무기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둑을 무너뜨리려는 물살을 온몸으로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 ‘네덜란드 소년’처럼, 나는 지금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비판의 물살을 간신히 막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올해 주치의 일기를 다 쓸 수 있다면 그 마지막 편의 제목은 ‘곰이 사람되는 날’ 혹은 ‘이무기가 용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표현은 청년의사 편집국장님이 2주마다 한번씩 보내는 내 원고를 보고 격려차 보내준 답신 메일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 결심은 ‘사람은 못 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자’ 정도로 위축되어 있다고 할까?
오늘은 off position으로 병원에 남아 있다. 다시 한번 환자 차트를 보고 병동을 돌아볼 참이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는다. 오늘은 정말 우울하고 슬픈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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