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오 주여, 저는 어찌하오리까?

슬기엄마 2011. 2. 27. 22:16

오 주여, 저는 어찌하오리까?

 

Term change. 오 주여, 저를 굽어살피소서. 과연 언제쯤 term change 때의 이 중압감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오늘로 7일째 constipation에 시달리고 있다. MgO 6T #3, alaxyl 1pack daily로 복용하고 있지만 이미 모두 돌처럼 굳어버렸나 보다.

나는 이제 1년차의 세 번째 term을 맞이하였고, 혈액종양내과에서 일하는 나흘째다. 나는 아침에 Chest X-ray를 보며 환자 presentation을 제대로 못해 꾸중을 들었다. 정확한 medical terminology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기를 몇 차례, 선생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리기를 몇 차례, 그런 나의 허점이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렸던지 언성이 몇 번 높아지다가 아침 회진을 마친다
.

사실 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좀 느리기 때문에 -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내 업보인지라 - 발빠르게 움직이고 명민하게 환자를 파악하지 못해 초반에 혼나는 일 정도는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다
.

그런데 문제는 환자다. 과마다 환자들의 특성이 있기 나름이지만, 혈약종양내과의 환자들, 특히 내 환자들 대부분은 급성백혈병 환자들로 몇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거나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은 환자들이다. Chemo WBC 60, neutrophil 20, 이런 가슴 떨리는 cell count의 보유자이거나, 2주전 건강검진시 시행한 lab 1만개였던 WBC 2주 사이에 12만개로 급격히 증가하여 emergency leukopharesis를 하는 환자들…, 이런 환자들을 가리켜 한 선배 레지던트는유리알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였다
.

그래서 당직 때는 아무리 사소한 call도 무시할 수 없다. 배짱부릴 만큼 환자 파악이 잘 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요, 이들에게 투여되는 이름도 낯선 약들은 손댈 수도 없고, 분명히 저녁 회진 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환자들이 순식간에 확 shock에 빠져버린다. Call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guideline이 머리 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시작하는 hema는 공포 그 자체다. Lab 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실감하지 못한 채 게으른 1년차로 전락하여 하는 일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정작 꼭 해야할 일은 못하는, 한마디로 꼴통이 되어가고 있다
.

지금은 오후 회진을 마치고 곧 당직이 시작되는 시간대이다. 7시가 넘으면 나에게 오늘밤 우리 병원 hema 환자들의 모든 call이 몰려올 것이다. 정말 두렵다. 어제 당직은 8시부터 12시까지 fever call 12개 받았다고 했다. 이 스트레스는, cardio 근무를 마친 이 시점에서도 그 빠른 turnover를 쫓아가지 못해 정리하지 못하고 쌓여있는 cardio 퇴원차트를 볼 때 느끼는 스트레스와는 또 다른 엄청난 강도로 나를 압박한다
.

문제는 교수님이나 윗년차 선생님께 깨지는 게 아니다. 내가 너무 개념 없이 허둥대고 중요한 일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내과의사가 아닌가봐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면서 또 다시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이다.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들, 도망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오늘은내과의사는 태도가 중요해.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성의가 있으면 일을 이렇게 할 수 있겠니?’라는 말을 들었다. 오 주여, 당신 말씀이 맞사옵니다. 저는 어찌하오리까
!

내가 비록 excellent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열심히 발로 뛰는 부지런함으로 나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했건만, 이제 그 마지막 무기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둑을 무너뜨리려는 물살을 온몸으로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네덜란드 소년처럼, 나는 지금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비판의 물살을 간신히 막고 있는 것 같다
.

내가 올해 주치의 일기를 다 쓸 수 있다면 그 마지막 편의 제목은곰이 사람되는 날혹은이무기가 용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표현은 청년의사 편집국장님이 2주마다 한번씩 보내는 내 원고를 보고 격려차 보내준 답신 메일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 결심은사람은 못 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자정도로 위축되어 있다고 할까
?

오늘은 off position으로 병원에 남아 있다. 다시 한번 환자 차트를 보고 병동을 돌아볼 참이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는다. 오늘은 정말 우울하고 슬픈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