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진로를 고민하는 레지던트와 이야기를 나누며

슬기엄마 2013. 8. 10. 14:25


똑부러진 3년차 레지던트

말없이 별 내색없이 묵묵히 똑똑하게 일 잘 한다.


상의할 일이 있어서 오늘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3년차인데 내과 중 어떤 파트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내분비나 종양학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의 고민의 궤적을 들어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같이 지원하는 동기들의 숫자

먼저 그 파트를 선택한 선배들의 진로

과 분위기와 교수님들


그런 상황적인 요인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요인들을 고려한다고 해서 

요령쟁이, 잔머리 굴리기 그렇게 비난할 수 없다.


실재 여자 레지던트들이 밀리는 파트도 있고

최근 몇년간 취업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파트도 있다.

대학에 남거나 개업을 하는 것이 모두 가능한 과도 있지만 

감염내과나 종양내과처럼 개업을 할 수 없는 파트도 있다. 

인력이 이미 포화되서 갈만한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의 신념으로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떤 파트를 결정하는 것은

대학이나 과를 선택할 때만큼 쉽지 않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살아보니 다 비슷하더라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여타의 모든 것을 다 상쇄시킬만큼 강렬한 열망을 갖고 삶을 추진시킬만한 강한 원동력을 갖게 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몇 차례 지나쳐 온 내 인생의 전환점을 돌이켜 보건데 

나에게 그런 강한 열망이 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반대하고 누구나 만류하는 일, 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도

오로지 나의 신념과 열망으로 극복하고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어떤 원칙으로 진로를 정하는게 좋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였다. 

토요일이라 주중의 피로가 쌓여 심신이 많이 지치고 노곤해서 그랬을까?

나도 신념이 없어진 걸까?

설국열차를 보고 나서 그런 걸까?


어느 정도 갈등의 시간이 지나면 그냥 관성으로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 속 내면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지금 차지하고 있는 몇조각 안되는 자리를 유지하느라 급급하게 되는 것 아닐까?

내 삶의 원칙 중 최소한의 몇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나머지 힘들고 고달프고 어려운 일들은 그냥 접고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최소한의 요건을 확실히 하는게 필요하다. 


사십이 넘었건만

그래서 청춘을 위한 각종 시리즈북을 보며 위로와 힐링을 얻기에 시간이 많이 지났건만

그래도 흔들린다.

마음도.

신념도.

꿈도.

희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