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치질의 고통

슬기엄마 2013. 8. 7. 20:10


58세 유방암 환자.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8번 항암치료가 예정되어 있는데 항암치료 3번 받고 문제가 생겼다.

바로 치질.


평소에 자기한테 치질이 있는지 잘 모르고 지냈던 분들도 있고

몸이 힘들 때면 가끔 치질이 나오기는 했지만 좀 쉬면 바로 들어가서 별 문제가 없던 분들이 

항암치료 중 치질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이 은근히 많다.


우리가 대변을 보기 위해서는 

적절한 복압을 이용하여 

연관된 여러 근육들의 조화로운 운동을 조절하는 다이나믹(!)한 과정이 진행되는데

여러 원인으로 인해 장 점막 하 조직이 압박되면 

주위 혈관들이 충혈되고, 항문주위 조직이 변성됨에 따라 

항문관 주위 조직의 탄력도가 감소되면서 

문 주변에서 점막들이 덩어리를 이루다가 밑으로 내려와 

항문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치질이라고 부른다.

치질은 점막의 상태에 따라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손으로 밀어넣으면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안나오기도 한다. 

그러다가 압력을 더 받고 점막의 회복력이 떨어지면 밖으로 나와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상태에 따라 우리는 등급을 매긴다.

치질이 안 들어간 채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아프지 않으면 살만 하다. 아주 위험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하다가 백혈구 수치가 감소되는 무렵에 치질이 나오면 

항암치료 때문에 점막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 무척 아프고 따갑고 힘들다.

백혈구 수치가 오르면서 몸 컨디션이 좋아지면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치질이 생겨 항문 주위가 아프면 내가 엉덩이 검사를 한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리따운 환자도

민망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환자도 항문이 너무 아프다는 이유로 입원했다.

마침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기간인데 열도 났다.

환자는 항문이 너무 아파서 배 힘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으니 소변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당뇨 등 다른 병이 전혀 없는 환자인데, 

단지 치질 때문에 방광근육이 긴장해서 소변을 제대로 못 보고 

1주일 이상 소변줄을 끼우고 있어야 했다.

백혈구 촉진제를 맞고 백혈구 수치가 올랐는데도 한번 나온 치질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항암치료 중이라도 스케줄을 조절하여 치질 수술이라도 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다음 번 항암치료 때도 또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매번 열나고 아프고 힘들고...

아직 가야할 길의 절반도 못갔는데 환자는 치질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고 있다.

항암치료를 포기하겠다고 할까봐 걱정이었다. 

그래도 수치가 오르니 통증은 많이 덜해졌다. 

당장 수술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그녀에게 

그럼 퇴원하고 외래에서 경과를 보자고 했지만 

그녀는 너무 겁이 나서 다음 항암치료도 입원해서 받고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4번 항암치료를 겨우 마쳤다.


그리고 약을 바꿔서 5번째 치료를 하였다.

탁소텔은 약물 투여 48시간이 지나면 몸살기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 통증이 만만치 않아 비교적 강력한 진통제를 드시도록 권하고 있다. 

항암제가 바뀌니 보조하는 약 종류도 다 바뀐다.

약 모양을 보여드리면서, 이 약은 어떨때 드시고, 이약은 어떨때 드시고 교육을 했다.

원래 중간에 다시 항문이 아프거나 열이 나면 외래로 오시라고 했는데

오시지 않았다.

그리고 6번째 치료를 받으러 오셨다.


아이고, 이번에는 항문이 말썽을 안 피웠나봐요. 병원에 안 오셨네요.


네. 

수시로 좌욕하고 변 완화제 먹고 식사 종류 신경쓰고

정말 치질 악화되지 않게 온 신경을 글로 집중했어요.

샤워기로 항문주위를 자극하면 주위 혈관에 도움이 된다면서요? 그래서 계속 항문에 샤워기 대고 있고, 섬유소 많은 음식만 골라먹고, 변 볼때도 신경써서 배에 힘 주고, 정말 치질과의 전쟁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다행히 이번 주기에는 별일 없었네요.


탁소텔 맞고 몸 아프고 그러지 않았어요?


이게 몸 아픈 항암제에요? 몰랐어요. 항문에 집중하니 다른 어디가 아픈지도 몰랐어요.


구토감이나 소화장애나 그런 증상은 없었나요?


몰라요. 전 치질에만 신경썼어요. 

그러고 보니 항암제 힘든 거 전혀 몰랐네요.

선생님이 주신 약도 하나도 안 먹었어요. 뭐가 뭔지도 모르겠어요.

약 다 있으니까 이번에는 약 처방 해주지 않으셔도 되요. 


인간 집중의 힘.


어쨋든 다행이에요. 제가 어떻게 해드리는 것보다 환자분이 알아서 잘 관리하신 거네요.

잘 하셨어요.


이번에 치질 때문에 고생을 안하니까

정말 사는 것 같았어요.

천국 같았다니까요.

암도 다 나은거 같았어요.


너무나 활기찬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입원했을 때와는 컨디션이 완전 다르시네요.

오늘은 옷도 멋지게 입고 오시고 화장도 예쁘게 하시고 항암치료 받는 분인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도대체 입원했을 때 얼마나 험했으면 선생님이 그러시는거야?


남편이 한마디 하신다.


많이 힘드셨던거 알아요.

저도 오늘 치질이 나온거 같아요. 의자에 앉아서 외래보기가 힘드네요.

정말 부러워요. 


그죠? 

제맘 아시겠죠?


의기양양.


천국은 멀리 있는게 아니다.

나를 성가시게 하는 문제 하나만 해결되도

천국이다.

자기 힘으로 고생길을 피한 환자.

천국의 행복감을 느낄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