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기흉을 만들던 순간

슬기엄마 2011. 2. 27. 22:11

기흉을 만들던 순간

 

내과 1년차라면 vital sign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건만, 사실 나에게는 그럴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다. 환자들 대부분의 vital sign stable한 내분비내과에서 첫 3개월, 그리고 조금이라도 중환이 될 것 같으면 CCU로 자리이동을 하는 심장내과에서 그 다음 2개월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제, 나는 응급실에서 NSTEMI환자와 맞닥뜨렸다. 괜찮던 환자가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자 나는 윗년차 선생님께 notify한 후 당당히 Rt. subclavian catheter insertion을 하려 했다. 항상 procedure를 시작하기 전에는 왜 이 시술이 지금 필요한지, 어떤 기대효과가 있는지, 발생 가능한 합병증은 무엇인지 한참을 설명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도 제대로 받아 왔건만, 이상하게도 어제는 별로 열심히 설명하지 않고 바로 line을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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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cer
환자라서 너무 말랐던 탓일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한두 번 artery puncture가 되고 말았다. 한번 hematoma가 생기면 어차피 어려울 것 같아 한 번만 더 찔러보고 femoral line으로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세 번째 바늘을 꽂는 순간, 뭔가 피슉 소리가 나며 피스톤이 밀려올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바로 pneumo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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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chest X-ray를 찍어도 시원찮을 판에 나는설마 아닐 거야하면서, 환자에게 dyspnea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3년차 선생님이 X-ray order를 냈고, 희미하게 발견되는 pneumo-line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아직도 ‘high O2를 하면 저절로 흡수될만한 양은 아닐까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미 3년차 선생님은 CS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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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heparin까지 start한 환자에게 chest tube를 넣어야겠다는 흉부외과 의사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 옆에 서서 동의서를 가슴에 끌어안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침 나와 친한 흉부외과 동기가 동의서를 대신 받아줬고, 나는 끽 소리도 못한 채, 그의 procedure를 지켜볼 만한 배짱도 없이, 응급실 구석에서 그 환자의 admission note를 쓰면서 가슴을 졸이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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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나타나 도움을 주고 소리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 흉부외과 동기도 고마웠고, 나 때문에 보호자에게 더 많은 설명을 하고 시간을 할애해야 했지만 나에게 한마디의 비난도 하지 않았던 윗년차 선생님들도 고마웠다. 불신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기는 하지만 크게 항의하지 않고 묵묵히 의사의 지침에 따라주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미안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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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가 오늘 CCU로 올라왔다. 나는 계속 OCS를 띄워보며 그 환자에게 내려진 order를 열어보고 언제 응급실에서 자리를 옮기는지 추적하고 있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였다. 그를 담당하게 될 2년차 선생님과 중환자실의 간호사에게도 잘 좀 봐달라고, 하나마나한 부탁을 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정말 천근만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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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지만, 백 마디 말보다 procedure의 성공적 수행이 더 중요한 순간이 많음을 느끼는 요즘, 이렇게 합병증 한번 만들고 나면 소심해지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환자 보기도 민망해진다. 여러 번 하다보면 skill은 좋아지는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말라는 동료들의 위로가 고맙기도 하지만 더 소심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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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더 씩씩하게 일하려고 애를 썼지만, 마음속은 온통 어제 본 그 pneumothorax 사진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내가 극복해야 할 십자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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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Training 병원에서는 모든 것에 익숙하지 않은 1년차도 중환 procedure를 하게 되고 합병증을 만들게 된다는 것을. 그게 능력 있는 의사들을 만들어내는 길이라는 사실을…. 의사들에게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이 이러한 정황을 모두 이해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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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으로 잽싸게 order도 내야 하고 틈틈이 progress note도 메꿔야 하고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을 차분한 마음으로 충분히 들어줘야 하고 밤에는 퇴원한 환자들의 퇴원 요약지도 정리해야 하고 중환이 생기면 명민한 판단력으로 대처해야 하고 어려움을 겪는 동료 의사도 가서 도와줄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하는 게 지금 나에게 떨어진 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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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나의 procedure로 환자가 더 고통을 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 그것이 당분간은 나에게 가장 큰 절대절명의 과제로 다가온다. 나는 과연 이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는 슈퍼 레지던트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