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사랑스러운 닭살멘트

슬기엄마 2013. 7. 29. 21:48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외래에서 웃음꽃이 피어나는 때가 있다.

나는 그 순간이 매우 소중하고 기쁘다.

그런 찰나의 기쁨이 일상의 무기력함과 슬픔, 분노를 컨트롤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게 되어 내 외래를 처음 오신 40대 중반의 여자 환자.

나보다 나이가 두살 많은데 

참 예쁘다.

같은 여자지만 말도 곱게 하고 얼굴도 곱고 여러모로 참 예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고 잔뜩 긴장한 환자에게 집중하느라

보통은 보호자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한 채 환자에게 촛점을 맞추게 된다.

실컷 울고 들어와서 이미 눈시울이 붉어진 환자에게 

많이 힘들지 않을 거라고, 치료 결과는 좋을 거라고, 씩씩하게 치료를 시작하자고 

환자의 용기를 북돋아야 한다. 

나의 온 에너지를 투자해서 말이다. 

그렇게 실컷 설명을 하고 있는데

환자와 나이 차이가 꽤 나보이는 50대 중반의 남편이 보호자로 오신 모양이다.

작고 아담한 체구의 환자와는 달리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나이도 들어보인다.

턱수염도 희끗희끗, 머리카락도 희끗희끗, 중년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런 아저씨가

훌쩍이는 아내를 보고 한 말씀 하신다.


'자기, 선생님 말씀대로 잘 할 수 있을거야. 내가 집안일 다 할께. 힘내. 자기 화이팅이야.'


나는 아저씨의 닭살멘트에 참지 못하고 '풋' 웃고 말았다.

진심이 담긴 닭살멘트.

아내에게 힘을 주고 싶은 남편의 마음이 느껴진다. 


'죄송해요. 드라마 아니고 현실에서 그런 말 들어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어요.'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한 건지

원래 그런 분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웃으니 아저씨도 웃으신다. 

울던 아내도 같이 웃는다.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다정한 남편이 옆에서 화이팅 해주시니 치료 잘 받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환자가 웃으니 분위기가 좋아진다.

환자는 첫 항암 치료를 잘 받고 가셨을 것 같다.

그 분이 내일 외래에 오신다. 

진짜 집안일 다 하셨는지 여쭤봐야겠다. 




이제 항암치료 스케줄이 끝나가는 30대 후반의 여자환자.

한번만 더 항암치료를 하고 나면 수술을 받게 된다.

항암치료 성적은 비교적 괜찮다.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탁소텔 두번 맞고 난 후로부터는 많이 붓는 것 같네요.


치료 끝나면 다 빠지는 거죠?



그럼 괜찮아요.



손저림 발저림은 어때요?


점점 심해지는거 같아요. 그것도 치료 끝나면 다 좋아지는 거죠?


네 그럴 거에요


그럼 괜찮아요 견딜만 해요



유방 찌릿찌릿 하던거는 요즘 어떤가요?


항암치료하면서 다 좋아졌어요. 치료 잘 되고 있는 증거인가요?



좋아요.


그녀는 

남의 일 이야기 하듯이 자기 증상을 보고하고 

내가 대답을 하면 체크 리스트를 채워 넣듯이 확인하며 반응을 한다. 

더 묻는 말이 없다. 에스 아니면 노. 좋아요. 알겠어요. 단답식으로 대답하고 자기가 궁금했던 사항, 걱정했던 사항들을 차근 차근 정리하는 것 같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 마디 한다. 


쿨 하시네요.


(그녀는 경상도 사람이다)


저 소~~~쿨~~~~이죠?


쏘 쿨이 아니고 소 쿨이다. 


둘이 한참을 웃는다.


소~~~~ 쿨~~~~~한 그녀도 곧 외래에 오실 예정이다. 


자기 힘으로

남편이 지지해주는 힘으로

오늘 하루도 힘든 치료 일정을 잘 이겨내고 계신 우리 환자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 하는 환자에게

나도 또 다른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의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힘들어도 가끔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내일 외래는 피곤한 얼굴을 감추고

활기찬 모습으로 

나도

소~~~~ 쿨~~~~~하게 진료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