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충격고백

슬기엄마 2013. 7. 27. 19:30



최초 유방암은 2003년 11월. 유방암 3기초. 

당시 수술을 하고 항암, 방사선치료를 마친 후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환자는 재발 방지를 위해 5년을 먹어야 하는 호르몬제를 자의로 중단하여 1년을 채 먹지 않았다.

기록을 보니

환자는 병원에 제때 오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검사를 하러 왔다가

호르몬제를 먹어야 한다는 주치의 설명에 처방을 받아놓고

약 자체를 구입하지 않거나

사가지고 가서도 약을 먹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갈비뼈 한개에 유방암이 재발되었다. 

비록 병이 재발된 것이기는 해도 

갈비뼈 한개이니 수술을 하거나 방사선치료를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면 다시 완치를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환자는 치료를 거부하고 약을 먹지 않다가 수개월이 지나 검사를 했더니 이번에는 뼈 여기저기에 전이가 되었다. 당시 척추에 병이 심하고 통증이 있어 방사선 치료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은 여전히 뼈에만 국한되어 호르몬치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병이 나빠졌다. 그러나 여전히 뼈전이에 국한되어 있고 이번에는 증상이 없었나보다. 

주치의는 호르몬제를 다른 종류의 호르몬제로 바꾸었다.

뼈로 전이된 병은 조금 나빠졌다가 말다가 그만그만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나를 처음 만난 건 지난주 목요일.

외과에서는 뼈전이가 악화되어 내과로 전과하였다.

나는 기록을 검토해 보고 

이제 항암치료를 해야할 때가 되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뼈전이가 시작된지 4년이 넘었으니 항암치료를 할 때가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투약 상황과 사진을 리뷰하고 기록을 정리하여 

환자를 면담하였다. 

이제 더이상 호르몬제로는 병이 조절되지 않으니

항암치료를 해야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그제서야 충격고백을 털어놓는다. 

지난 4년반 동안 자신은 의사가 처방한 호르몬제를 거의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 4-5일 먹으니 온 몸이 너무 아프고 관절 마디마디가 쑤시는 등 몸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약을 먹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전이가 되었는데 

이렇게 아프면서까지 아둥바둥 치료받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 외래도 제때 안오고

의사가 처방한 약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 환자는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고 병이 나빠지는 원래의 속도대로 나빠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주 천천히 병이 진행되는 유형이다.

유방암의 일부 환자에서는 이런 환자들이 있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의학적으로는 지금에라도 호르몬제를 쓰면 병을 조절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그러나 보험적으로는 이미 여러 종류의 호르몬제가 다 처방이 된 상태라

객관적인 검사에서 병이 나빠진 것이 보고되었는데 그 약을 다시 처방하면 보험처리가 안될 것이다.


보험 적용이 되는 유방암 치료 호르몬제는 약값의 5%만을 본인이 부담하기 때문에 한달에 만원이 안된다. 

보험이 안되어도 한달에 20만원이 안된다. 


보험심사과에 이런 경우 약제 처방을 보험으로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문의를 한 상태이는 하지만, 이 환자 사진을 보고 처방기록과 의무기록을 검토하고 있자니, 솔직히 환자에게 화가 난다. 이렇게 좋은 약을 이렇게 싼값에 공급하여 병이 나빠지지 않도록 진행을 억제할 수 있었는데 자기 맘대로 4년이 넘게 약을 먹지 않은 채 의사에게 그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지냈다니...


나는 의사이므로

여전히 그녀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보험으로 호르몬제를 처방할 수 있는지 심평원에 문의를 해 보아야 할 것이며

이제는 약 복용을 충실히 하겠노라는 다짐도 받아야 할 것이며

규칙적으로 외래에 오시라고 다짐도 받아야 할 것이며

이 병이 치료를 안해도 이렇게 천천히 나빠지는 병이니 치료를 해서 진행을 막는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병태생리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화가 난다.

약값이 비쌌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텐데 그런 생각도 들고

환자가 별일 없다고, 잘 먹고 있다고 말하면, 밝혀낼 도리가 없었겠지만, 그녀가 약을 먹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왜 좀더 진작 밝혀내고 그런 습관을 교정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약은 호르몬제로 

원래 먹는 약으로 나온 것이지만

최근에는 항암제도 먹는 약으로 많이 개발되고 있다. 

그런 약들의 약제 순응도 역시 비슷하게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철분결핍성빈혈약은 관련 피검사를 해보면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모니터링 장치가 없는 먹는 약들은 환자의 복약 순응도를 알 길이 없다.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기 때문에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것일까?

우리의 환자-의사 관계가 워낙 부실하기 때문일까?


환자의 믿음체계, 건강행위 등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배신감이 들고 

의사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