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그녀라면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슬기엄마 2013. 6. 26. 01:08


아직까지 나랑 만나지 않았으니

아마도 재발없이 잘 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아이도 많이 컸겠구나.



키도 작고 얼굴도 작은데 눈이 큰 그녀.

임신 중이라 유방이 통통해져서 잘 몰랐다. 

그런데 아무래도 꺼림찍해 초음파 검사만 해보았더니 유방암이 의심되었다. 

유방의 크기도 매우 크고 겨드랑이 림프절에도 여려개 전이가 된 것 같다.

면역화학염색검사를 해 보니 삼중음성유방암이었다.

그때 그녀는 임신 38주.

이미 아이가 다 컸다. 

폐도 다 성숙하였고, 신체 장기도 잘 발달한 상태이다. 

유 도 분만으로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 

그리고 다다음날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 몸은 정말 무겁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몸은 더 무겁다. 

온 몸이 다 아프다. 


그녀는 그렇게 무겁고 아픈 몸을 추스릴 틈도 없이, 막 태어난 아이에게 초유를 먹일 틈도 없이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유방 종양의 크기가 하루가 다르게 크기가 커지는 것 같았다. 삼중음성유방암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자라기도 한다. 


그녀는 첫 아이를 그렇게 엉겹결에 낳고, 엄마 노릇도 채 해보지 못한채, 아이는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항암치료 8번을 받았다. 그녀는 겁에 질려 치료를 시작하였다. 치료 기간동안 많이 힘들어했다. 매번 눈물을 꾹 참고 치료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힘든 6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유방암 수술. 

수술 후 조직검사에서는 그렇게 컸던 유방 종양이, 여러개 있었던 겨드랑이 림프절에 암세포가 하나도 없었다. 완전관해. 그녀는 완전관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부터 항암치료를 했으니 항암치료 경력과 아이 나이가 오버랩 된다. 

8번째 항암치료를 하던 날 6개월 된 갓난아이를 외래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첫 유방암 정기검진 때는 돍을 넘긴 개구장이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 뒤로 뒤뚱뒤뚱 자기 걸음으로 걷는 아이를 한번 더 본 것 같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나에게 인사를 시켜주는 그녀의 얼굴은 참 행복해 보였다.

고생한 사람만이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나를 볼 일은 없어야 할텐데...



내일 외래에 오게 될 신환 정리를 하다보니 

임신 사실과 유방암 진단을 동시에 받고 오는 아주 어린 환자가 있다. 

그녀의 유방도 5cm 이 넘는다. 겨드랑이 림프절도 여러개 보인다. 아직 수용체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호르몬 수용체 양성은 아닐 것 같다. 

  

이제 임신 5주. 

다음주에 산부인과에서 치료적 유산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 

결혼 후 첫 임신인데 그 아이를 유산해야 한다는 상실의 아픔과 

유방암을 진단받았다는 사실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상태일 것 같다. 


수술 전 항암치료와 수술 

그리고 수용체 결과에 따라 호르몬 치료나 표적 치료가 더해질 것이다.

그 기간동안 그녀는 임신을 하면 안된다. 

호르몬제와 표적치료제는 임신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나는 내일 어디까지 설명하는게 좋을까?

일단 항암치료부터 시작하고 보는게 나을 것 같다.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무슨 말을 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연히 뭔가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힘들지만 그 시간을 이겨낸 아기 엄마가 떠오른다.

그녀라면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배간호사가 외래 제일 마지막 순서로 예약해 두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는 걸 아니까. 



내일 치과 컨퍼런스 시간을 조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