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울면서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당신께

슬기엄마 2013. 6. 21. 23:14
수술을 한 후 
유방암 재발의 위험성을 예측할 때 
일차적으로 다음과 같은 임상적인 결과를 검토한다.  


종양의 크기가 큰 경우 (5 cm 초과)
최초 진단시 겨드랑이 혹은 쇄골림프절 전이 여부
종양세포의 핵과 조직학적 등급 (grade)
수술 시 제거한 종양의 경계에서 암세포가 관찰되었을 때
유방 보존술을 했는데 방사선치료를 충분히 받지 않았을 때
나이가 젊을 때
염증성 유방암일 때 
호르몬 수용체 음성일 때
BRCA 1,2 유전자 양성일 때 
그리고
....
....
....


이상의 여러 요인 가운데
특정 요인이 어느 정도의 재발을 설명하느냐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종양크기와 림프절 전이여부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소한 요인 하나하나의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통계분석을 통해 
한 요인당 몇 점의 스코어를 부여할 것인지를 제안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요인별로 다른 가중치가 부여된다. 요인별로 재발에 기여하는 영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프로그램에서 제안하는 가중치가 가장 적절한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상태를 점검해 보는게 좋은지 정답이 없다.


비교적 많이 이용되는 프로그램 중
adjuvant online!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병기별, 요인별 10년후 재발율과 생존율을 계산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개발되던 당시는 HER2 수용체 여부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요즘은 재발의 위험성을 시사하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연구마다 조금씩 결과에 차이가 있다.  
환자의 체중 조절, 적절한 신체활동 여부, 일상적인 식습관 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제기하는 역학보고서도 많이 나오고 있다. 나도 심히 동의한다. 암은 유전자(gene)의 병이지만 생활습관도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어떤 요인 하나를 재발에 가장 중요하다고 핵심적으로 골라내기 어렵고, 
어떤 요인이 가장 강력하게 재발을 설명하는지 말하기 어렵다.
이런 요인이 다 없다고 해도 재발되고
많은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어도 재발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게 확실하지 않고 애매한 상황을 종합하여 나는 치료 방침을 정하게 된다. 



나이는 40세
종양크기는 2cm 이나 
겨드랑이 림프절은 음성이다
호르몬 수용체 강양성
그런데 핵등급은 2
수술시 경계는 깨끗했고 유방 전 절제술을 했다.
BRCA 유전자 검사는 하지 않았다. 환자는 이 검사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환자의 전신상태는 매우 양호.
수술 후 상처도 좋다.
다른 병도 없다. 


환자는 지금 자신의 상태가 굳이 항암치료를 할 필요가 없는 저위험군 아니냐고 
그러니 항암치료 하지 않고 호르몬 치료만 해도 재발율을 낮출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권유하는 내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술 후 내 외래를 1주일 간격으로 세번 방문하였다.
매번 그녀는 비슷한 논리로 자신이 항암치료를 안해도 될 가능성에 대해 나에게 확인하고 싶어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암치료를 권유하였다.
2cm 이면 우리나라 여성의 경우 종양크기가 작은 것이 아니고
핵등급이 1이 아닌 2이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가 너무 젊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4번 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하였다.




이 환자의 케이스를 가지고 adjuvant online 에 들어가 위험도 분석을 해 보기도 했다.
그녀를 설득하려면 뭔가 정확한 수치가 도움이 될까 싶었다. 
환자 자체의 병기가 높지 않기 때문에
10년 사이 재발율 자체가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호르몬제 단독, 항암치료 단독 보다는 두가지 치료를 다 하는 것의 이득이 단독치료에 비해 2배 이상 높다고 계산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한 나의 치료원칙이 백프로 정답은 아니다.
사실 유럽의 치료패턴은 이럴 때 호르몬 치료만 하기도 한다.  
정말 꼭 항암치료를 하는게 맞는 걸까?
나라면 어떻게 하고 싶을까?
난 나라면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입장을 설명하였다. 


환자가 1주일 더 생각하겠다고 재면담을 요청했다. 
그동안 나도 다시 고민하였다. 
요행히 그 사이에 학회가 있어 다른 병원 선생님들과도 상의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도 나이가 젊으니 항암치료를 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혹자는 '환자가 하기 싫다고 하면 무리해서 하지 마세요. 나중에 원망 들어요.' 그렇게 말씀하신 분도 있었다.


환자는 그 사이 여기 저기서 자료를 많이 찾고 공부한 것 같다.

아드리아마이신 쓰면 심장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들어 나에게 그렇게 합병증이 와서 죽을 수도 있는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1000명에 1-2명이 아드리아마이신 독성으로 심부전이 와서 죽는다고 말해 주었다. 

호중구 감소증이 와서 열이 나면 병원에 괜히 입원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4번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호중구 감소성 열이 날 확률은 10%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패혈증이 와서 중환자실 가고 죽을 수도 있는것 아니냐고 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런 일은 매우 드물다고 설명하였다. (이런 의사의 설명방식이 환자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부작용과 예상치 못한 합병증의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내 의견을 밝혔다.


그녀는 나의 설명에 굴하지 않고 또 다음 외래 때 다시 상의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갔다.

매번 서로가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음번에도 그녀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항암치료를 안 할려고 생각했다.

이제와서 내 원칙을 접는 것이 그녀에게 또 다른 불안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나도 지쳤다.

의사가 애걸복걸해서 항암치료 하면 안된다. 

그녀 말처럼 괜찮을 수도 있는것 아닌가. 



환자들이 매번 이렇게 나의 결정을 믿지 못하고 시간을 끌면 

외래에서 환자 보기 힘들 것 같았다.

설명하고 면담하는데 좀 지쳤다. 

환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너무나 많은 정보를, 심지어 잘못된 정보를 공부해 온다. 

앞으로는 이런 경향이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젊은 그녀가 고민하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된다.

그녀도 나를 괴롭히려고 그러는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녀는 지금 너무 고민이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하던 일도 계속 해야 하고

너무너무 고민이 되기 때문에 내 말을 한 순간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도 암으로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돌아가셨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 했던 것을 봤던 그녀는 너무나 두려운 것이다. 

나는 그녀가 고민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로서 충분히 근거를 제시해주고, 전문가로서 내가 왜 이렇게 판단했는지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 

그걸 짜증내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니다. 

환자와 면담을 5분 하나 30분 하나 

그러한 면담 자체에는 비용이 책정되어 있지 않다. 

내가 환자를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그 환자에게 애를 쓰고 설명하는지 그를 위해 공부하는지 얼만큼의 시간을 썼는지, 그런 정신적인 노동에 대한 비용은 책정되어 있지 않다. 의사들은 그렇게 돈 안드는 말 몇마디 한걸 가지고 돈을 받으려고 하냐고 생각한다.


의사로서 내가 우리병원의 수익을 위해 벌어들이는 돈은 

환자에 대한 상세한 설명, 면담 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고가의 첨단 검사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 처방 건수를 늘리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계약직 의사이고 

나에 대한 평가는 외래 실적, 수익율, 그리고 논문 편수에 의거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나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그런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병원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면 그래서 계약직 의사가 아니라 정규직 의사로 일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나의 제한된 역량과 노력을 

적절한 수익율 유지, 그리고 논문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자존심이 있지, 그렇게는 할 수 없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지. 암, 그게 임상의사지.

난 환자의 면담을 위해 내가 노력많이 하고 시간쓰는 것을 억울해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면담이 길어지는 것 때문에 다른 환자의 진료에 차질이 생기면 안된다. 

그리고 내가 지쳐서도 안된다. 


난 결국 네번째 면담 시간에

단호하게 말했다.


항암치료 하실거에요?

하시 싫으면 하지 마세요.

전 했으면 좋겠어요.

제 의견에 동의하시면 오늘 항암치료 받고 가세요.


3분 진료로 끝냈다.

그녀는 울면서 항암치료를 받으러 갔다. 

그런 식이다.

나의 일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