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치유의 숲길 프로젝트

슬기엄마 2013. 6. 13. 21:47

 

일단 서울 근교에서 부터 시작할까 한다.

항암치료 중에도

혹은 항암치료를 마치고

다소 쇠약한 몸으로도

피톤치드를 마시며 산림욕할 수 있는 1-2시간 코스의 산책길.

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른바 치유의 숲길 프로젝트.

 

나는 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산악회 회원이 될 생각은 전혀 없으며

누구나 좋다는 명산에 별로 다녀본 적도 없다.

그냥 연대 안에 있는 안산을 다니는 정도.

한시간 남짓 오르내리며 

똑같은 길이지만 산길은 조금씩 달리보인다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

내키면 주말에 이북오도청에서 시작하는 북한산 사모바위까지 왕복 서너 시간이면 족하다.

백운대 쪽으로 북한산을 오른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길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외국이든 국내든

학회를 가면 주변의 낮은 산이라도 둘러본다.

그래서 학회는 항상 등산복장으로.

등산이라고 하기엔 별로 오래 걷지도 않지만

편안한 옷차림, 두꺼운 양말-난 등산용 두꺼운 양말을 좋아한다-, 하이킹화를 신고 2-3시간이라도

산길을 걷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굳이 산이 유명할 필요는 없다.

그냥 산책로 정도의 길이 있으면 족한다.

가능하면 포장되지 않은 흙길로.

유명하지 않은 산에 가서 인적이 드문 길을 혼자 묵묵히 걷다 보면

새소리

나무냄새가

나에게 배어든다.

나는 그 나무 냄새가 너무 좋다.

나무 냄새를 맡고 있다보면

무거운 몸이 어느새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고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있던 묵은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의 해법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의 스트레스와 마음 무거운 일들이 휘발되어 날아가버리는 느낌이다.

그냥 날아가 버려서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산길을 걷고 내려오면

잡념이 많이 사라진다.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도 사라진다.

 

그래서 여러명이 같이 가는 산길보다는

혼자 걷는 길이 좋다.

둘이 가더라도 별 말 없이 각자 걷는 것으로.

우리에겐 그렇게 말을 아끼고 영혼이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은

누구도 몸과 마음이 편치 않다.

꼭 항암제가 힘들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자기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부지게 마음 먹은 줄 알았는데도,

어느새 생각이 자기 존재로 향한다.

 

 

나는

그가

그 시간동안

눈물짓지 않기를 바란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나무냄새를 맡으며 걷는다는 것은

그렇게 분심들린 마음과 영혼에 휴식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치료를 시작한 나의 친구를 위해

나는 치유의 숲길 탐방로를 개척하기로 했다.

마치 그를 위해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를 위한 것이다.

솔직히 나에게도 쉼이 필요했다.

 

어떤 길을

어떻게 걷는 것이 좋은지

그런 과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치유의 숲길 프로젝트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일단

그냥 걸어보려고 한다.

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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