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문의전화를 받다

슬기엄마 2011. 2. 27. 22:02

문의전화를 받다

 

선생님, 왜 이 환자에게 이런 antibiotics를 쓴 거죠? Target이 어떤 균주였나요?”

선생님, lab 내놓고 확인한 거 맞아요
?”

당직 다음날 오전이면 다른 파트 윗년차 선생님들로부터 이런 전화를 종종 받는다. 이 정도 점잖은 tone으로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모두들 바쁜 아침 회진 준비시간, 목소리에 날이 서 있음이 충분히 느껴지기에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선생님, 내과 의사 맞아요?” 이 정도쯤 되면 진짜 비참해지고 하루를 시작하기가 싫어진다
.

윗년차 선생님들은 내가 밤 사이 당직을 서면서 시행했던 management에 대해 rationale를 캐묻고 대답을 요구한다. 나의 결정에 대해 당당한 대답을 할 때도드물게있지만, 대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쩔 수 없는 변명식의 대답을 하며 비굴해진다. 우리 1년차들은 당직 다음날 아침에 받게 되는 이런 전화를문의전화라 부른다
.

문의전화 많이 받았니?” “어찌나 전화가 빗발쳤는지 오전에 핸드폰 배터리가 다 닳았어.” 이 정도 대화가 오갈 정도면 절로 동료의 어깨를 두드리며내가 점심 살게. 힘 내~.”라고 말하게 된다. 1년차들끼리 통하는 공감대 혹은 연민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

병동 당직이든 응급실 당직이든 1년차 primary는 직접 order를 내고 자기가 결정한 사항에 대한 rationale를 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정작 눈앞에서 환자의 vital sign이 흔들리고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른 병동에서 당직을 서는 동료를 부르고 다른 과 전공의들에게도 도움을 청하게 된다. 사공이 많아지면 나는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배를 산으로 몰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당황하게 된다. 내가 주치의이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의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정작 나는 자신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환자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책 좀 보려 하면 잠이 쏟아지고…, 그렇다고 procedure하나 똑부러지게 못해 complication 생기고
….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왜 이러나 하는 자괴감과 나 때문에 환자가 나빠진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 속에 매일매일 나의 자아(self)는 위축되어 간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눈빛이 비굴해져가는 듯해 슬프다
.

그렇게 심한 문의전화를 받고 난 후 마음이 작아지고 비참해져도 환자 앞에 설 때, 그리고 교수님과 함께 회진을 돌 때는 잽싸게 mode를 바꾸어야 한다. 밤새 시달린 뒤끝이라 용모는 지저분하고 눈동자는 충혈되어 피곤함이 묻어나도, 씩씩한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

가끔 상냥한 문의전화도 있다. “이 약은 선생님 처방처럼 쓸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쓰는 게 더 effect가 있는 걸로 알려져 있죠. 참고하세요”, “저희 환자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런데 선생님이 낸 lab 중에 뭐뭐는 빠졌더라구요. ABGA를 같이 나가는 것도 좋았을 것 같아요. Acidosis가 진행되어 환자 상태가 나빠졌을 수도 있는 거니까.”라는 식이다. 잘못에 대한 지적과 그 잘못의 반복을 막기 위한 teaching이 동반된 문의전화를 받으면, 부끄러움은 마찬가지지만 그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 금할 수 없다. 말투가 대수겠는가, 상냥하다고 환자 잘 보는 의사겠는가. 그래도 여기저기서 늘 욕먹는 1년차가 가끔 이런 선생님을 만나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힘들게 밤새며 환자를 본다고 해서 반드시 환자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요즘, 아침의 문의전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주치의가 되는 길은 아직은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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