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슬기엄마 2013. 5. 22. 02:37


치료의 대안이 없어서

아무 치료 안하고 지낸지 6개월

환자는 복수로 배가 불러 2-3주에 한번씩 복수를 빼러 혹은 진통제를 타러 오신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어떻게든 치료를 해보려고 애쓰셨지만

항암제 반응이 좋지 않은 난소암이다.

앞으로 예후는 좋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얼마나 살거 같아요 물으셔서 솔직하게 1년 어려우실 거 같아요 그랬다.

그랬더니 기대여명이 1년 미만이라고 진단서를 써달라고 하신다.

그렇게 진단서를 써주면 보험금이 나온다는 것이다.

오랜 투병기간, 살림살이 어려워진건 안봐도 뻔하다.

그런 말을 당신 입으로 직접 말한다는 건 참 자존심도 상하고 속상할 노릇이다. 사실 속상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목숨을 앞에 두고 속상한게 문제이겠는가. 가능하면 환자 편에서 진단서를 써 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의학적으로 좀 말이 안되도 말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환자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나보니

환자는 내가 항암치료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던 그 무렵부터

무슨 효소같은 걸 드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가격이 한달에 2백만원 가까이 된다고 하신다.

진단서를 제출하여 보험금을 타서 그 약값을 내고 싶어 하신다.

돈도 못 버는 엄마가 평생 모아두신 돈으로 자기를 위해 효소를 사주고 계시는데, 이제 더 이상 엄마도 돈이 없으신거 같아서 자기 돈으로 사먹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의사가 더 이상 치료적 대안이 어렵다고 말하면 

젊은 환자들 중에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나한테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지만 

전혀 말씀 안하시고 뭔가를 시도하고 계시는 분들이 더 많다.


태반주사

비타민주사

버섯다린 물

효소

부처님손

미슬토주사

뭔지 도무지 알수 없는 수많은 약초들

자기장 치료

온열 치료

별거별거 다 하신다 

딱부러지게 하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려보기도 하지만 별로 소용도 없고 더 속상해 하시는 것 같다. 나한테 오만정 다 떼고 결국 다시 뭔가를 시도하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그 지푸라기를 잡지도 못하게 할 권리가 있는가.


문제는 입증이 안된 그런 건강보조식품 혹은 소위 치료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엄청난 돈을 쓴다는 점이다. 그렇게 돈을 쓰는 것에는 너그럽다.


암환자 치료 말기에

병원에서 과다한 검사를 하거나 중환자실에 입실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과도한 의료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이런 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환자들은 그렇게 돈을 많이 지출하면서도 정작 치료 효과가 없을 때 항의하거나 환불을 요구하거나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뭔가 인식의 구조가 이중화되어 있는 것 같다. 


주치의가 이런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하고 시도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 반대의사를 확실히 밝히는 것은 환자의 행위양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어설픈 태도로 이런 선택을 허용할 경우 환자들은 의사의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심리적 부담을 덜고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한다. 나도 좀더 세게 말해야 하는 걸까?


이것은 결국 환자 교육의 문제이고

인생 말기에 임박해서 협박하듯 이런 것들을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완치되지 않는 병을 진단받는 순간부터

환자 및 가족 인식의 지평을 제고하고 

자기에게 남은 인생의 시간들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 

철학적 관점을 정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진정한 간호와 부양이란 무엇인지, 가족으로서 어떤 지원을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동시에 교육이 되어야 한다. 두렵고 무섭고 슬픈 일이지만 죽음에 대해서도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것과 그 삶에 집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설명, 교육을 환자와 가족의 상황에 맞게 개별화하여 제공해드려야 겠지만

주치의 한명의 빈약한  설명으로는 

환자와 가족의 행동양식을 콘트롤할 수 없다.

사람의 인식체계는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진단서, 써 드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