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러시아 할머니 홈런치심

슬기엄마 2013. 5. 8. 15:00


72세 러시아 할머니.


2년 전에 러시아에서 난소암 수술하고 항암 치료를 하셨다는데 - 무슨 약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러시아 글씨를 영어식으로 읽어보면 taxol 이랑 carbo 랑 하신거 같다 - 항암치료 끝난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재발하신 것 같다. 


애초부터 3기였으니 2년 안에 재발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난소암은 최초 재발이 6개월 전이냐 후냐가 예후에 중요하기 때문에 금방 재발한 할머니 난소암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난소암에서는 플라티넘 약제가 가장 중요한데, 이에 대한 감수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6개월을 잡는다.  최초 약제로 치료하고 끝난지 6개월이 지나서 재발을 하면 비교적 감수성이 남아있는 걸로 생각하고 같은 약을 다시 써도 다시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개념이다.

플라티넘 저항성 난소암은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 무슨 약을 써도 잘 안 듣는 편이다.


할머니는 저항성 그룹에 속하였다.

러시아에서 2차 약제로 다시 치료를 하신 것 같다. 아드리아마이신하고 씨스플라틴인것 같다. 이때 항암치료 하면서 고생 많이 하셨다고 했다. 열도 많이 나고 머리도 다 빠지고 구토도 많이 하고 암튼 고생을 너무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안가 또 병이 나빠져서 우리나라에 오셨다고 했다.  


나는 topotecan 단독으로 치료를 시작해 보았다. 그냥 치료 순서가 원래 그렇다. 연세가 있으신데다 최근 두번의 항암치료 모두를 병합요법으로, 그것도 골수억제기능이 강한 약으로 치료를 했기 때문에 이번 약은 너무 무리하면 안될것 같다. 이 약은 별로 힘들지 않기 때문에 환자에게 많은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환자는 이국땅에서 치료를 다시 시작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궁금한 거 있냐고 물어봐도 별 말씀이 없으셨다. 할머니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환자는 약을 잘 견디는 것 같기는 했지만 치료를 하는 동안 자꾸 복수가 차는 것 같았다. 배가 자꾸 거북하다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3번 항암치료를 하고 찍은 CT에서 그동안 없었던 복수가 갑자기 증가하였고 복막도 예전보다 더 우둘두둘 많이 두꺼워진것 같다. 종양 표지자도 많이 증가하였다. Topotecan은 별로 도움이 안 되었는 모양이다. 소위 여러 차례 임상연구를 통해 약제 반응율이 보고된 약들은 다 쓴것 같다. 난소암은 그렇게 연구된 약들 자체가 얼마 없는 형편이다.  


할머니는 병이 나빠진 것 같다는 나의 말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환자의 마음은 다 똑같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차피 국제 수가를 적용받는 분이니, 보험이나 비보험 여부가 크게 관계없다는 점을 고려해 아바스틴을 한번 써볼까 싶었다. 가격을 알아보고 할머니와 아들에게 나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물론 여러 차례 약제를 써서 실패한 난소암에서 아바스틴과 항암제를 결함해서 썼을 때 반응율과 예후가 어느 정도 좋았다는 2상 데이터가 2007년 JCO에 실린 바 있다. 확고한 3상 데이터는 없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바스틴 탁솔 카보를 해보기로 했다. 


할머니는 돈이 꽤 있으신 분인가 보다. 그러니까 한국에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 하시면서 주기적으로 항암치료도 하시고, 고가의 약제도 써 보시겠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할머니 외모를 보면 그냥 동네 할머니 그 자체인데... 여하간 본인이 하시겠다고 하니 나는 보험 눈치 안보고 약을 처방했다. 


그리고 2 싸이클 만에 종양표지자 수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복수도 줄어드는지 환자가 식사하시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하신다.

그렇게 여섯싸이클 하는 내내 조금씩 조금씩 좋아졌다. 그래서 다시 세 싸이클을 더 했다. 손발저림도 없으시다. 별 독성이 없다.  또 세 싸이클을 더 했다. 총 12번. 얼마만큼 치료할 것인가, 몇 싸이클 할 것인가. 정답이 없다. 대개는 그런 걸 고민하기 전에 환자가 나빠지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과하게 치료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12번의 치료를 마치고 세달이 지나, 이번에는 PET-CT를 찍어보았다. 

보이는 병이 없다. 홈런.


할머니에게 처음 사진이랑 이번 사진이랑 비교해서 보여드렸다.

여기저기 뭉글뭉글 있었던 림프절들과 복수가 이번 사진에서는 하나도 안 보인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몇번이나 '스빠씨바'를 되내이신다. 

(발음은 이상하지만 러시아말로 '고맙습니다'라는 뜻)


언젠가 재발하시겠지. 

재발안하는 것 보다 할 가능성이 더 높겠지.

그래도 당분간은 괜찮으실 것 같다. 


러시아 환자를 우리나라에서 항암치료 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수술처럼 단기간에 빨리 조치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면 모를까

전이성 암환자의 항암치료, 그것도 뾰족히 성공적인 치료의 대안이 없는 암인데 우리나라에서 항암치료 받는 것에 대해 나는 별로 찬성하고 싶지 않다. 환자의 입장에서 득보다 실이 많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에 홈런친 할머니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돈도 돈이고

할머니 끈기도 대단하다.

의사랑 별로 말도 안통하는데 그저 시키는대로 치료한 할머니는 영락없는 우리 시골 할머니들이랑 똑같다.


부디 재발없이 잘 사셨으면 좋겠다.

매번 진료 오실 때마다 사다주신 러시아 초콜렛도 이제 맛 보기 어렵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