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생명력이란 무엇인가

슬기엄마 2013. 5. 7. 01:04

방명록에 남긴 환자 어머니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환자였던 따님이 마지막에 남긴 편지를 같이 남겨주셨습니다. 


존경하는 이수현 선생님:

제 딸 영민이는 전적으로 선생님의 전문가적 권위의 겉에 코팅된 측은지심에 자석처럼 끌리어 질병을 견디면서 승리하며 지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지요...!!! 
환자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결정짓는것이 전적으로 주치의와 팀으로 움직이는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돌봄때문이었으며 그 어려운 길에 언제나 천사로서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일생동안 많은 순간 천사의 손길을 기다렸지만 종양내과에서 치료받으며 무수히 
많은 천사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딸 영민이는 전적으로 산생님을 신뢰하므로 충성으로 순응 했습니다. 
진통제를 3단계로 처방받았으나 전혀 예상밖으로 가장 초기단계의 약으로 조절했지요!

처음부터 치료를 안받고 천국에 가기로 작정했던 딸 영민이를 선생님 만이 갖고계신 놀라운 설득력으로 비밀의 통로로 인도해 주심에 대하여 말할수 없는 감동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이 수현 선생님꼐서 환자를 위해 시간과 몸과 맘과 정성을 다해서 보시는
결과였습니다, 


처음부터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기도합니다. '
선생님처럼 몸과 맘과 정성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시면서도 
또 다른 연구등도 많이 많이 내시도록 수많은 천사들의 도움이 있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동봉된 환자가 남긴 글을 읽으며 

내가 어느 대목에서 도움이 되었는지를 찾아봅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제가 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고통을 덜기 위해 했던 나의 노력들 중에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환자는

다른 환자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를 느끼고

항암제를 통해 암세포의 무게를 덜어냄으로써 

육체적 고통을 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남은 생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환자의 노력이지 

저의 노력이 아닙니다. 


제가 선택한 아드리아마이신이라는 약제는 유방암 치료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효과가 좋은 약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에 대한 신뢰를 이끌어 내는 결정적인 약이 되었습니다. 환자는 한번만 좋아져도 주치의를 믿습니다. 자기의 불편한 증상 한 가지만 해결되어도 주치의를 믿게 됩니다. 유방암 환자들이 다른 암환자에 비해 자기 주치의에 대해 의존도가 높은 것은 사실 이 약의 효과 때문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주치의 요인보다는 항암제 요인이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탁센 계열의 약물을 먼저 써 보고, 그 다음에 아드리아마이신을 쓰는 것은 그저 루핀이요, 표준적인 처방 행태입니다. 저는 그 원칙을 따랐을 뿐입니다. 다만 환자 상태가 위험천만이었기 때문에 좀더 주의를 기울였을 뿐입니다. 제가 주의를 기울여서 좋아진게 아니라, 잘 개발된 항구토제, 환자 스스로의 노력, 엄마의 긍정적이고 정성어린 간호 등이 독한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를 잘 견디게 도와준 요인입니다. 


물론 저도 마음을 많이 쓰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이가 심해 치료를 하지 않고 통증을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하였지만, 그 치료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치료를 권유하면서도 나는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갖고 있는 걱정과 우려, 삶에 대한 갈등과 긴장을 오롯이 다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했던 저는 질병의 속성을 구성하는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만, 정작 환자 개인의 안녕과 편안함, 치료의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은 그런 외부적인 요인, 사회적인 요인이라기 보다는, 환자의 의지와 생명력, 그리고 암의 생물학적 속성을 잘 겨냥한 항암제가 더 중요한 요인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약 의사가 되지 않고 의료사회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환자와 의사, 의료체계, 제도를 바라보았다면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겉도는 분석을 하기 쉬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는 자기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 생명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가족의 사랑과 지지, 후원입니다. 

기도가 중요한 것은 단지 종교적인 영역을 넘어, 그를 기억하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응집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에너지가 그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의사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환자가 자기 의지와 자기 생명력을 잘 유지할 수 있게, 의학적으로 방어막을 쳐 주는 정도의 존재입니다. 더 나빠지지 않게 모니터링 해줍니다.


이제는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보고 있을 그녀를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드립니다. 부족한 제가 지금 제가 처한 어려움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여 환자를 돕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도록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