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요양병원

슬기엄마 2013. 5. 5. 20:38

 

이제 우리병원에 계속 입원해 계시는 것이 별로 의미없을 것 같아요.

집으로 가시거나

집 근처 요양병원을 알아봐서 글로 퇴원하세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순순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환자는 단 한명도 없다.

다니던 병원 놔두고 왜 다른 병원으로 가란 말인가.

게다가 이제 컨디션도 별로 안 좋은데.

내 검사 기록, 의사의 소견, 여러 과 협진 결과 등 

나의 병력과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다 여기 있는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환자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상태가 더 나빠져도 우리 병원에 오시지 말고 거기서 임종하시라고 미리 말씀드려야 한다.

3차 의료기관은 임종하러 오는 곳이 아니니까.

나는 그렇게까지는 말을 잘 못한다.

 

계셔 보시다가 힘들면 오세요.

 

우유부단하게 그렇게 말하고 환자를 억지로 퇴원시킨다.

 

 

진행성 암을 치료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제 더 이상 검사하고, 치료적 대안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단계가 온다.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그런거 안하고, 통증을 비롯하여 각종 불편한 증상만 조절하면서 경과를 보는게 더 나을 때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병이 여기저기 있고 잘 조절되지 않는데 컨디션이 좋은 사람은 거의 없다. 치료를 안하는 상태에서 암세포가 많아지면, 단지 증상을 조절하는 몇몇 약제로는 금방 한계가 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진통제를 많이 쓰고 수면제나 진정제 등을 같이 써서 환자를 오래 자게 하는게 낫다. 잠을 많이 자면 실재 통증도 덜 예민하게 느끼게 되고 주관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돌아가시는 것이 가장 편하다.

Terminal sedation 을 잘 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단 이렇게 계속 주무시다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사실을 환자와 가족이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원칙적으로 terminal sedation이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아니라고 되어있지만, 말기 환자들에서 통증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다가 진정제를 쓰면, 호흡근육이 열심히 일을 안하게 되면서 호흡량이 감소하여, 이산화탄소가 쌓임에 따라 뇌기능이 떨어져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는 경우가 있다. terminal sedation을 너무 늦게 시작하면 그렇다)

 

이렇게 말기에 사용되는 약들 중에 특별히 고가이거나 대학병원에만 있는 특수한 약들은 없다. 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약이고 귀한 약이 아니다. (다만 약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는 처방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

그러니까 그런 조치를 굳이 3차 의료기관에 입원해서 할 필요가 없다.

 

우리 병원에서 나랑 열심히 치료했던 환자를 몰아내는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안 좋다. 오지말라는 말을 못하니, 환자들이 돌아가실 때가 되면 우리 병원에 다시 온다. 그래서 여기서 임종하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이자, 슬픈 일 아닌가 하기에 말기 암환자의 임종에는 여러 다이나믹이 작용한다.

 

임종이 예상되면 일단 검사를 하지 않는게 좋다. 그러나 병원 입장에서는 진료 수가가 너무 싸기 때문에 검사를 많이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 우리 건강 보험 실정에서는 검사를 안하면 백퍼센트 병원이 망한다. 심지어 과도한 검사라도 해야 먹고 살 판에, 검사를 하지 않는 환자는 수익율 감소-사실상 적자-의 주범이다. (이것은 과도한 엄살이 아님을 밝히는 바이다.)

 

영양제나 항생제도 너무 적극적으로 줄 필요가 없다. 역시 이 부분에서 병원 수입이 감소한다.

 

의사는 임종 직전의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별로 할 게 없는데, 간호사는 할 일이 엄청 많다. 누가 해야 하는 일인지 모르는 애매한 일들은 대개 다 간호사가 하게 된다. 가족들은 환자를 입원시켜 놓고 손 하나 까딱 안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병원이 아니라 여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ㄴ다. 검사도 안하고 비싼 약도 안쓰는데 수가도 안 매겨지는 간호사 노동력만 잔뜩 들어간다. 돌아가시기 전에 섭섭하게 안 해드리려고 간호사들이 열심히 매달려 간호하지만, 사실 환자는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 애를 많이 써도 원망을 받는 일이 더 흔하다. 그 환자에게 매달리느라 다른 환자에게 신경을 못 써서 오히려 민원이 증가한다.

 

사람이 죽는 건 예상할 수 없는 일. 임종을 앞두고 입원을 해서 입원기간이 오래 되면 가족도 지치고 의사도 지치고 간호사도 지치고 그렇다. 그렇게 시간이 하루하루 갈수록 병원 수입은 감소한다. 내가 수익을 챙겨야 하는 병원장이라면 임종을 앞둔 환자는 절대 입원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환자들을 보내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것은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는데, 돌아가실 때라도 편안히 해드리고 싶다는 인간적인 마음 조금과

돌아가실 때 돌아가시더라도 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는 어느 정도 받으셔야 편안하게 돌아가실텐데, 소위 요양병원이라는 곳에 가서 의료적인 도움을 전혀 못 받고 상태가 급격히 더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말이 요양'병원'이지 의사가 회진도 안 돌고 처방만 반복하는 곳도 있다. 그러니 진통제 용량 조절, 이런 것은 아무도 안해주는 것이다. 욕창이 생겨서 엉덩이가 문드러지도록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환자 뒤집기도 안해주는 것이다.

 

모든 요양병원이 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환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평가를 듣는다. 잘 보살펴 줬다, 우리 병원보다 신경 더 많이 써줬다, 돌아가실 때까지 기도 많이 해줘서 영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집이 가까와서 가족들이 편했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그런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다.

이제 40대 초반인 그녀, 이제 치료를 그만했으면 한다는 나의 말에 힘들게 동의하고 전원을 위해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치매 노인이 주를 이루는 병원이 대부분이고, 암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은 너무 말기 환자들이 많아, 매일 한 방에서 한명씩 임종을 한다고 하니, 아직 그런 상태는 아닌 우리 환자는 그 분위기가 너무 공포스러웠는지 1인실 병실이 나면 퇴원하겠다고 하여, 그 병원 1인실이 날 때까지 우리 병원에서 퇴원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암성 통증 때문에 의사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호스피스팀이 있고 과별 의료진도 잘 갖추어져 있으며 최근에 서울시가 새로 지어 건물도 깨끗하고 호스피스 병동을 따로 운영하고 있는 북부병원을 소개해 드렸더니, 거기는 지금 가족들이 사는 곳에 너무 멀고 교통편이 좋지 않아 못 가겠다고 하신다.

 

그녀가 이기적인 건 아니다. 이 환자는 나와 오랜 기간 함께 치료하였고 서로의 형편을 잘 이해하는 관계이다. 그런 그녀도 내 입장을 이해해서 퇴원을 하려고 하지만, 자신을 위해 갈 만한 병원을 찾지 못해 이렇게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

 

비용

거리

의료서비스

임종서비스

환자 및 가족의 삶의 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걸까?

우리 건강보험에는 너무나 많은 재정적 한계와 질높은 의료행위를 가로막는 요인들이 산적해 있는 것에 비해 환자들의 요구도는 세계 최고이다. 그런 요구를 다 만족시키지 못하면 금방 얻어맞는다. 민원 폭증에 악플 습격을 받게 된다.

 

나는 암 환자를 위한 좋은 요양병원이 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며

한 때 내가 그런 병원을 하나 세워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병원은 금방 망할게 뻔하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수가로 해서,

돈 많이 받아서 럭셔리하게 질 높은 서비스를 해주는 병원으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봤지만

그러나 환자들은 그런 병원을 부담스러워 한다.

나는 이제 사실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돈 좀 더 쓰더라도 편안히 계시라고 말씀드리지만

오랜 병에 경제적 부담이 컸던 터라 왠만한 경제력이 아니면 쉽게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하나 보다.

(못하기도 하지만 안하는 경우도 많다.)

 

럭셔리하게 비급여 병원을 세워도 환자들이 부담스러워서 잘 가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결국 병원비를 좀 낮추고, 검사를 해서 검사비용으로 수익을 충당하게 될 것이다. 어지럽다고 하면 뇌 MRI, 배 아프다고 하면 복부 CT, 의식이 흐리다고 하면 뇌파검사, 기운이 없다고 하면 피검사 등등 그런 검사를 해야 할 것이다. 실재 호스피스를 표방하는 여러 병원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무슨 약도 많이 쓰는 것 같다. 무슨 약인지 잘 모르겠는...

 

그런 병원들의 형편과 행위를 비난할 수 만은 없는게 우리 현실이다. 왜냐하면 호스피스의 원칙을 지키는 진료를 할 경우, 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면서 병원을 운영하려면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따로 받아야 한다.

 

내가 직접 돈을 만지며 병원을 운영하거나 사람을 부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주 구체적인 사례는 모를지 몰라도, 아마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절망할 지도 모른다.

 

연계 병원의 의료진과 환자의 의료 정보를 공유하고 

요즘같은 시대에 환자 진료에 문제가 생기면 텔레 컨퍼런스로 상의도 하고

적절한 시점에 전원하고

응급 상황에서는 다시 우리 병원으로 다시 오고

과도한 검사나 처치를 하지 않아도

병원 운영에는 지장이 없고

3차 의료기관이 응급 상황만 진단, 처치해서 보내면

그 이후 처치와 보살핌은 더 잘 해주는

그런 요양병원은 아직 요원하다.

국가가 한 지역에서 시범사업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말기암환자가 병원에서 사망하지 않고, 집에서, 고통스럽지 않게 돌아가실 수 있는 Home death program 같은 것도 시범사업으로 해 봤으면 좋겠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난 당분간 계속 환자를 몰아내야 할 것이다. 어딘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