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이제 가족이 필요한 때

슬기엄마 2013. 4. 25. 02:42


7년만에 전이된 유방암

뼈와 골수로 전이가 되어

아주 위험한 상태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

다행히 그녀는 다시 걷고 일상 생활을 할 수있게 되었다.

그리고 입원하지 않고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매번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몸짓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보고 항암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가지 항암제를 병용해서 썼기 때문에 한가지 약제를 썼을 때보다 독성도 많고 환자도 힘들법한데 약이 잘 들었는지, 환자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것보다는 암세포의 무게를 덜어내는 치료의 이득이 더 컸다. 잘 견디며 치료 받았다.


꽤 오래 같은 약제로 치료하였지만

결국 내성이 생겼고

뼈 전이가 악화되었다.

약을 바꾸어 치료하였고

또 몇 개월 컨디션이 괜찮았다.


최근 한 두달 몸이 좀 불편해보였다. 골수기능이 다시 떨어지는 것 같아, 내심 두번째 약도 슬슬 저항성이 생기는가보다 짐작하고 있었다. 약을 바꾸는게 나을 것 같은데 결정적이고 객관적인 악화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처럼 먹는 항암제가 편하다며 조금 더 이 약을 유지했으면 바랬다. 손발이 부르터도 당신이 직접 집안일하고 아이들 학교보내고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랬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난 달 약을 처방하였다.


그가 응급실로 왔다.

토하고 못 먹고 배가 아파서 오셨단다.

간전이가 있던 분인데, 간이 나빠지면서 그럴 수도 있고, 뇌로 전이가 되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처 환자를 보지 못하고 오전 외래를 시작했다. 외래가 끝나면 응급실로 내려가 볼 참이었다.

그런데 외래가 끝날 무렵, 환자의 어머니가 진료방으로 오셨다. 

한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다.


우리 딸 상태가 어떤가요?


친정어머니이니 자세히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여차 저차 경과를 설명하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내 말을 막는다.


저 그렇게 어려운 말 잘 못 알아먹어요. 

그냥 얘기해 주세요. 얼마나 남은 건가요?


...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객관적으로는지금보다 훨씬 매우 나쁜 상태에서 재발된 유방암 치료를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잘 견뎠고 또 약제 반응도 좋아서 한가지 약을 오래 쓴 편이었다. 지금 비록 뇌전이가 진단된다 하더라도 치료를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그녀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고, 쓸 약도 많고, 그동안의 약제 반응성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나의 희망이자, 야심찬 계획이기도 하다.


CT를 보면 누구나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다는 느낌이다. 뼈사진애에서는 온 뼈가 다 까맣다. 간도 암세포 침윤으로 잔뜩 부풀어 커져 있다. 뼈전이와 골수전이가 같이 있기 때문에 일반 혈액 검사 소견도 남들보다 훨씬 나쁘다. 백혈구는 3천개가 안되고 헤모글로빈도 8-9를 왔다갔다, 혈소판도 10만개를 넘지 못한다. 그래도 처음 전이를 진단받았을 때보다 지금이 낫다. 그렇지만  병이 무시무시한 상태인 것도 사실이다. 


검사와 치료를 좀 더 해보고 예후를 말씀드리는게 좋을거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확실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치료반응이 좋으면 지금의 고비를 넘길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해요.


이제 돈도 없어요.

딸 애도 많이 힘들어 합니다. 

낫지도 않는 병에 돈 쓰고 병원 다니는거 힘들어 했어요.

치료 그만 하고 집에 가면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나요?


지금 집으로 가시면 환자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일단 급한 불이라도 꺼야 해요.

어머니 말고 다른 직계 가족분들 생각도 그런가요? 다 같이 한번 상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남편분은요?


어머니가 갑자기 우신다.


그 놈은 이제 나타나지도 않아요. 

재발한 거 알고는 집에 오지도 않는대요.

생활비도 안주고 집에 나타나지도 않고, 그래서 딸애가 몇달전부터 애들 데리고 우리집에 와 있어요. 우리 집에 와서 두달만 있겠다고 했는데, 두달 넘어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거 보면 그놈이랑은 이미 끝난 거 같아요. 

다 내 죄에요.


환자가 가능하면 검사를 미루고 싶어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보다.

많이 아파도 입원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보다.


괜찮은 척, 밝은 모습으로 치료를 받았던 그녀의 마음 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들어앉아 있었나보다.

치료가 잘 되고 있는것 같다며 내가 좋아라 해도 

힘없이 웃기만 했던 게 그녀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기 때문에 그랬나 보다. 


암도 암이지만 

사는 것이 더 힘들었던 그녀

 아이들 밥 먹여서 학교 보내는 거, 그것만큼은 그녀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생애 마지막 과업이었다. 


재발하고

전이되고

병이 나빠지면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꽤 있다.

이혼을 할만큼 경제력이 안되기 때문에 그냥 별거하는 환자도 많다. 

배우자가 아프고 병들고 힘들 때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사랑의 서약은 한순간의 거품처럼 날아가버리기 쉽다. 그건 경험해 보지 않고는 맹세하면 안되는 조항같다. 


병은 우리 삶의 많은 약한 고리를 노출시킨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서서히 좀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