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하우스에 심은 옥수수

슬기엄마 2013. 4. 18. 20:52


강원도 사는 할아버지 유방암 환자.


3주에 한번씩 젤로다 처방받고 조메타 뼈주사 맞으러 병원 오신다.

3주에 한번은 너무 자주라며, 매번 병원 오는 시기를 늦추시려고 한다.



앗, 벌써가 3주가 되었나요? 


거봐, 너무 자주라니까. 약 두달치 주고 두달에 한번만 봐. 검사는 6개월에 한번만 하고.


혈압약도 아니고, 무슨 항암제를 2달치 줘요. 

그리고 치료하면서 3개월에 한번씩 검사 안하면 제가 처방한 약 다 삭감되요. 우리 병원 손해야.


그래?

병원이 손해볼 수는 없겠지.

그래도 너무 자주 병원에 오고 검사하고 그러는 거 같애.

CT 찍다가 그 방사선 때문에 암 생기겠어.

그리고 남들은 다 조영제 빼고 찍어주면서 나는 왜 맨날 조영제 넣고 찍어?

조영제 맞으면 힘든거 알기나 해?


할아버지는 당분간 꼭 조영제 쓰고 찍어야 해요.

요즘 폐 전이 병변 모양이 좀 이상해졌어요. 잘 봐야 할거 같아요.


아이고, 뭐 그게 이상하면 뭐 얼마나 이상하다고 그래. 나 숨쉬는 거 하나도 안 힘들고, 어디 아픈데 하나 없다니까. 괜히 젤로다 먹어가지고 손발 벗어져서 그게 젤 힘들어. 약도 이제 그만 먹으면 안되?



할아버지의 병은 사실 그동안 치료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재발하고 나서 세가지 항암제를 썼는데 다 얼마 못가 나빠졌다. 호르몬 수용체가 없기 때문에 호르몬제도 쓸 수 없다.

요행히 지금 쓰는 젤로다가 잘 맞아서 폐 병변이 작아지고 

약 부작용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잘 관리하고 계신다. 

내 마음으로는 지금 폐 병변의 변화가 저항성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최근 4-5개월 CT가 불안불안하다. 아직 약을 바꾸기에는 아까워서 좀 더 약을 유지하고 있지만 왠지 불안하다. 나의 그런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할아버지는 정말 안 중요하고 지엽적인 문제를 앞세워 트집을 잡고 나를 괴롭힌다. 


나 뭐하나 물어봐도 되?


네 (ㅠㅠ 아, 또 시작이시다)


아무리 바빠보여도 질문할 건 질문해야지.


그러세요.


CT 판독은 기계가 알아서 해 주는거야? 사람이 보는 거야?


사람이 보는 거에요.

저도 보고 영상의학과에서 저보다 더 사진 잘 보시는 선생님도 보고 그런 거에요


그럼 의견이 항상 같아?


아니오. 다를 때도 있어요. 그래서 서로 의견이 다르면 다시 상의해요. 때론 컨퍼런스 같은 걸 해서 상의하죠.


기계가 저절로 읽어주는건 아니란 말이지?



서로 의견이 다르다 보면 최종적인 의견이라도 해도 틀린 의견일 수도 있겠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거 아냐?


사람이 하는 일이라 100% 일치하거나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는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기계가 더 나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난 그냥 그게 궁금했어. CT를 찍으면 기계가 그 자체를 판독해주는지, 사람이 읽는게 우선인지.

사람이 하는 일이니 판독을 잘 못하는 일도 있겠네?


그렇죠.


그런게 의료사고의 원인이 되겠구먼.


그럴 수 있죠. 왜요? 사진 관련해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제가 지난 번에 사진 제대로 안 보여줘서 화나셨어요?


아니.

내 병은 어디 있는지 다 알아. 그때 한번 설명해 줬잖아.

그냥 궁금해서.


그런거 제발 궁금해 하지 말구요, 이런 질문 하지도 마시구요. 


미안해. 

내가 맨날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해서 시간 많이 잡아먹는거 같아.

미안해서 선생님 옥수수만 밖에 안 심고 하우스에 심었어.


그게 뭐가 다른 건데요?


밖에서 심는 거 보다 한달 정도 빨리 나올거야. 내가 맛있는 강원도 옥수수 갖다 줄께. 


좋아요.

다 용서해 드릴게요. 



아무리 화가 나도

뇌물 한방에 넘어간다.

아직 받지도 않는 뇌물에. 

이제 겨우 심은 강원도 옥수수에.



난 사실 할아버지 마음을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은 그거다.


나 오래 살거 같애?


그럼요.

옥수수 농사나 잘 지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