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편안한 죽음을 위하여

슬기엄마 2013. 4. 13. 11:54


나보다 젊은 그녀.

본성이 참 착한 사람이다.


유방암이 재발된 후 

항암제를 종류별로 다 써봤지만 

2번 쓰고 나빠지고, 세번쓰고 나빠지고, 그러기를 거듭했다. 

증상도 조금씩 나빠졌다.

왼쪽 폐에 물이 조금씩 고인다. 관을 넣어 빼보기도 했지만 별로 신통지 않았다. 

치료 효과가 신통치 않으니 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소견서를 써주고 사진을 다 복사해 주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왔다. 나한테 미안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환자의 권리이니 나에게 미안할 필요없다고 했다.

나는 내가 치료를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정말 미안했다...


쓸만한 약을 거의 다 써봤지만 효과를 본 약이 없다. 치료를 하다보면 그런 유형이 있다. 그녀가 그랬다. 


선생님, 그냥 치료 안하면 안되요?

저 치료하는게 더 힘들어요.  

결국 나빠지겠지만 그동안이라도 편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럼 한달에 한번은 병원에 오세요.

병원이랑 등 돌리지는 말구요.


환자는 그 한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새로운 증상이 생겨서 병원에 왔다.

갑자기 다리가 안 움직인다고 해서 사진찍어보면 척추에 전이된 종양이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방사선치료를 하고 다시 걷게 되었다.


한달이 되지 않아 숨이 차서 도저히 누울 수 없게 되어 병원에 왔다.

물이 많이 찼다.

늑막에 관을 넣고 물을 빼면 환자는 편안해 했다.

관을 가지고 퇴원했다.


선생님, 제가 언제 죽게 될까요? 제가 너무 살려고 아둥바둥하는 것 같아요. 

마음 정리 다 하고, 절대 병원 안올거라고 다짐하는데, 

힘들어서 못견디겠으니 결국 병원에 오게 되는것 같아요.


병이 그런거에요.

힘든 건 해결해야죠. 


이번에도 시력에 약간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냥 참고 지내다가 오른쪽으로 몸이 자꾸 기우는 것 같은 증상이 생겨서 화장실도 갈 수가 없어 병원에 왔다. 뇌전이였다. 종양의 크기는 작은데 부종이 심하다. 부종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스테로이드와 만니톨을 썼더니 금방 좋아졌다. 아침에 회진을 가니 환자가 과일을 먹고 있다.


병이 뇌로 전이가 되었는데도 이런게 먹고 싶네요.


뭔가를 먹고 싶다는 건 좋은 징조에요.


그래요? 전 제가 너무 살려고 아둥바둥하는것 같아서 좀 부끄러워요.


무슨 말씀이에요. 힘들지만 병원에서 와서 조치를 하고 증상이 호전되면 훨씬 낫잖아요. 

그렇게 할 수 있는데까지 하는거에요. 그게 하느님의 뜻이에요.


환자의 남편은 목사님이시다.

내 진료 중에 한번도 질문이 없으시다.

반복되는 증상의 악화와 그만큼 반복되는 검사에도 별 말씀이 없으시다.

그냥 묵묵히 부인을 병원에 데리고 오고 치료하는 과정에 협조해 주신다. 

환자의 상태는 매우 나쁘지만 

병을 관리하고 삶과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눈물겹지만 평화롭다.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

그것은 병을 낫게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눈뜨고 살아있는 동안은

단 하루라도 편하게, 잘 먹고, 잘 자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니까.


첨단 의학이 아니더라도 환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게 있다.

그것이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관심을 가지고 그런 방법을 잘 찾고 실재로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 주는 것이 종양내과 의사의 몫이다. 

첨단 의학이 아니라 

좀 초라해 보이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