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여자가 항암치료를 할 때

슬기엄마 2013. 3. 30. 12:06


오늘은 토요진료가 있는 날.

피검사를 해서 몸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거나 

부족한 약을 타야 하거나

갑작스러운 증상이 생겨서 불안하고 대처하기 힘든 환자들이 토요일 외래를 찾는다. 

탈수가 심해 수액을 맞거나 통증 조절이 필요할 때 환자 혹은 보호자들이 온다.

자기 담당 주치의가 아니더라도 종양내과 의사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굳이 응급실을 갈 상황이 아니라면 토요일 일반 외래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내가 진료를 담당하는 토요일이면 내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하고 가기도 한다. 항암제 주사 시간이 길지 않으면 토요일도 항암치료를 할 수 있다. 컨디션이 좋은 환자들, 직장을 다니는 환자들은 토요일 진료를 선호하기도 한다. 


우리 병원 종양내과에서는 4명의 전문의가 번갈아가면서 토요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잘 모르는 환자들을 진료하게 된다. 그래도 큰 부담은 없다. 오늘 병원에 온 사연이 복잡하거나 암 치료 관련하여 중요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날 그날의 문제를 해결해주면 된다.

토요일이라 예약 환자가 많지 않으니 환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하다. 



오늘 온 40세 여자환자도 내가 처음 만난 환자.

재발된 위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탁소텔로 약을 바꿔서 2번 치료를 하셨다. 

오늘 오셔서 피검사를 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아주 낮다. 탁소텔은 약을 맞은지 8-10일 사이에 백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진다. 환자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백혈구 촉진제를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니 엄지발가락 발톱에 염증이 생겨서 벌겋고 아프다고 한다. 백혈구 촉진제와 항생제를 처방하고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 탁소텔의 전형적인 부작용이에요 - 그리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그리고 손발 관리를 잘 하시라는 설명도 드렸다.


의사가 시간에 쫒기지 않고 여유있게 이것 저것 설명을 하는 것을 보니 

환자도 뭔가 자기 얘기를 더 얘기해도 될것 같은 느낌을 받았나보다. 


선생님 

그런데 밤에 잠도 잘 안오구요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뜨거운 기운이 훅 올라오는것 같기도 하고 

팔이랑 가슴 피부 밑에서 뭐가 간질간질 거리는 것 같기도 한데 뭐라고 이런 증상을 표현하기도 어렵고 기분이 않좋아요. 

왜 그런거죠? 

진통제 먹어도 별로 도움이 안되요.

뭔가 몸이 안좋은거 같은데 뭐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내 몸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기분 변화도 심한가요?



우울감도 생기는 거 같나요?



자꾸 짜증나고 신경질 나고 그래요?



온 몸이 무겁고 관절이 굳어지는 느낌이 드나요?


근데 선생님 어쩜 그렇게 제 몸 상태를 정확히 다 아세요? 

신기하네요. 


항암치료를 하면 우리 몸의 정상 기관도 영향을 받게 되요. 그래서 젊은 여자 환자는 건강한 난소가 항암제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면 난소기능이 억제되게 되죠. 그래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이 잘 만들어지지 않고 기능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요. 그러니까 생리도 끊어지거나 불규칙해지죠.


혈중 에스트로젠이 부족하니까 몸은 폐경기 증상을 경험하게 되요. 잘 생각해 보세요. 옛날 엄마들 50대 들어서 폐경기가 올 무렵에 신경질도 많이 내고 히스테릭해져서 기분도 종잡을 수 없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고 힘들어 했던거 기억나세요?


나이가 젊어서 에스트로젠 레벨이 높게 유지되다가 항암치료 때문에 갑자기 그 수치들이 떨어지면서 갑자기 폐경을 경험하는 상황이 된거에요. 항암제로 유도되는 폐경 증상은 자연 폐경보다 더 증상이 심하고 나이가 젊을수록 더 힘들게 느껴진다고 해요.


지금 본인이 느끼는 그런 이상한 증상들, 뭔가 불편한 감정들은 

제 생각엔 에스트로젠 부족에 의한 폐경기 증상이 아닌가 싶어요.


환자는 내가 묘사하는 증상들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증상을 잘 설명하는 거라고 동의가 되는지 고개를 끄덕거린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함께 온 남편도 비로소 뭔가가 이해되는 눈치다. 부인이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남편이라고 마음이 편했겠는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되면 

환자들이 좀 더 잘 견디는거 같아서 설명드렸어요.

도움이 되었나요?


네, 선생님, 속이 다 시원하네요. 

오늘 선생님 진료보기 정말 잘한거 같아요.


그 마지막 말 한마디 듣는게 

의사로서 얼마나 기쁘고 뿌듯하고 신나는 일인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