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레지던트 시험이 인생의 전부냐

슬기엄마 2011. 2. 27. 21:44

레지던트 시험이 인생의 전부냐

 

10여일 전에 전공의 시험을 보았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동료들이 불안에 떨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결과가 발표되어 시원섭섭하다.

나는 내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솔직히 참 기뻤다. 예년의 분위기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올해 우리 병원 내과 지원자간의 경쟁은 유례없이 치열하지 않았나 싶다. 의국원이나 교수 면접이 있기는 했지만, 일말의 arrange도 없이 철저히 시험과 인턴근무 성적을 기본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많은 동료 지원자들은 성적도 우수하고 인턴 생활도 열심히 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머리 회전 빠르지 않고 순발력 떨어지며 센스 없이 일해 온 나로서는 매일 불안함과 초조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틈 나는 대로 학교 도서관에 가보지만 내 머리는 이미 그저 열심히 달리면 되는 인턴의 몸에 익숙해져 활자를 낯설어하고 있었다
.

전공과 학교를 바꿔 대학원을 진학했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 당시의 면접도 쉽지 않았었다. 대학원 재학 중에도 끊임없이 연구원, 아르바이트 등을 위한 면접을 여러 번 경험했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는 이미 목적에 따라 여러 version으로 준비되어 있었으며,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답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의 과거력상 어느 정도의 질문이 예상되기도 했다
.

시험 그 자체로 나를 평가할 수 없다는 자신만만한 태도, 최선을 다하면 되지 그 이상 연연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느긋한 태도, 우리 병원에서 내과 트레이닝을 받는 것이 나의 절대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여유 있는 태도
….

그러나, 마음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매우후달리고있었다. 당락 자체에 괜한 집착이 생기고 안 되면 내가 취할 행동 노선에 대해 엄청난 대안도 만들어두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어떻게 짓는 게 좋을지까지 다 생각해 두었다. 이 소심함이여
.

1
년만에 보는 시험,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참 어려웠다. Marking을 제대로 못해서 답안지를 바꾸기도 했고, 답안지를 내고 나오며 책상 위에 신분증을 놓고 나오기도 했다. 면접에서는 예상했던 질문에 대해서도 당황하며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왜 이렇게 의연하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할까
?

발표가 나자 인턴방 분위기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합격하지 못한 동료가 주위에 있는데 합격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축하한다, 좋겠다, 나중에 consult 내면 잘 봐달라며 껄껄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번의 당락이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 중대한 사건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 조만간 insight가 생기고 마음의 평정을 찾겠지만, 그때까지는 조용한 시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

그러고 보니 이번에 시험을 치지 않은 동료들도 있다. 삶의 맥락에서 1년 정도 쉬다가 새롭게 start해 보리라는 마음이 들었으리라. 그런 선택도 결국은 자신의 몫이고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인턴들에게 무슨 과를 할 거냐, (쉬겠다고 하면) 왜 쉬려고 하느냐, 한번 그렇게 쉬는 것을 윗분들은 안 좋아하니 그냥 하는 게 좋을 거다, 쉬면서 뭐 할거냐, (뭘 하겠다고 하면) 그런 건 해서 뭐 하느냐 라는 식의 superficial하고도 공격적인 질문공세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

어떠한 이유로든 내년 전공의 1년차를 시작하지 않는 동료 인턴들에게 2005년 한 해가 답답한 병원을 떠나 사회의 공기를 호흡하고 의사의 시각이 아닌 사회인의 시각으로 우리의 의료, 의사들에 대해 고민하며, 병원 안에 머무르는 나보다 훨씬 성숙한 사고와 너그러워진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