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그만하면 살만한 거에요

슬기엄마 2013. 3. 11. 23:25


유방암 수술 후 

항암치료가 끝나고 방사선치료도 끝난 지 2년이 넘었다. 

지금은 항호르몬제를 드시면서 6개월에 한번씩 정기 검진만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 그녀는 이제 종양내과 환자가 아니다.


그녀는 오른쪽 폐 아래 쪽에 기관지 확장증이 있다.

그래서 감기 등 호흡기 질환이 찾아 오면 가래에 피도 섞여 나오고 숨이 차고 호흡이 편치 않다.

처음 그녀의 가슴 엑스레이를 보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정상 폐사진과 비교해서 보면 상당히 나쁘다. 빨리 CT라도 찍어서 속 안을 좀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드는 사진이다. 


그녀는 유방암 치료를 다 마치고 저 멀리 남쪽, 당신 고향으로 내려가셨는데

별로 심각하지 않은 증상이 생겨도 환자는 항상 화들짝 놀라하며 서울행이다. 

그 먼 곳에서 걸핏하면 응급실로 달려 오신다. 

응급실같이 정신없는 곳에서는 

환자가 숨차다고, 가래에서 피가 난다고 하면 

차분하게 예전기록을 들여다 보면서 

현재의 상태와 비교분석 할만한 여유가 없다. 

응급실 레지던트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하면 무리다. 

그런 판단과 의견은 응급실이 아니라 외래에서 들으셔야 한다. 

바쁜 응급실 레지던트, 흉부 CT를 찍는다. 그런데 이 환자는 응급실 올 때마다 CT를 찍었던 것 같다.

예전 엑스레이 사진과 연속적으로 비교해보면 사실 똑같다. 엑스레이를 비교해서 보는게 더 중요하다. 



그녀는

일년에 서너번 정도 우리 병원 응급실에 오신다. 매번 입원의 이유도 다양하다. 

항호르몬제를 드시다 보니 관절염, 가벼운 수면장애, 정서적 예민함 그런 증상들이 동반되어 있는것 같다. 자기는 페마라 먹으면서 우울증도 온 것 같다고 호소한다.그녀는 내가 무슨 설명을 하면 다 받아 적는다. 그녀가 나에게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 해준 설명이랑 비슷한 것도 같다. 


응급실로 올 때마다 사실 별 문제는 없었다. 

힘들게 왔으니 내시경이라도 하고 가고 싶다고 했다. 속도 쓰리고 배도 자주 아프니까. 

뭐라 말릴 수도 없고, 그냥 검사하시게 해드렸다. 별 문제없이 몇가지 검사만 한 채 돌아가시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열이 잘 잡히지 않았다. 기관지 확장증에 폐렴이 동반된 걸까?

항생제를 바꾸면서 열이 떨어졌다. 열이 나니까 그 자체로 환자가 많이 힘들어 했다. 

응급실 오셨을 때, 

마음 속으로는 바로 집에 가시라고 해야지 했었는데,

어이쿠 열이 안 떨어지니 내심 마음이 초조했다. 

다행이다. 


그녀는 사실 지금 암 치료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 환자의 호흡기 문제를 진료하고 있는게 맞는건가 싶기도 했다.

여하간 얼추 약을 바꾸고 환자 상태가 좋아졌으니 다행이다 싶다.

비교적 심각하지 않은 고비를 넘기며 그녀의 몸은 또다시 병을 이겨내고 재도약을 하려고 준비하려는 건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 회진을 가면

이 환자에서 가장 오랫동안 발목이 붙잡힌다. 이래저래 나에게 하실 말씀이 많으신 거 같다. 

내가 뭐라 댓구를 하면 또 엄청나게 질문하시고 

그래도 나 괜찮은 거냐는 기대섞인 반문을 하신다. 

평소보다 재원일수가 길어지니 환자의 질문과 하소연도 끝이 없다. 

오늘도 

뭐라 뭐라 한참을 말씀하시고는, 나에게 이거 괜찮은 거냐고 또 묻는다.


나도 모르게 순간 심뽀가 뒤틀려서 


그 정도 오래 얘기할 힘 있으면 괜찮은 거에요.

목소리도 방안을 쩌렁쩌렁 울리잖아요. 그 정도면 기운도 왠만큼은 있는 거에요. 

컨디션 나쁜 사람, 진짜 심각한 사람은요 힘없어서 말도 못해요.

그러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거에요.

아시겠죠?


말을 내뱉고 보니 

환자가 좀 무안할 거 같다.

그런데 환자가 흔연스럽게 맞받아 쳐준다.


그렇겠죠? 

제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닌가봐요. 

아이고, 내가 말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 힘들겠다. 이제 그만 말할게요.


내 속을 엿보인거 같아 부끄럽다. 나 참 밴댕이같다. 

남의 말 잘 들으라고 귀 두개, 말은 적게 하라고 입 한개, 그렇게 주어진거라고 하지만  

환자가 말 많이 하는거 못 참고 싫은 소리를 해버렸다. 


머리로 알고 있는 이론과

마음을 다해 실천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