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언제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할까

슬기엄마 2013. 2. 13. 22:28

 

각종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를 언제 그만 둘 것이냐에 대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의견은

세가지 각기 다른 용법으로 치료했으나 연속적으로 반응이 없을 때이다.

 

그렇게 약제 반응이 좋지 않을 때는 추가적인 치료를 해도 약제의 반응을 기대하기보다는 독성에 의한 환자의 손해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존기간을 연장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환자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치료는 권고하지 않고 있다.

약제 반응율은 치료 초반기 일수록 좋기 때문이다. 치료 후반기로 갈수록 약제에 감수성이 높은 세포보다는 저항적인 세포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원칙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환자의 컨디션이 너무 좋을 때

치료 독성이 심하지 않을 때

환자의 치료 의지가 강할 때

아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약제가 남아있을 때

 

다시 치료에 도전하게 된다.

 

매번 CT를 찍을 때 마다 내 마음은 철렁, 사진이 그렇게 나빠져 가는데, 환자는 별 증상도 없고 독성도 잘 견디고 있다. 치료의 의지도 강하다.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른다.

 

그렇게 치료를 해 온지 어언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이 서서히 나빠진 것에 비해

각종 혈액검사는 정상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증상도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황달 수치가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싶지만

환자와 가족은 청천벽력이다.

더 이상 치료하지 못할 것 같다, 지금 황달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진통제로 통증만 조절하겠다는 나의 설명은 가족들에게 수용되지 않는다. 최근 2주만에 황달 수치가 10이 넘었다. 수치의 증가속도가 매우 빠르다. 환자의 컨디션이 좋지는 않아도 아주 나쁘지도 않다.

이렇게 갑자기 나빠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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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전이가 진행되고 있다. 

항암치료를 하면 좋아진다. 그러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재발을 한다.

약제를 바꿔서 항암치료를 하면 다시 좋아진다. 그러다가 또 다른 곳으로 전이가 진행된다.

유방암에서 써볼 만한 약제는 다 썼다. 이미 쓴 약도 쓴지 오래되었으면 다시 써보기도 했다.

이제 더 쓸 약이 없다.

 

황달 수치는 5를 전후로 왔다갔다 한다.

혈소판 수치가 낮아 골수 전이가 의심되지만 골수검사를 해서 전이를 증명한다 하더라도 치료적 대안이 없기 때문에 굳이 검사의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혈소판 수치는 수혈을 해야할지 하지 말지 애매한 상태.

환자와 가족은 이미 너무 많은 경고를 들은 바 있다.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다고...

그날이 오늘 일수도 있고

한달 후일 수도 있고...

그렇게 몇달이 지나가고 있다.

특별한 증상은 없다.

좀 기운이 없고...

피곤하고...

 

환자는 입원을 하면 회진을 돌 때마다 경고하는 전공의와 주치의를 만나는 것이 무섭다.

다 알아 들었는데,

다 알고 있는데

자꾸 반복해서 설명한다.

병원가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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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몸 상태가 나빠지면

환자들은

스스로가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래서 난 너무 반복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가족들에게는 나쁜 예후가 예상됨을 설명해준다.

애둘러서 말하는 내 말 뜻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가족도 있다.

그래도 난 그들을 내 방식대로 이해시키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 눈치를 챌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런데

가끔 이런 룰이 잘 통하지 않는

어려운 경우를 만날 때가 있다.

치료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나의 설명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연 어떤 시점에 나쁜 소식을 전했어야 했을까...

눈물로 이 밤을 지새는 가족에게 나는 어떤 위로를 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