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인턴일기

권위는 만들어지는 것

슬기엄마 2011. 2. 27. 21:36

권위는 만들어지는 것

 

아니, 이 자식아, 지금 네가 뭐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이렇게밖에 못하겠어? 이러다 환자 나빠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병동 station 앞에서 윗년차 레지던트가 1년차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낸다. 심지어 욕도 한다.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흘끔흘끔 눈치를 본다. 철제 차트가 날아다니고 종이가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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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모습이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심지 않게 발견된다. Painful memory. 심리적으로 trauma를 입을 만큼 고통스럽게 혼나며 배운 내용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공개적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실수나 무능력이 공격당하면 수치심과 자괴감에다 윗년차에 대한 증오까지 덧붙여져 같은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행해지는 education의 일환일까
?

간호사에게도 좋은 말로 친절하게 order를 내리면 일이 지연되거나 미흡한 경우가 있는데, 이때 한번 입에 게거품을 물고 악다구니를 치고 나면 그 병동에서 자신이 내린 order 100% 실행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술방에서도 심한 욕을 하며 험하게 굴면 일이 빨리 빨리 잽싸게 진행돼서 수술시간도 짧고 실수도 안 하는데, gentle하게 행동하면 아랫년차나 간호사들의 기강이 해이해지기 때문에, 거칠게 행동하는 편이 여러 모로 output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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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년차가 convulsion하고 난 후 그 병동 station에서는 아랫년차가 설 곳이 없다. 간호사들도 자기들끼리 모여 누구는 무슨 무슨 일을 제대로 못해서 욕먹었다는 둥, 그 레지던트는 실수 투성이라 맨날 욕만 먹는다는 둥뒷담화를 나누기 일쑤다. 경력이 오랜 간호사 중 일부는 젊은 1년차 레지던트의 order를 무시하거나 그의 decision에 간섭하면서 주치의가 일하는 과정을 어렵게 만든다. 회진 후 4년차 레지던트는 인턴이 앞에 있는데도 그의 존재를 무시하는 양 1년차 레지던트에게 ‘***는 인턴선생님 시키세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뜬다. 인턴들은 흔히 AN조차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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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을 기다리는 와중에 station에서 간호사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레지던트도 발견할 수 있다. 간밤의 회식자리에서 춤추며 놀았던 이야기, 어디 음식점이 좋더라는 이야기, 심지어 모모 연예인의 스캔들까지도 농담거리의 주제가 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렇게 희희낙락하고 있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를 보다가 달려온 아랫년차에게는 쌍욕을 퍼붓고 안면을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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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국이나 분국 내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병원 어디에서든 의사는 공개적인 시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의 주치의는 얼마나 신뢰할만한 의사인가에 대해 환자와 가족들은 여러 측면에서 민감하다. 의료진이 회진을 돌고 떠난 뒤의 분위기, 간호사들끼리 하는 말, 주치의의 표정과 태도 등을 유심히 관찰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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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극성을 피우고 소리를 지르며 그악스럽게 굴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은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심정으로 내 갈 길을 방해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의사가 의사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 실천하지 못하면 의사의 권위는 누가 인정해줄 것인가? 권위(authority)란 행위 주체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러 나오는 측면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형성되는(socially constructed) 것임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