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환자가 나를 위로한다

슬기엄마 2013. 1. 17. 21:30

 

그녀는 현재 한국에 살지 않고 중국에서 살고 있다. 본인이 꼭 중국에서 해야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 항암치료를 받던지 한국에서 항암치료를 받던지 한군데서 하는게 좋겠다고, 힘들어서 어떻게 왔다갔다 하겠냐고 했지만 그녀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한국 왔다갔다 돈도 많이 들고 힘도 많이 들텐데, 본인이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치료 스케줄을 운영할 수 밖에 없었다. 아주 똑똑하고 딱부러지는 그녀. 난 그녀의 언변과 이성적인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환자는 난소암으로 항암치료 중이다. 지난번 임상 연구약으로 항암치료 했을 때는 별로 효과가 없었는데, 이번에 약을 바꾼 후 간에서 보이던 작은 종양들이 일단 눈에 안보이게 되었고 종양수치도 정상 범위로 떨어졌다. 항암치료 3-4번 만에. 항암제를 별로 힘들어 하지도 않았다. 부작용도 잘 견디고 치료효과도 좋고 정말 기분 좋았다.

 

그러던 중 6번째 싸이클을 앞두고 환자가 3개월이 넘도록 병원에 오지 않았다. 중국에 있으니 연락도 안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항암치료를 안하고 3개월이 지나 적당히 살이 올라 예뻐진 그녀가 진료실에 나타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창 치료가 잘 되고 있었는데 왜 안왔어요?"

 

"정말 어이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녀가 겪은 정말 어이없는 이야기에 대해 한참을 들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CT를 다시 찍고 치료 재개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지금이 4번째로 바꾼 약, 드물게 치료가 잘 되고 있는 경우였는데, 그동안 저항성이 생겼으면 어떻게 하지? 이제 쓸만한 약도 별로 안남았는데... 나는 그녀가 처한 상황, 당한 일들이 너무 어이가 없고 화도 나고 그랬다.

 

CT 처방을 내면서 내가 너무 안타까와 하자 그때도 그녀가 나를 위로했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뱃속은 별일 없을거에요."

 

이미지 검사에는 이상 소견이 없었는데 종양 수치가 약간 정상 범위 밖으로 증가해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들어 매고 다시 6번째 싸이클을 시작했다. 종양수치가 마음에 걸렸지만 아주 조금 오른거니까 빨리 다시 치료하면 좋아지려니 믿고 서둘러 항암치료를 진행하였다.

 

그렇게 지난 주 월요일 6번째 싸이클을 하고 중국으로 돌아간 그녀가 오늘 진료실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왼쪽 다리에 봉와직염(cellulitis)가 생겼다. 그동안 몇번 염증 소견이 왔다 갔다 했었다. 주사 항생제 치료도 2번이나 했었다. 6번째 항암치료를 시작하던 날 그녀가 나에게 왼쪽 다리가 자꾸 부었다 가라앉았다 하는것 같다고 말을 했었다. 나는 종양수치가 오르기 시작하니 마음이 급했다. 대충 다리를 만져보고 크게 아프지 않고 지금은 그만그만 하니까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다.

그녀는 아무말 없이 끄덕이며 내 결정을 수용해주었다.

 

그런데 그때는 별거 아닌거 같았던 염증이 항암치료 후에 확 번졌나 보다. 허벅지가 땡땡해지고 벌겋게 부어올랐다. 중국에 돌아간지 몇일 되지 않아 열이 나고 다리에 염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그때 문제가 있었을텐데 항암치료 안하고 있어서 몰랐다가 항암제 들어가면서 면역력이 떨어지니까 염증이 확 올라왔나봐요. 열이 40도까지 나고 다리가 너무 아파서 왔어요."

 

그녀는 의사가 다 되었다.

자기 몸의 변화에 대해 그 과정을 유추하고 잘 묘사한다. 제때 병원에 잘 오셨다.

 

그때 항암치료를 해서 봉와직염이 나빠진거 맞다. 그때는 봉와직염이 확실하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서두르고 싶었던 나는 봉와직염의 가능성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마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급했다.

 

그리고 환자는 중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결국 오늘부터 항생제 치료를 시작하였다.

 

나 때문에 환자가 고생한거 같다. 조금더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했나... 자괴감에 빠져서 할말을 잃는다. 벌겋게 부은 다리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를 보니 미안하고 내 결정이 후회스럽다. 내가 차마 무슨 말을 못하고 그녀의 다리를 쳐다보자 그녀가 말한다.

 

"선생님, 괜찮아요. 항생제 치료 하면 좋아질거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 표정이 너무 않좋았는지

진료실을 나갔던 그녀가 다시 들어온다.

 

"선생님, 진짜 괜찮아요. 좋아질거에요."

 

"..."

 

"제가 이번에 사 온 이 빵 먹고 기운내세요."

 

"제가 지금 빵 먹고 싶겠어요? ㅠㅠ"

 

"이 빵, 제가 줄을 1시간이나 서서 사온거에요. 아주 유명한 빵이니 한번 드셔보세요."

 

나는 할 말이 없다.

 

잘 될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의사인 나를 위로하는 그녀

나 때문에 염증 나빠져서 중국에서 비행기 타고 날라온 그녀

그러면서도

그렇게 아픈 다리로 한시간이나 줄을 서서 빵을 사다주는 그녀

 

나는 할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