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남편도 받아보지 못한 선물

슬기엄마 2012. 11. 29. 17:18

 

 

그녀가 나를 위해

호두를 볶아 왔다.

그녀의 남편이 물었다고 한다.

도대체 누굴 위해 그렇게 정성껏 호두를 볶는 거냐고.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그녀.

그녀가 나를 위해 호두를 볶아 왔다.

이렇게 예쁘게 포장을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대학원 다니고 직장 생활하느라 한시도 쉴 틈이 없던 그녀, 요리라고는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부엌에서 음식하는게 어색한 그녀는

고작 이만큼의 호두를 볶느라  엄청 많은 호두를 태워먹었다고 한다.

이만큼도 겨우 건진거라며 그녀 특유의 눈웃음을 보낸다. 애교만점인 그녀의 눈웃음.

 

만화 캐릭터처럼 귀엽고 예쁜 그녀는

아주 초기 유방암인 줄 알았는데 수술을 하고보니 생각보다 병기가 높게 나와

8번의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다.

 

나는 가능하면 본인이 원래 했던 생활 리듬을 유지하시라고,  직장을 다녔으면 그 직장 그대로 다니시라고 권하는 편이다.

자기가 하던 일 다 집어치우고

집에 틀어박혀

좋은 음식 먹어야 한다며 조미료 들어간 음식이라고 외식도 안하고

친구들도 안 만나며 혼자 지내는 생활은

환자를 더 위축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환자에게 더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좀 어려움이 있더라도

빨리 현실에 직면하시라고

그래서 맞을 매도 빨리 맞고 

빨리 현실에 적응하시라고 권하는 편이다.

 

그녀도 8번의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본인이 하던 일을 유지해 왔다. 직장에서 그녀의 치료 일정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었다. 치료도 받고 직장도 다니고, 나는 그녀가 씩씩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를 더욱 대견해 하기를 바랬다.

 

그러던 그녀가 항암치료를 다 받고 직장을 그만 두었다.

 

오늘 만난 그녀는

적당히 얼굴에 살도 붙고

피부도 예전처럼 뽀애졌다.

무엇보다 표정이 아주 밝다.

 

직장 안 다니니까 좋아요?

 

그동안 너무 바쁘게만 살았던 것 같아요.

여유를 가지니까 좋네요.

 

그래요?

아이가 좋아하겠어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아이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더라구요. 전 그런거 하나도 모르는 엄마였어요.

이제 그걸 다 아는 엄마가 되었어요.

 

남의 얘기 같지 않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다.

 

아이 안 키우다가 키우니까 힘들지 않아요?

 

힘들지만 재미도 있어요.

내 말 잘 듣게 훈련시키고 있어요.

 

자기가 말해 놓고도 우스운지 큰 소리로 웃는다.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행복을 찾아가는 길에는 정답이 없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안 해본 요리도 해 보고

아이와 함께 24시간 시간을 보내고

내년 계획, 아직은 그런 거 없다고 한다.

그냥 하루하루 잘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먼 미래가 없으면 어떤가?

미래라는게 계획한다고 계획대로 되기는 하나?

하루하루, 짧은 찰나에 행복이 찾아온다.

그녀에게 오늘은 행복한 하루.

그녀가 치료 중에 꺾이지 않고

더 밝아지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나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마음이 뭉클했다.

의사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이 사랑,

그것이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행복이다.